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그런 가능성과 별개로 영역을 나누는 습관이 있다. 능력 차이와는 별 상관도 없는 요소로 말이다. 농구나 권투는 어쩐지 흑인이 잘할 것 같고 피겨스케이팅은 오랫동안 백인만이 우승을 나눠가지는 곳이었다.



삼성GPU


지금 IT업종에도 그런 선입관이 없을까? 예컨대 운영체제나 CPU를 아시아에서 만든다고 하면 기대보다는 의심을 먼저 받는다. 오랫동안 그것들은 서구에서 만들고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컴퓨터 메모리나 휴대폰 역시 그런 영역이었다가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선입관이란 성공사례가 나오면 바로 깨지게 마련이다.


삼성전자가 컴퓨터에 쓰이는 그래픽가속칩(GPU)을 위탁생산한다는 뉴스가 있다.(출처) 



삼성전자가 미국 팹리스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의 그래픽프로세싱유닛(GPU)을 위탁생산키로 했다.


삼성 파운드리가 GPU를 위탁생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엔비디아는 PC용 개별 GPU 시장에서 약 7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1위 업체다. 이 회사의 연간 GPU 출하량은 약 1억개에 달한다.


엔비디아는 그간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에 GPU 위탁생산을 맡겨왔다. 하지만 간헐적 수율 저하 문제로 칩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삼성전자와도 파운드리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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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엔비디아는 ‘85% 이상 수율 달성’을 가계약 조건에 넣어 삼성전자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계약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부장인 우남성 사장은 물론 삼성전자 DS부문 총괄인 권오현 부회장과 이재용 부회장까지 이 사안을 직접 챙기고 나섰다.


3월 25일 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LSI 내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 초부터 엔비디아의 PC용 GPU ‘지포스 GTX 600 시리즈(아키텍처명 케플러)’를 28나노 공정으로 위탁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 파운드리는 그간 자일링스, 애플, 퀄컴 등과 계약을 맺고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모뎀(베이스밴드)칩 등을 위탁생산해왔다. 삼성전자는 이번 엔비디아와의 계약을 통해 GPU 위탁생산의 첫 테이프를 끊게 됐다.


현재 삼성 파운드리의 GPU 생산 수율은 20%선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업 실무자들은 2개월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감힘을 쏟고 있다.


그래픽가속칩은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그동안 시장에서 많은 경쟁이 있었지만 현재는 CPU를 만드는 인텔의 내장그래픽인 HD시리즈, AMD가 인수한 ATI시리즈, 그리고 독립적인 업체로는 엔비디아 하나가 의미있는 경쟁자로 남았다.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칩은 특히 성능이 뛰어나서 게임과 과학연산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여기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것은 애플이다. 삼성부품에서 벗어나고 싶은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APU생산을 삼성 대신 대만의 TSMC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데 TSMC는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로서 그동안 엔비디아의 그래픽칩 생산을 맡아오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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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수율이 잘 안나와서 문제를 겪던 엔비디아는 애플 때문에 더욱 칩을 받지 못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 어디선가 그만한 물량을 생산해줄 곳이 필요하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상당한 물량을 주문해주던 애플이란 주문자를 잃을 상황이다. 그만한 대체 주문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양사의 목적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GPU 생산, 성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수율이다. 가뜩이나 엔비디아의 칩은 그동안 TSMC조차도 종종 수율을 맞춰주지 못했다. 수율이란 불량품을 뺀 양품의 비율을 말한다. 하나의 판에서 한꺼번에 백개의 칩을 찍어냈을 때 삼성은 현재 20개만 정상동작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80개까지 끌어올려야 제대로 엔비디아에 칩을 공급할 수 있다. 


수율이 낮으면 그만큼 많은 작업을 해서 적은 제품만 얻을 수 있으므로 가격이 비싸진다. 비싸게 공급받으면 소비자가격이 높아지므로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번 삼성전자의 도전은 상당한 모험이다. 자칫하면 수율 확보에 실패해서 금전적 손실과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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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성전자의 역사를 생각해보자.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의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빴다. 일본이 시장을 차지했고 기술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삼성은 64K 디램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세계최초와 최고의 집적도를 가진 제품을 만들었고 결국 1위업체가 되었다. 


GPU생산 역시 마찬가지다. 대만업체가 해왔던 것을 굳이 삼성은 불가능할 거라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수율확보는 그동안 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이 최고로 자랑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였다. APU등 다른 부품에서도 항상 삼성은 최고 수준의 수율을 확보해왔다. 따라서 성공가능성은 분명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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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도전정신이다. 이전의 삼성에는 절박함이 있었고 강력한 리더쉽이 있었다. 과연 GPU공급을 향한 이번 도전에서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강력하게 수율향상을 해낼 수 있을까? 현재 삼성전자의 능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를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