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투표와 개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위험인물을 뽑아서 도시 밖으로 추방하기 위한 도편추방에서도 그 투표와 개표는 엄숙하게 이뤄졌다. 하긴 그 결과에 따라 한 인물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니 허술하게 한다면 억울하게 추방되는 사람이 속출할 게 뻔하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도 4.19 혁명을 부른 결정적 사건은 자유당의 부정선거였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투표란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발생했던 중앙선관위의 디도스공격 내지는 데이터베이스 해킹 사건이 그토록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투표소 안내가 잠시 지연되었다는 그 사실 때문일까. 중립적이고 어떤 실수도 없어야할 중앙선관위의 기능이 어떤 의도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자체가 질서를 파괴하고 민의 자체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달함에 따라서 투표가 온라인에서 전자식으로 이뤄지도록 진화하고 있다. 보통 이런 방법이라면 보다 투명하고 정확한 선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지금 거액의 금융거래나 주식투자를 하고 있으며 전자상거래도 문제없이 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민주통합당이 모바일 경선을 했고 통합진보당도 그런 방식을 도입했다. 그런데 바로 이 전자투표가 문제다. 결과를 전송받고 관리하는 시스템의 관리가 바로 전체 결과의 신뢰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합진보당의 경선 시스템이 총체적인 부실과 부정의혹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출처)

통합진보당(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진보당의 향후 대응방안을 지켜본 뒤 수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고위관계자는 5월 7일 "현재 진보당에서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우리도 저쪽 상황을 지켜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하니 마니 하면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도 상황을 조금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검찰이 확보하고 있는 자료는 진보당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보고서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진상조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아직 조사하지 않았지만 고발인 조사는 완료했다"며 "현재 압수수색영장이나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단계까지 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수사가 늦을수록 자료 확보가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진보당이 가지고 있는 자료라는 것은 결국 진상조사위원회의 자료일 텐데 설마 그걸 폐기하겠느냐"며 "투표 명단이나 서버 자료 등의 확보 여부는 앞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뒤 판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전자투표 관리를 맡은 컴퓨터의 로그파일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로그파일과 제반 결과값 파일에 누군가 접근해서 수정이나 삭제를 하더라도 이것을 검출할 안전장치가 부족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권한이 없는 사람이 무단으로 전자투표 관련 서버의 소스코드를 열람하고 수정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일 IP에서의 중복투표 의혹도 있었다.

그런 사실이 실제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어떤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사실만으로 이에 수반된 제반 선거결과를 국민에게 안심하고 믿으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토록 파문을 부르고 있는 이유다.

전자투표에서 IT시스템은 왜 중요할까?



나름 IT선진국으로 자부하며 제반 인프라가 잘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따라서 앞으로 점점 전자투표에 대한 요구는 높아져 갈 것이다. 관리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전자투표는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도 빠르고 정확한 의사표현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확대될 수록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투표를 관리하는 IT시스템이다.

시스템이 빠르고 편해진다는 건 또다른 역효과도 부른다. 바로 그 결과와 과정을 조작하기도 빠르고 편해진다. 일반적으로 종이에 써서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고 봉인한 물리적 투표함은 조작하기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투표용지를 일일이 위조하고 가짜 투표함을 만들거나 바꿔치기하는 물리적 노력이 들어간다. 그렇게 해도 막상 얼마 위조하지 못한다. 그러나 전자 시스템은 해킹에만 성공한다면 간단히 데이터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훨씬 엄청난 숫자의 조작이 가능하다.


따라서 전자투표는 그 결과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해당 IT시스템의 보안과 설비가 중요해진다. 내가 찍은 한표가 왜곡되거나 삭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투표가 의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이 뽑은 대표선거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단지 오류가 나면 나중에 돈으로 보상해주면 되는 전자상거래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혹자는 이런 뉴스를 보고 전자투표 자체를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만 이뤄진다면 오히려 가장 조작하기 힘든 것이 전자투표이기도 하다. 부디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각 정당과 단체들이 전자투표에서 업체를 선정하고 관리할 때 더욱 철저하기를 바란다. 이번 통합진보당의 경선부정 사태를 보며 내가 절실히 느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