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IT업계에서 텔레비전이라고 하면 더이상 첨단기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 흑백티비로 영상이 나오고 컬러티비로 색상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이자 미래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서 누구나 티비 한대쯤은 가볍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과 태블릿, 콘솔게임기가 득세한 시대다. 티비는 그저 흔해빠진 가전기기로 격하되었다. 더이상의 성장이 멎은 기기로서 말이다.


그러나 사실 발전성이 없는 기기라는 게 어디 있을까? 그것에 매달린 사람들이 멋대로 기대하고 포기할 뿐이다. 기기는 언제든 시대에 맞춰서 변할 수 있고, 그런 변화로서 생명력을 가진다. 티비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똑똑하게 변하는 스마트시대를 맞아 티비도 마침내 스마트TV로 거듭나게 되었다. 컴퓨터와 모니터, 콘솔게임기에 밀리는 상황을 깨치고 일어나서 가전제품의 중심이자, 가정의 허브기기로서의 역할을 가하겠다는 선언이다.


2월 8일, 삼성 서초동 사옥에서 열린 스마트TV발표회장에 갔다. 블로거를 초청해서 펼치는 이 행사는 기자들에게도 미리 발표할 만큼의 야심작이 있었다.


특히 요즘은 삼성이 아주 적극적이다. 본래 삼성은 반도체부품과 가전제품 완제품 양쪽에 걸쳐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대응을 게을리한 충격에 잠시 휘청거린 적이 있었다. 근래에 와서 완전히 회복하고 더욱 탄탄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같은 실수를 텔레비전 시장에서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티비의 미래, 지금 당신의 눈앞에. 아마도 삼성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미래’와 ‘지금’ 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혁신되고 결합되는 요즘은 ‘미래’를 준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경쟁사들이 속속 야심찬 제품을 내놓는 상황에서는 ‘지금‘  당장 그 미래를 위한 제품을 보여주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정식발표회가 열리기 약간 전에 도착한 나는 미리 설치된 부스에서 제품을 체험했다. 번잡한 기기가 아닌 ‘TV’ 하나에 집중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보인 제품은 3D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3DTV였다. 기술만 있을 뿐 볼만한 컨텐츠가 없다는 점을 의식한 듯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유튜브의 3D컨텐츠였다.


사실 3D영상을 촬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눈처럼 시차를 둔 두 개의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는 나중에 두 영상을 적당히 섞어서 인코딩해 표시해주면 된다. 인코딩 방식에 따라 안경식이냐 무안경식이냐, 편광필터식이냐 셔터글래스식이냐로 나눠질 뿐 촬영 방법은 전부 동일하다. 그러기에 유튜브를 이용해서 영상컨텐츠를 수급하거나 거래하는 방법은 좋은 발상이다. 


다만 현장에서 직접 본 유튜브 영상에는 편차가 좀 있었다. 분명 안경을 쓰고 거리와 시야각을 유지했음에도 입체감이 잘 안느껴지고 머리만 아픈 영상이 있는가하면 편안하게 입체감이 잘 느껴지는 영상도 있었다. 아무래도 촬영 기자재의 품질에 따라 이것을 재현해주는 디스플레이에서도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그 옆에 있는 Free 3D VOD(무료 입체영상 비디오)에서는 입체감이 좀더 잘 느껴졌다.




올쉐어 플레이(allshare play)라 불린 서비스는 일종의 지능형 클라우드 서비스였다.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를 즐기세요.‘ 라는 문구대로 웹에 떠있는 서버에 영상이나 사진을 보관해두고는 스마트폰 스마트티비에서 자유롭게 꺼내보는 것이다. 구름 아이콘에 웹스토리지라고 표시한 부분이 살짝 재미있다.


위핏을 닮은 피트니스 서비스도 있었다. 스마트TV 앞에서 체중을 재고 운동을 하면서 얼마만큼의 칼로리가 소모되었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 동작 인식 기능으로 조절하면서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외에도 웹서핑이나 다른 앱의 사용등 스마트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본격적인 스마트티비의 조작 인터페이스를 보기 위해서는 한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스마트 인터액션이란 타이틀대로 스마트티비가 사람의 명령에 똑똑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세한 조작법은 미녀 도우미가 친절히 설명하는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길 바란다.



요약하자면 하이티비(Hi,TV) 라는 신호를 먼저 보낸 후 명령을 하면 티비가 음성명령으로 각종 동작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콘솔게임기의 키넥트와도 비슷하게 동작으로 음량이나 채널을 조작할 수 있으며, 터치 기능이 지원되는 리모콘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얼굴인식기능을 이용해서 티비 앞에 있는 사람을 카메라를 통해 정확히 인식하는 기술은 상당히 놀라운 기술이었다. 보안이라든가 여러 가지에 응용할 수 있을 듯 싶다. 삼성이 미래의 스마트티비에 대해서 조작성을 향상시키려 했던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음성인식, 클라우드 결합, 3D 영상, 피트니스, 모션캡처, 얼굴인식, 터치형 리모콘 등 미래형 기능을 한군데 집중시킨 점은 나름 훌륭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기존에 다른 업체에서 게임기나 컴퓨터, 스마트폰에 썼던 기능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삼성만의 어떤 개성이나 철학이 느껴지는 기능이 없었다.


부스에서의 설명을 전부 들은 후 발표회장에 들어왔을 때, 이미 행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다소 딱딱했던 이전의 발표회장과는 달리 가볍고 비교적 발랄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이용자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설명하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설명 자체는 아까 전부 보고 들었던 것이라 새로운 게 없었다. 

‘이것 뿐인가?’ 라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려고는 순간, 음악이 바뀌며 한 가지 요소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 남자가 손바닥만한 카드 하나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삼성 스마트TV, 미래형 진화 기능을 선보이다.

진화하는 스마트티비. 그것이 바로 이 카드의 정체였다. ‘에볼류션 킷’이라고 명명된 이 하드웨어를 티비에 꽂는 것만으로 티비에 더 많은 기능과 함께 처리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기능으로 종래 어떤 회사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 최초라는 자막이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시원한 이미지와 음악이 흘러지나간 뒤 더 많은 기능 설명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더이상의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마치 궁금증을 유발하는 티저광고처럼 이 부분은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되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시도 자체는 상당히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예전 8비트 시대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 컴퓨터에 확장슬롯이 달리던 때, 애플2 컴퓨터는 CP/M 카드를 넣어 다른 CPU를 쓸 수 있었다. 80컬럼 카드를 넣으면 한 화면에 표시하는 글자 수가 대폭 늘어났다. MSX1 모델은 뒤쪽 슬롯에 MSX2카드를 꽂으면 상위기종인 MSX2로 변신했다. 기능과 처리속도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이 기능이 스마트TV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다. 하드웨어의 강자로 불리는 삼성 답게 하드웨어적인 확장에서는 좋은 발상을 곧바로 실천해서 제품화까지 했다. 실로 엄청난 속도와 행동력이다. 


비교적 다양한 사이즈의 제품이 나오게 될 이번 삼성 스마트TV에서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바로 이 에볼루션킷이다. 이것이야 말로 하드웨어로서 업그레이드를 지원하겠다는 삼성의 철학과 자신감이 담긴 카드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킷은 어떤 원리를 가지고 업그레이드를 수행하는 것일까? 성능과 기능의 향상에 있어서 그 폭은 어느 정도로 클까? 경쟁회사들도 자극을 받아 이런 방식을 곧 채택 하게 될까? 등 다양한 의문이 들었다.


이번 발표회를 통해 삼성 스마트TV가 신선한 충격을 던진 것만은 분명하다. 카드 형식의 하드웨어를 통한 하드웨어적 업그레이드. 그것은 운영체제같은 소프트웨어적 업그레이드와 결합되면 보다 근본적인 진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앞으로 미래를 향한 삼성 스마트TV의 진화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