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이론>을 계속해서 이야기해 보자.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애플에서 나온 제품이 모든 분야에서 최고라고 믿는다. 설령 지금은 최고가 아닐 지라도 나중에는 최고가 될 거라고 믿는다.

애플의 아이폰이 일으킨 혁신은 휴대용 기기 모든 분야에 골고루 파급됐다.
단순한 기능을 가지고 패션이나 넣어서 명품화하려고 했던 안이한 휴대폰 회사는 허둥대고 있다.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던 PDA 회사는 완전히 붕괴하고는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MP3플레이어와 PMP 회사들은 고급제품 시장에 직격탄을 맞았으며 장기적으로는 네비게이션 회사나 전자사전 업체도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그 가운데는 닌텐도와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의 휴대용 게임기도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좋아하는 팬보이들은 앱스토어에 올라온 몇몇 게임을 가지고 닌텐도의 NDSL이나 소니의 PSP는 이제 끝났다고 한다. 미래는 아이폰 하나만으로 모든 게임을 해결하게 될 것이기에 이들 휴대용 게임회사들은 끝장났다는 뜻이다.

우선 아이폰이 닌텐도 게임기를 위협할 것이란 근거를 보자.

일본 닌텐도의 지난해 이익이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닌텐도는 5월 7일 2009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순이익이 전년보다 18% 줄어든 2286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도 1조4343억엔으로 전년보다 22% 감소했다.

닌텐도의 소프트웨어 판매량이 3억9850만달러(약 4500억원)로 1년 전보다 22% 하락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나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통해 제공되는 무료이거나 값이 매우 싼 캐주얼(casual) 게임들이 판매량을 끌어내린 요인이라는 게 NPD의 분석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아이폰으로 0.99달러, 혹은 무료인 게임을 가지고 다니며 즐길 수 있게 됨에 따라서 별도로 닌텐도 게임기를 사가지고 다닐 필요성이 줄었다. 따라서 앞으로 닌텐도 게임기를 구입하는 사람은 더 줄어들 것이고 상대적으로 아이폰이나 아이팟 터치, 아이패드를 구입하는 사람은 많아질 거란 주장이다. 승승장구하는 혁신의 애플은 상대가 누구든, 어떤 분야에서 싸우든 이길 테니까.

과연 그럴까?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한때 비지니스 모델로 삼았던 소니를 넘어섰다. 혁신성 면에서도 수익성 면에서도 월등히 앞질렀다. 그래. 이제 소니는 무너졌다. 그러나 슈팅게임에서는 한 스테이지 보스를 깨면 다음 보스가 나온다.
첫판에서 애플이 상대한 노키아나 삼성은 체질상 너무 약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애플이 상대해야 할 다음 스테이지 보스는 다르다. 세계 게임기 업계 최강자 닌텐도다.



닌텐도. 이 회사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제 거의 최후로 남은 일본의 자존심이다. 소니와  도요타의 신화가 무너진 이 시점에서 세계를 상대로 막강한 영향력과 함께 업계 전체를 이끄는 일본 리더기업은 닌텐도가 거의 유일하다.


게임기라는 시장에서만 놓고 보면 닌텐도에게 애플은 상대도 안된다.
IT업계 전체로 봐서도 닌텐도는 애플에게 별로 꿀릴 것이 없다. 이 두 혁신기업은 서로가 그 나라에서 가장 잘났다는 면에서 상당히 닮은 꼴이다.
두 기업의 구체적 지표를 숫자로 만들어 비교하고 싶지만 그래서는 재미도 없고 머리도 아프다. 애플과 닌텐도 두 어린이의 유치한(?) 논쟁 형식으로 설명해보겠다.

1. 애플이 먼저 자랑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를 만들었어. 애플2라고 알아? 거기다 GUI를 탑재한 매킨토시도 만들었지.

그러나 닌텐도는 여유만만하게 대답한다. 아타리 쇼크로 붕괴한 세계 게임시장을 누가 살렸을까? 패미컴이라고 알아? 게임기 역사책 한번 보면 내가 누군지 알 거야. 참고로 휴대용 게임기의 역사도 한번 보지 그래? 세계 게임기 역사는 그 자체가 바로 닌텐도의 역사라고.

2. 애플이 다시 자랑한다. 나는 항상 혁신을 만들어내지. 최초로 개인에게 컴퓨터를 가져다줬고, 마우스란 인터페이스를 도입했어. 멀티터치를 탑재한 스마트폰이란 혁신도 만들었어. 이번에는 가속도 센서와 자이로스코프란 센서를 쓴 앱도 만들거야.

닌텐도는 피식 웃는다. 조이패드 십자버튼이라고 알아? 아날로그 스틱은 누가 만들었을까? 터치스크린? 그건 나도 휴대용게임기에서 쓰고 있거든? 위핏은 아는지 모르겠네? 게임에 센서를 이용한 건 누가 먼저일까?

3. 애플이 고함을 지른다. 하드웨어는 됐어! 중요한 건 컨텐츠야! 나는 OSX도 가지고 있고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도 있어! iOS도 있지. 넌 가진 게 뭐야?

닌텐도가 주머니에 오른손을 넣더니 쓱 하고 이상한 모자를 쓴 배관공 아저씨를 꺼낸다. 슈퍼 마리오 아저씨, 컨텐츠가 뭐죠? 그러더니 다음에는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귀여운 동물 하나를 꺼낸다. 야! 포켓몬, 너는 혹시 아냐? 저기 애플이 자꾸 컨텐츠가 중요하다고 그러는데?

4. 애플이 인상을 쓰며 지갑을 꺼내 보인다. 나 지금 시가총액에서 MS를 제쳤어. 은행빚은 하나도 없고 현금보유고도 어마어마해. 네가 나한테 상대나 될까?

닌텐도 역시 지갑을 꺼내보인다. 너만 돈 있냐? 나도 빚없고 현금도 무지 많아. 아마 지금부터 나 버는 거 한푼도 없어도 20년 이상은 거뜬히 회사 운영할 수 있을걸? 게다가 난 너처럼 가치가 하락하는 달러도 아니고 엔화거든?

5. 애플은 마지막 수단을 쓴다. 하지만 너 요새 좀 못나가잖아? 판매증가율도 감소했다며? 너에게는 미래가 없어!

닌텐도는 어깨를 으쓱 한다. 약간 감소하긴 했지. 그런데 닌텐도 게임기가 이미 얼마나 팔렸는지를  알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전세계 뒤져서 네 플랫폼 숫자와 내 플랫폼 숫자로 비교해서 과연 상대나 될까? 그리고 나는 곧바로 3D 게임기로 갈 거거든? 너는 그냥 2차원에서 놀 거지?



애플에게 있어 최대의 강적은 닌텐도다.
물론 두 업체는 영역이 다르다. 굳이 애플이 휴대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닌텐도가 스마트폰 시장을 넘보지 않는다면 마주칠 일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 업체는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소비자의 힘과 시장상황이란 폭풍에 휘말려 점점 싸워야 되는 상황으로 다가서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비슷한 기능을 하는 물건을 여러개 들고 다니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애플이 질좋은 휴대용 게임을 꾸준히 앱스토어에 제공해준다면 적어도 아이폰을 가진 사람에게 닌텐도 게임기는 별 매력이 없다. 이것은 닌텐도 입장에서 보면 자기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다.
 


앱스토어는 애플만의 강점이다. 그러나 그 안의 게임 카테고리만 놓고 닌텐도의 입장에서 보자면 메이저리그 야구가 들여다보는 한국프로야구 수준이랄까. 많이 크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 질 좋은 게임이란 측면에서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분명 아이디어가 좋은 게임도 있긴 하지만 게임기로서 아이폰의 단점은 조작계통이다. 발달된 터치스크린과 센서가 있긴하지만 버튼이 너무 없다. 따라서 조작 반응속도가 떨어진다. 이번 아이폰4에서는 센서가 더욱 발달했다. 하지만 화면과 붙어있어 닌텐도의 위처럼 마음껏 흔들고 던지면서 동시에 게임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애플의 보스 스티브 잡스가 아직까지는 아이폰을 이용해서 닌텐도와 맞설 뜻이 없다.
이번 D8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이용해 많은 좋은 게임이 나왔다는 질문에 그저 게임의 발전속도가 놀랍다는 말만 하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가했다.

혹자는 이걸 보고 잡스가 게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기에 그렇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잡스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즉각 그 분야를 공부하고 전문가를 영입해서 기반을 쌓는다. 그럼에도 잡스가 굳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쪽에서 확고한 위치는 다진 닌텐도와 대립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잡스는 일단 상대해야 할 라이벌에게는 가혹하다. 아이폰의 성과를 자랑하면서 이제 애플이 노키아와 삼성을 넘어선 모바일 회사라고 말했다. 또한 MS가 지배한 PC를 두고 언젠가는 사라질 트럭 같은 존재라고 거침없이 표현했다. 그러니 마음만 먹는다면 <아이폰은 닌텐도를 능가할 게임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강적 닌텐도와 전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이미 애플은 검색업계의 공룡 구글과 전쟁중이다. 컴퓨터에서는 MS와 대립중이며, 휴대폰에서는 노키아, 삼성,모토롤라를 비롯한 다른 모바일회사와 경쟁 중이다. 여기에 최근 소프트웨어 업체인 어도비와 플래시를 둘러싼 분쟁도 벌였다. 솔직히 이이상 전선을 확대해서 닌텐도까지 상대하는 건 아무리 애플이라고 해도 위험하다.


전에 잡스는 구글과의 관계를 말하며 이렇게 비난했다. <우리는 검색사업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구글은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싸움을 건 것은 구글이며 애플은 정당하게 도전에 응한 것이란 대의명분이다.

그런데 만일 잡스가 <아이폰으로 휴대용 게임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해버리면 스마트폰에 전혀 관심도 없던 닌텐도의 얼굴을 느닷없이 걷어차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닌텐도는 지금 한창 모락모락 피어나는 루머인 NDSL 탑재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공격을 해오는데 방어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직 애플과 닌텐도는 다른 영역에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화 내지는 불가침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내 생각에는 그다지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이 두 혁신 회사는 곧 싫더라도 경쟁체제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모바일 게임이란 영역을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는 한 전면전은 언젠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애플 VS 닌텐도, 결전의 날이 다가온다.

그 날이 오면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양쪽이 모바일 게임이라는 시장에서 사활을 걸고 마주쳐서 경쟁하게 되면 얼마나 근사한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이어지는 포스팅에서는 이런 피할 수 없는 결전을 앞둔 닌텐도와 애플의 장단점을 보다 깊이있게 분석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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