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과학에서는 어떤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물체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라는 이론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내가 가진 절대반지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그 사람이 설령 유명한 물리학자라서 온갖 이론을 붙여서 복잡한 수식으로 자기 반지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증명했더라고 상관없다. 우리는 그냥 그 사람의 반지를 잠시 빌려서 높은 곳에 가서 놓아버리면 된다.

그래서 반지가 떨어지지 않으면 그때 가서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하면 되겠지만... 적어도 상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그런 반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자연계에서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는 물질은 없으니까 말이다.


비록 과학까지는 아니어도 산업계에서도 확립된 진리가 있다.
결함이 있는 제품은 언젠가 그 사실이 드러난다. 설령 판매가 완전히 끝나고 생산이 중단된 뒤라도 말이다. 그 제품이 인기상품일수록 빨리 드러난다.


외국에서 자동차 등을 구입하기 전에 가장 많이 참조하는 <컨슈머 리포트>가 애플 아이폰4에 관한 기사 하나를 내놓았다. 참고로 이 회사는 최근 자체 스마트폰 리뷰에서 아이폰4에 최고점을 주었던 회사다.

기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컨슈머 리포트는 아이폰4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컨슈머리포트의 엔지니어들은 아이폰4의 테스트를 끝냈고 아이폰4의 수신율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뉴욕의 각각 다른매장에서 구입한 3대의 아이폰4 를 통제된 환경인 CU's radio frequency (RF) isolation chamber 에서 실험한 결과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실험실에서는 외부의 전파신호는 완전히 차단되며, 가상 통신사의 전파신호를 발생시켜 실험했습니다. 우리는 또한 아이폰3GS와 팜프리를 포함한 다른 AT&T의 핸드폰들을 같이 실험하였으며, 그들 중 어떤것도 아이폰4와 같은 신호소실 현상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발견은 그동안 소비자들의 원성에 대한 애플의 반응인 "현재 전파세기보다 +2만큼 표시되는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라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실험은 또한 아이폰4가 마주친 '신호세기재앙'에 있어 AT&T의 네트워크가 주된 이유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안테나 문제의 확실한 해결이 없이는, 저희는 아이폰4를 추천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테이프로 막는 수정이 필요없는 아이폰을 원한다면, 저희는 여전히 이전 모델인 아이폰3GS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Mike Gikas


컨슈머 리포트는 매년 우리 언론이 현대 자동차가 권위있는 미국 잡지에서 어떤 평점을 받았으며 그만큼 한국차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뜻으로 보도할 때 단골로 인용되는 잡지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신뢰성을 인정받은 곳인데 직접 자체 실험까지 해가며 아이폰4의 수신 결함을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사진출처: 컨슈머 리포트

누군가는 원문을 들어 컨슈머리포트가 그냥 <권장하지 않습니다> 라는 표현을 썼을 뿐, <사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며 애플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웃을 수 밖에 없다.

1) 저렇게 보수적이고 조심스러운 잡지에서, 2) 애플 같은 미국 혁신기업 제품에 대해서, 3) 바로 얼마전 자기 잡지에서 최고평점을 주며 극찬했는데, 갑자기 안테나의 심각한 결함이 드러났으니 곧바로 <사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잡지라도 그런 표현은 쓰지 못할 것 같다.


솔직히 애플이 우리를 엿먹일려는 것도 아니고, 의욕적으로 좋은 제품 만들려다보면 설계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애플의 혁신을 좋아하고 아이폰4의 페이스타임에 대해서 많은 기대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함이 있다고 해서 애플을 갑자기 쓰레기 회사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정작 실망은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애플의 완고한 태도에 있다.

애플 지원 포럼에 의하면 컨슈머 리포트는 안테나 문제 때문에 아이폰4를 추천 못한다는 기사를 중심으로 한 메시지 쓰레드를 삭제했다. 애플 지원 포럼 모더레이터가 이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처럼 애플에 불리한 내용들을 삭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TUAW는 전했다.


결함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결함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논의를 하려고 하면 그 자체를 다 막아버리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문득 나는 바로 얼마전에 있었던 도요타의 리콜 사태가 떠올랐다. 자동차와 휴대폰이란 차이만 있을 뿐 두 회사를 둘러싼 사건이 점점 파국으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애플은 도요타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도요타의 리콜은 2009년 8월에 일어난 일가족 참사로부터 비롯됐다. 일가족 4명이 휴일에 나들이를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우리의 119에 해당하는 911에 신고됐던 통화내용이 문제가 됐다. 운전자의 통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속 페달이 고장났어요. 교차로에 접어들고 있구요. 아... 제발, 제발, 오!"

이에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가속페달 결함이 사고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도요타는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2009년 10월, 운전석 매트가 가속 페달을 누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얼마후에는 가속페달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할 용수철 성능이 떨어지는 점을 인정해 대대적인 리콜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이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품질좋고 안전한 차량이었다. 심지어 새 차를 사고나서 다시 중고로 팔 때 가장 좋은 가격을 받는 차였다. 현대차가 중고시장에서 값이 확 떨어지는 것과 대비하며 일본차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도요타는 차량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했다가 하나씩 추가로 인정하면서 마지못해 리콜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요타는 리콜사태에서 1조 원 이상의 금전 피해보다 정작 중요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일본은 이것을 지나친 미국의 일본차 때리기라고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했고 일본의 2ch에서는 미국의 음모라며 도요타의 결함은 있지도 않거나 극히 사소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사태는 회복될 수 없었다. 도요타는 이제 서점에서 경영학 책조차 썰물처럼 사라진 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기업이 되어버렸다.

맨 위에서 내가 든 예시를 상기해 보자.
물리학은 실험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이나 기업을 가지고는 직접 실험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기업의 실패와 성공사례를 연구한다. 간접적으로 인물과 기업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선택을 했으며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연구하면 실험과 같은 법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도요타의 급속한 몰락을 가져온 리콜 사태의 원인과 전개과정이 지금 애플이 아이폰4의 결함을 가지고 겪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본다. 여기서 차이점이라고는 딱 한가지 밖에 없다.


사진출처: 컨슈머리포트

도요타는 일본회사로서 주로 미국시장에서 물건을 팔았고, 애플은 미국회사로서 주로 미국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점이다.

결함이라는 원인도 같고, 부정하고 은폐하려 한다는 과정도 같다. 하지만 아마도 결과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국인에게도 분명히 <배타적 감정>이나 <애국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똑같이 무시당해도 도요타에게 무시당하면 참을 수 없고, 애플에게 무시당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라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정말로 이런 요소에서 자유로운 객관적인 어떤 원칙과 이론만으로 놓고 봤을 때 지금 애플은 도요타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 비록 도요타와 달리 대량 리콜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떻게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둘 다 똑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애플은 아직까지 도요타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애플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어느 시점에서든 방향을 바꿔 도요타와 다른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안그러면 언젠가 도요타 자동차에 탔던 사람의 통화내용과 비슷한 비상 사태가 아이폰4의 결함으로 인해 위험을 겪은 누군가에게서 나올 지 모른다.


단순히 이런 사건을 보고서도 <그래, 다들 아이폰4 사지마라. 그 물량 내가 좀 사마!>, 라든가 <어차피 그래도 삼성보다는 났다. 죽어도 갤럭시S는 안 살거다.> , <잘 봤습니다, 그럼 전 아이폰4 사죠.> 이렇게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농담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어떤 기업이든 할 수 있는 실수이자, 어떤 기업이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수습해야 할 문제다. 애플이 무슨 우리에게 3일간의 교육을 시키고 자석요나 옥장판을 파는 회사는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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