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실속을 중시하는 사람은 흔히 명칭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실제로 달걀 하나를 살 수 있는 가치의 화폐에 대고 '10원' 이라고 하든 '1천만원' 이라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재가치이며 사람들은 언제든 현명하게 내재가치만을 본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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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되는 현실론자(?)도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외형과 명칭에 집착한다는 주장이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유명 브랜드를 붙여놓았을때 사람들이 어떤 것을 선호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하긴 예전에 본 일본 방송에서 허영을 좋아하는 여자에게 한 병에 천만원 짜리라면서 만원도 안되는 싸구려 와인을 먹였을 때 보여준 반응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IT업계에 있어서도 명칭은 중요하다. 스티브잡스가 애플(Apple)이란 회사 이름을 붙였을 때 그것이 전화번호부에서 대부분의 회사보다 앞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만 해도 그렇다. 적어도 스티브 잡스의 이전 직장인 아타리(Atari) 보다 앞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덧붙여보자면 이런 애플보다 전화번호부에서 앞에 나오는 유명한 IT기업이 있다. 바로 아마존(Amazon)이다.


정당한 자존심인지, 아니면 유치한 기세싸움인지 몰라도 애플과 아마존은 '앱스토어'란 명칭 다툼을 가지고 법원에서  그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이전에도 내가 포스팅으로 그 부분을 지적한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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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아마존을 상대로 앱 스토어 명칭과 관련해 제기했던 소송에서 패소했다.


1월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지방법원의 필리스 해밀턴 판사는 아마존이 온라인 장터 앱 스토어의 이름을 모방해 사용,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애플의 주장을 기각했다.


앞서 애플은 아마존을 상대로 상표권 소송을 제기하면서 아마존이 모바일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발자들을 불러모으려고 앱 스토어라는 용어를 오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아마존은 앱 스토어라는 명칭은 이미 보편화돼 있고, 이를 사용하는 것이 허위광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아주 간단하고도 깔끔하다. 합의를 유도한 것도 아니고, 양쪽의 과실이 있다는 교통사고 같은 판결도 아니다. 격투기의 승자판정처럼 명확하게 애플의 패소, 아마존의 승소이다. 결국 아마존의 주장처럼 '앱스토어'란 일반 명칭은 애플이 독점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독자 브랜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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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앱스토어 명칭 패소가 상징하는 것은?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애플이 틀렸다거나 아마존이 옳다는 문제가 아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지 원인을 찾아서 이번 패소가 상징하는 바를 풀어내고자 한다.


사실 이번 소송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애플이 만일 '애플 앱스토어' 란 명칭을 독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앱스토어'란 명칭 독점을 원했다. 이미 '애플'이란 거의 일반명사에 가까운 단어를 브랜드로 끌어올린 당사자인 만큼 보다 간략하고 직관적인 이름을 브랜드로 쓰려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망막이란 뜻의 '레티나' 란 단어가 언제 애플의 고유 상표로 등록될 지 모른다. '레티나 디스플레이' 가 아니라 '레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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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은 어플리케이션의 약자이며, 스토어는 일반적인 가게를 뜻한다. 애플은 이런 단순한 단어조합을 좋아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애플의 감성이란 보다 간단하고도 직관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데 있다. 애플 디자인의 대표격인 미니멀리즘이 바로 그런 예다. 단순하고도 기능미가 살아있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덕지덕지 붙이는 걸 싫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 앱스토어'와 '앱스토어'는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별 차이도 아니지만 애플 입장에서는 심각한 차이였다. 단순히 알파벳 다섯글자를 덜 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필요없는 군더더기가 붙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플은 자사 이름조차도 칠 필요가 없는 앱스토어란 명칭 자체를 자기것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애플이라는 회사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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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계속 용납될 수 있는 지는 다른 문제이다. 몇개 정도라면 몰라도 지금 성장하고 있는 애플은 단순한 단어에 대해 자사제품과 결부시키고 이것을 그대로 브랜드화시키려 한다. 따라서 그때마다 용납한다면 어떤 단순한 단어가 애플의 독점상표가 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애플은 한번 차지한 상표에 매우 민감하기에 힘도 없는 외국의 '애플'이란 상점 이름 하나에게 고소위협을 가한 적이 있다. 너그럽지도 않은 업체가 고유명사를 브랜드로 삼게 되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아마존이 이번 소송의 결과로 아마존 앱스토어란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고, 그냥 앱스토어란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애플의 이번 명칭소송에서 상징하는 바는 간단하다. 애플의 철학인 미니멀리즘이 브랜드쪽으로는 확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애플은 앞으로 브랜드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