어렸을 때 내가 보았던 영화 속 슈퍼맨은 무적이었다.
눈에서 빔을 내뿜고 거대한 선박을 들어 올리고 하늘을 날고,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이상 돌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은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그러나 슈퍼맨도 약점이 있었다. 클립톤 광석이란 광물을 가까이 대면 그것만으로 몸에 이상이 생기고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무적이라 생각했던 슈퍼맨에게도 약점이 있구나하고 매우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다.

지금 IT계에서 슈퍼맨처럼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 기업이 애플이다. 엄청난 상승세에 내놓는 상품마다 크게 히트하고 하드웨어 업체로서는 경이적인 약 40프로의 순이익률을 낸다.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쳤고 1위 자리를 노릴 정도이다. 넘치는 현금보유고에 여전히 제품은 없어서 못팔 정도다. 이런 기업 정도면 도무지 약점이란 게 없는 슈퍼맨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슈퍼맨도 약점이 있다. 애플에게도 클립톤 광석처럼 유일한 약점이 있으니 바로 CEO이자 리더인 스티브 잡스의 존재다. 모든 애플의 기적같은 성공 뒤에는 항상 잡스가 있었다. 그것은 반대로 잡스가 없이는 대체 애플이 혁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나 있을이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잡스가 없는 시절의 애플에서 무엇인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아 세계를 열광시킨 적이 없다.

이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2004년 잡스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애플의 주가는 크게 요동쳤다. 아무리 CEO라고 해도 개인의 건강 하나에 애플 정도의 글로벌 대기업의 주가가 6퍼센트나 하락한다는 건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2010년, 사상 최고의 실적과 호평을 받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지속가능경영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경제전문지 코퍼릿 나이츠(Corporate Knights)가 전 세계 3000개 기업의 데이터를 취합해 평가하는 글로벌 100대 지속가능기업에 애플은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 조사는 지속가능경영 리더십, 혁신 능력, 투명성, 에너지 생산성 등 10개 핵심 지속가능경영 성과 지표를 평가해 순위를 정한다. 그런데 애플은 다른 훌륭한 점에도 불구하고 CEO의 리더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게 원인이다.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 월드(DJSI 월드)에서도 마찬가지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고의 강점으로 꼽히는 잡스의 리더십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스티브 잡스가 인간이고, 50이 넘는 고령에다가 최근 건강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의 애플은 무적이지만, 막상 그가 없을 때의 애플의 능력에 대해 모두가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 만일 스티브 잡스가 죽거나 건강문제로 더 이상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 뒤에 대체 누가 얼마나 잘 애플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누구도 선뜻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그 이후의 애플은 누가 이끌까?

물망에 오른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하다.
최고업무책임자(COO)인 팀쿡이 우선 거론된다. 그는 잡스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2개월 동안 무난하게 애플을 이끌어나간 공로가 있다. 컴팩에서 재료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다가 영입된 그는 재고관리와 운영에 강하다. 1997년 애플에는 70일치가 넘는 재고가 쌓여있었는데, 팀쿡이 부임한지 2년 만에 10일치 이하로 줄어들었다. 확실히 안정적인 경영과 생산관리에서는 뛰어나다.


그러나 팀쿡에게는 단지 유지하는 능력 밖에는 없다. 애플의 정체성인 혁신제품 개발에 있어서는 개발된 제품을 평가하고 무엇을 삭제하고 무엇을 첨가할 것인지 전략적 판단을 할 사람이 중요하다. 팀쿡은 가장 중요한 그것을 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니 그가 맡는 애플은 예전 존 스컬리의 애플처럼 히트하는 상품을 적당히 변형해서 우려먹는 것밖에 못하거나, 전혀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엉뚱한 제품을 내놓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의 디자인을 이끌고 있는 조너던 아이브를 꼽는 사람도 있다. 그는 지금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팟,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디자인한 사람이다. 애플 제품을 계속 매력적인 명품으로 이끌어 줄 것은 확실하다. 애플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가 디자인이란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조너던 아이브에게는 디자인 외적인 컴퓨터 기능성을 파악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맞는 기술을 적용하는 능력이 없다.
디자인으로 단순히 부자들이 사는 명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열정적인 매니아를 만들거나 시대를 선도한다는 기술적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조너던 아이브가 이끄는 애플은 곧 구찌나 에르메스처럼 제품 기능 자체는 평범한데 디자인과 감각으로만 승부하는 하이테크 명품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도 2009년 맥월드에서 잡스를 대신해서 잠시 키노트를 맡았던 필 쉴러를 비롯한 여러 인물이 거론되고 있지만 누구도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로 딱 맞는다고 인정되는 사람이 없다.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에 대한 고민을 잠시 세계사적으로 보자. 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와 같은 위대한 정복자 이후의 권력체제가 되어 버려서는 필히 쇠퇴가 온다. 태양빛이 너무 강하면 그 태양이 진 후의 어둠이 너무 짙게 느껴지는 것 같이 말이다.

적절한 해답은 세계사적으로는 로마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원로원과 황제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마치 케사르가 정치적 능력만 있는 아우구스투스와 군사적 능력만 있는 아그립파를 짝지워 제국을 맡겼듯이 공동 경영체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스티브 잡스같은 능력을 한 개인이 모두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럿이 권력다툼 없이 잘 협력할 수만 있다면 집단 경영도 바람직할 수 있다.


더욱 현실적인 모델로는 닌텐도를 들 수 있다. 닌텐도는 애플과 비슷한 혁신 기업이지만 3대째 회장 자리를 바꾸면서도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내부의 화합을 강조하고, 한 사람의 리더쉽에 너무 크게 의존하지 않는 체제가 닌텐도를 안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런 애플의 경우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애플을 막연히 따라배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너무도 강하고 분명한 개인 리더십에 의존한 경영이란 반드시 그 뒤의 공백에서 오는 쇠퇴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오너 직영 체제의 대기업인 삼성이나 LG, SK, 현대 등은 모두가 개인 리더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물론 국내기업은 애플에 비하면 훨씬 권력 분산이 잘 이루어져 있기에 지속가능성이 큰 편이다. 국내기업 역시 애플을 본받으려 할수록 애플의 단점 역시 고스란히 가지게 된다.


스티브 잡스란 슈퍼맨 같은 영웅에 의해 만들어져서 그와 함께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애플. 하지만 그 약점은 바로 영웅이란 존재에 있다. 본래 회사는 영웅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어야만 하는 조직이다. 애플이란 회사에서 잡스란 개인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절실하게 와 닿는 말이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