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세상이 더욱 얄팍해지는 것 같다. 체면도 좀 차리면서 생각을 신중하게 하던 것이 미덕이 되던 것이 과거라면, 현재는 눈앞의 이익 앞에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를 바꾸고 달려든다. 그리고 매스컴과 사회는 그걸 당연하다고 합리화한다.

얼마전까지 일본은 전세계 첨단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숙련된 인력과 근면한 품성, 노동쟁의도 거의 없는 일본의 환경은 꽤 좋은 여건이었다. 때문에 일본부품업체들은 번성했고, 전세계는 어떤 경우 첨단 핵심부품의 90퍼센트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면서도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대지진이 일본을 덮치고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공장이 부서지고 방사능오염과 물류차질, 지진의 위협이 강조되면서 더이상 일본은 매력적인 곳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부품수급까지 차질을 보이자 미국에서는 중남미로 공장을 옮긴다든가, 부품 공급선을 한국 등으로 다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어디 이것이 일본만의 문제일까? 이번에는 유례없는 홍수가 태국을 덮치면서 전세계 하드디스크(HDD) 공급에 비상이 걸리게 생겼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태국을 강타한 초대형 홍수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시장까지 강타하고 있다. 대표적인 HDD업체인 웨스턴디지털은 4분기 수익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대만의 디지타임스는 10월 20일 태국 홍수 여파로 HDD 공장들이 피해를 입으면서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태국 지역에 있는 HDD 공장들의 생산 재개 시점이 미뤄지면서 11월 초부터 본격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이 신문이 전했다.

현재 태국은 전세계 HDD 생산량의 40%를 책임지고 있다. HDD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태국에 홍수가 강타하면서 관련업체들도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HDD 시장의 절반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웨스턴디지털은 이번 홍수로 인해 4분기 수익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고 포브스가 보도했다.

웨스턴디지 털은 "물량의 60% 가량을 태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존 코인 웨스턴디지털 최고경영자(CEO)는 홍수 피해가 심각한 공장을 완전히 복구시키기란 수개월이 소요될 '도전'과도 같다며 태국에 기반한 생산공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무슨 한 대륙을 다 덮은 재앙이 아니다. 그저 태국이란 한 나라 수준의 재앙이고, 홍수인데 결과적으로 전세계라는 엄청난 단위의 산업에 피해가 났다. 하드디스크는 거의 모든 컴퓨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이다. 그런 중요한 부품이 태국 한 나라에 절대적인 의존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본과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인한 극단적인 이윤추구의 결과물이란 걸 알 수 있다.

태국 홍수와 HDD생산차질, 진짜 문제점은?

분명히 말하건대 태국은 아무 잘못이 없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자연재해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일본은 지진이 문제고, 한국은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가 심각하다. 중국도 가뭄으로 인한 기근과 지진이 잘 발생하며, 미국은 허리케인으로 종종 피해를 입는다. 북유럽은 한파가, 남부유럽은 이상고온이 문제가 된다.

문제는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과 자본이 마치 식민지 시대의 플랜테이션 농업처럼 특정하게 노동과 물류 조건이 좋은 나라에 특정 산업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버린다는 점이다.

전세계 메인보드와 그래픽 카드는 대만이 설계해서 중국이 생산한다. CPU는 인텔을 비롯한 미국회사가 설계해서 말레이시아 등에서 생산한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은 중국의 폭스콘이 전량에 가깝게 생산한다. 


나머지 나라에서는 이런 산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 자체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바나나와 파인애플, 커피 농장 마냥 어느 한 산지가 초토화되면 세계 의 관련 산업 전체가 재앙적 피해를 입는다.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세계의 소고기 산업을 독점하는 어떤 기업이 전략적으로 호주에서 소를 키워 싸고 질좋은 소고기로 전세계 소고기 농가를 도산시키고 혼자 남았다고 치자. 한동안 세계인은 계속 그 회사에서 싸고 좋은 고기를 공급받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호주에 전염병이 돌아 소가 싹 죽었다면? 갑자기 전세계는 천문학적으로 뛴 소고기 가격과 함께 관련 산업의 몰락을 경험해야 한다. 분산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태국 홍수에 따른 HDD생산 차질은 이런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웨스턴 디지털이 태국에 공장을 집중적으로 지은 것은 이윤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력과 따스한 날씨, 지진 등이 일어나지 않고 전쟁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례없는 홍수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래는 이런 위험 때문에 공장을 분산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물류비용과 관리비용이 비싸지기에 이렇게 지은 것이다.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이윤만 쫓는 산업과 부품의 지나친 집중화는 종종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끼친다. 이 점을 명심해야겠다.


개인적으로도 올해 겨울 태국을 여행하고 싶었는데 갈 수 없을 듯 해서 아쉽다. 어서 태국의 홍수가 잘 복구되기를 바라면서 인명피해가 더이상 나지 않기를 바란다. 산업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