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법이 기술발달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IT업계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기존 영역의 경계를 뛰어넘는 신기술이 나온다. 따라서 이런 기술 발전을 미리 예상하고 법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늦은 대응은 이런 변명만으로 용납하기 힘들다. 업계의 이해관계와 규제당국의 무관심이 소비자의 권리를 오랫동안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스마트폰에 미리 깔려 있으면서 지울 수 없었던 기본탑재 앱을 삭제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구입할 때 기본적으로 깔려나오는 제조사와 통신사 기본앱은 스마트폰의 성능을 저하시키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어왔다. 그동안 제조사와 이통사들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삭제 자체를 불가능하게 놓았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OS가 탑재된 최신 스마트폰에는 최대 60여개가 넘는 기본탑재 앱이 설치되어 있다. 이 앱은 주로 통신사 관계사, 단말기 제조사가 만든 앱으로 시스템 영역에 설치돼 있다. 따라서 루팅을 통하지 않으면 삭제할 수 없으며, 기본메모리에 상주하므로 사용할 수 있는 메모리 영역까지도 잡아먹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스마트폰에 기본탑재된 앱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삭제할 수 있는 선택권을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몇몇 매체에서 이와 관련해서 보도하기도 했다.

2014년 1월 8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삼성, LG, 팬택 등 단말기 제조사와 SKT, KT, LG U+ 등 이동통신사는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탑재된 스마트폰의 기본탑재 앱을 삭제 가능하게 만드는 데 합의했다.

올해 4~ 5월에 나오는 제조사들의 차기 신제품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휴대폰 구동에 필요한 필수앱 이외에는 언제든지 기본탑재 앱의 삭제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다만 여기에는 제한이 있다. 국내 제조사와 이통사와 관계된 앱만 삭제가 가능하며 구글에서 제공하는 운영체제 기본 앱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번 스마트폰 기본앱 삭제 가능 조치는 소비자 권리를 신장시킨 올바른 조치다. 이 자체만으로는 칭찬받아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기상으로 늦은 감이 있다. 따라서 좋은 조치임에도 아무도 이번 조치를 가지고 규제당국이나 관련업체를 칭찬하지 않고 있다.

이미 2년 전 국내에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을 때 기술에 밝은 얼리어댑터를 중심으로 이런 기본앱 삭제 문제가 제기되었다. 소비자들이 아직 충분히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점이지만 앞선 사용자를 중심으로 나온 목소리에 충분히 정책당국이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업계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며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이제야 구체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안은 많이 터져나올 것이다. 구글 글래스와 갤럭시기어 등 웨어러블 컴퓨터로 인한 사생활침해 논란, 스마트폰의 위치서비스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는 대중화되는 기술에 대해 법이 제대로 정비되어야 함을 경고하고 있다. 몇 년 늦은 기본앱 삭제 가능 조치처럼 올바른 조치를 하고도 제대로 칭찬받지 못하는 것은 규제당국에 있어서도 서글픈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