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IT기업이 화려하게 신제품을 발표하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경영진이 직접 제품을 들고 올라가서 힘찬 목소리로 기술과 미래를 역설하는 것도 익숙하게 보인다. 그리고 어떤 발표회가 끝나면 언론이 일제히 '혁신'이란 기준으로 그것을 평가하는 것도 흔한 광경이 되었다.


혁신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애플, 그리고 스티브 잡스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세계적 성공을 거둔 모범사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움직임은 한발 늦다. 음악기기의 혁신이라는 아이팟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대부분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알지 못했다. 음악산업에 미칠 파급력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하물며 여기에 혁신이 있었다고 평한 언론도 거의 없었다.


첫 아이폰이 발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뜬금없이 애플이 휴대폰을 만든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하던대로 컴퓨터 제품을 내놓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으려면 생소한 분야로도 과감히 진출해야 한다. 그러니까 발표회에 혁신이 있으면 언론은 엉뚱한 제품을 내놓았다고 비판할 것이다. 반대로 늘 내놓던 익숙한 제품을 내놓으면 언론은 혁신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삼성과 애플의 최근 행보를 두고 언론이 '혁신'을 주제로 삼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 주간경향에서 혁신을 논제로 삼은 기사를 보자. 제목은 '삼성과 애플 ‘혁신’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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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경향>의 갤럭시S4 기사에서 “삼성이 애플보다 먼저 갤럭시워치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IT평론가 안병도씨는 “삼성이 잘하는 것과 애플이 잘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의 하드웨어 기술력은 뛰어나기 때문에 단순한 기능을 구현하는 제품은 더 빨리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능으로 무엇을 할 것이고,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될까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게 이번 갤럭시 기어 출시를 보면서 가진 생각이다.”


팀 쿡 체제에서 기존에 만들어진 제품의 소프트웨어·하드웨어적 개선을 제외한 기기적 혁신은 더 이상 없는 걸까. 안병도씨는 “스티브 잡스 사후 더 이상의 혁신이 없자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다른 기업으로 이직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라며 “혁신의 동력이 쇠퇴할 것이라는 염려는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애플에서 ‘iTV’라는 이름으로 스마트TV가 나온다고 하자 소니나 삼성 등 기존 가전업체들이 바짝 긴장해 스마트TV를 양산했지만, 막상 제품이 안 나오자 업계의 긴장이 식은 것이 사실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시 말해 애플발 ‘혁신’이 없으면서 동시에 업계 전체의 혁신 속도도 둔화되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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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전화로 인터뷰한 기자는 세심하게 여러가지를 물었고 여러 관점을 잘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이 기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기사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있다. 어째서 사람들이 애플과 삼성에게 집요하게 혁신을 요구하는가? 라는 것이다. 


애플과 삼성, 어째서 혁신을 요구받을까?  


두 회사에 무슨 법적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약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매번 신제품 발표회에서 혁신이 있을까 기대하고 혁신이 없다고 실망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혁신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한다. 물론 변화를 바라는 사람 입장에서는 계속 혁신이 일어나서 재미있는 제품과 서비스가 끝도 없이 나와주기를 바랄 것이다. 관련 제품으로 먹고 사는 산업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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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기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다가 어느 순간 점프하듯이 혁신한다. 그러다가 다시 점진적 발전으로 돌아간다. 어떤 기술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속도로 혁신을 이룰 수 없다. 현실은 게임처럼 마우스만 클릭하면 증기기관이 만들어지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내연기관이 곧바로 발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시드마이어의 게임 '문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의 테크트리를 올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슬프지만 우리가 왜 이렇듯 애플과 삼성이란 두 회사에 과도한 기대를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내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애플이 무엇인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다른 업체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무엇인가라도 내놓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관습처럼 해오던 그대로 부품만 약간 바꾸고 인터페이스만 약간 손대서 신제품을 내놓는다. 그것이 바로 지난 시절의 피처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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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스마트폰 점유율에서 애플을 넘어섰다. 엄청난 생산력과 뛰어난 품질관리로 애플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 삼성에게도 이제 그런 '사냥꾼 효과'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삼성이 무엇인가 새로운 제품으로 업계를 압박해서 다함께 소비자를 위해 고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혁신이란 것은 그 모든 바램을 압축하는 단 한마디의 단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두 회사 모두 현재는 동력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또다른 혁신을 위해 내부의 연구실에서는 어떤 제품이 있는지 모르지만 외부에는 크게 변화된 플랫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온전히 소비자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삼성과 애플 두 회사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이 더욱 힘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혁신은 더욱 많이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애플에게는 기분좋은 자극을 주는 약으로, 삼성에게는 엄격한 채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