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종종 잊어버리고 있는 사실이 있다. 어떤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길은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자연계를 예로 들어보자. 물을 수증기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간단한 방법은 끓이면 된다. 그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은? 그냥 어딘가에 뿌려놓고 건조시켜도 된다. 드물게는 아주 낮은 온도에서 자연기화되기도 한다. 어쨌든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일생의 라이벌인 빌 게이츠는 IT에 있어 서로 다른 접근방식을 썼다. 잡스는 처음부터 끝까지-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전부 통제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게이츠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주력하는 전문회사끼리 협동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이런 경쟁에서 패했다. 그 암흑기에 빌 게이츠의 방식이 미래를 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모두 믿었다. 애플의 방식이야말로 구시대적이며 아날로그적인 방법이라고 비판받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애플의 방식이 미래를 여는 유일한 방법이며, MS의 방법이 시대에 뒤졌다고 비판받는 세상을 맞이했다.


과연 진리는 하나일까? 그것도 지금은 죽어서 전설이 된 단 한사람이 부르짖던 예언만이 금과옥조일까? 위대한 사람은 그대로 존경받아야 하지만 그 사람이 남긴 것만이 진리일 수는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목표를 이루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것은 오로지 KTX가 정답이라고 누군가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비행기가 정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삼성이 내놓은 5인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가 5백만대를 넘게 팔렸다는 뉴스가 나왔다.(출처) 




삼성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가 3월 28일 기준 전세계 5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이는 전세계 100만대가 팔린 지난 12월 29일 발표 이후 3개월 만에 400만대가 추가로 판매된 것다. 500만대 판매 중 국가별 판매량은 밝히지 않았으나, 국내에서는 지난 3월 5일 100만대 판매를 달성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갤럭시 노트는 다음달 일본시장에도 NTT도코모를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이 뉴스의 의미를 제대로 한번 생각해보자. 작게 보면 이것은 삼성이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제대로 다시 한번 강자의 위치를 과시혔다는 의미다. 갤럭시S와 S2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는 셈이다. 빠른 추격자로서 삼성의 저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지만 좀더 생각을 넓혀보자. 이건 단지 한 기업의 성공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갤럭시노트는 철저하게 반대쪽의 강자 애플이 외면해온 컨셉의 기기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크기를 3.5인치에서 더 키우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있었다. 혹은 별도의 화면 크기를 키우거나 줄인 모델을 만들라는 요청도 있었다. 그렇지만 잡스는 전혀 그럴 뜻이 없었다. 소비자는 어차피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걸 모른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니까 3.5인치라는 크기는 애플이 찾아낸 최고의 크기이며, 그 외에는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아이패드의 10인치 화면 크기를 좀 작게 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아이패드 미니에 대한 루머는 끊임없이 나왔고, 안드로이드 진영은 6인치 태블릿을 내놓았다. 하지만 잡스는 손가락을 사포로 갈아내기 전에는 불편해서 더 작은 크기는 못쓴다며 거부했다. 나아가 다른 태블릿은 곧바로 사망할 것이라 예언했다. 초기 갤럭시탭부터 시작해 작은 크기의 태블릿이 사장되고 10인치가 주류가 되면서 그 예언은 맞는 듯 했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는 결국 표출된다. 4인치를 넘어 슬쩍 크기를 올려가는 안드로이드 진영은 5인치 기기까지 내놓기에 이른다. 이른바 '스마트폰으로는 너무 크고, 태블릿으로는 너무 작은' 기기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애매함으로 인해 갤럭시노트가 실패할 것이라 예측했었다.




갤럭시 노트의 성공이 보여준 빛과 그림자는?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갤럭시 노트는 펜입력과 화면크기를 결합해서 새로운 장르를 하나 만들어냈다. 엘지의 옵티머스 뷰라는 경쟁제품까지 나왔다. 핸드백에 편하게 넣을 수 있고 통화도 할 수 있는 기기로서 갤럭시노트는 오히려 태블릿도 되고 스마트폰도 되는 통합제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상징하는 빛은 명백하다. 애플과 잡스가 그것은 안된다고 말하더라도 성공할 건 성공한다는 뜻이다. 진리가 온전히 애플의 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플의 길은 훌륭하지만 그 길이 아닌 다른 곳에도 개척해서 성공할 길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갤럭시 노트의 성공이 보여주는 길이다.




이것이 상징하는 그림자 역시 명백하다. 애플은 이렇게 최적의 화면크기와 인터페이스를 찾아서 집중하면서 거의 실패를 겪지 않았다. 마치 마법이라도 건 듯 연신 성공했고 관심을 모았다. 애플은 정녕 아이돌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경쟁업체는 그렇게 우아하고 화려하게 성공할 수 없다. 그들은 애플이 아니기에 부딪치고 깨지며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다른 성공의 길을 알아낼 수 밖에 없다. 그림자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부러 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편하게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눈에 편하게 보이는 직관적인 전략과 마케팅은 애플의 몫이다. 경쟁업체가 애플과 다른 방향으로 성공을 거둘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각오한 도전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갤럭시 노트의 성공은 이런 사실을 너무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