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한국영화 가운데 ‘추격자’란 작품이 있었다. 광기에 젖어 태연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를 끝까지 쫓아가는 형사를 다룬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 제목을 가지고 문득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추적자’ 가 아니라 ‘추격자’인 걸까?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자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살인마는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은폐하는 그런 똑똑한 범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반미치광이 상태로 떳떳하게 경찰서에 가서 내가 죽였어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이 살인마를 쫓는 형사는 정의감이나 어떤 사명감이 있는게 아니다. 그저 일종의 집착으로 쫓아가서는 마구 때리고 짖밟는다. 범인의 인권보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때릴 격’ 자를 추가한 추격자가 된 것이다.

삼성을 일컬어 흔히 ‘최고의 추격자’라고 한다. 맞다. 삼성은 늘상 남이 다 개척해놓은 시장에 뛰어든다. 시장성이 불투명한 사업에는 결코 크게 뛰어들지 않는다. 대신 일단 뛰어들면 그야말로 엄청난 물량과 집착으로 상대를 따라잡는다. 그리고는 앞지르면서 일종의 타격을 가한다. 상대가 안되는 격차를 벌리면서 상대에게 정신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반도체에서 대만에게, 디스플레이 패널과 휴대폰 등에서 소니를 비롯한 일본업체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삼성의 장기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까? 그 선두에서 굉장한 기세를 보여주는 애플을 그야말로 ‘따라잡고는 일격을 가하는’ 추격자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마침 애플의 전설 스티브 잡스의 CEO 사임을 맞아서 마치 천하통일을 조언하는 재사처럼 그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당연하지만 그 방법은 애플의 약점과 삼성의 강점에 숨겨져 있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타이완 디지타임즈는 LG, 삼성, 샤프가 iPad 3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공급할 것이라고 오늘 전했다. 7월 중순에 애플이 삼성과 LG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들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루머들이 돌았고, 이 루머들은 후에 LG CEO가 애플이 차세대 iPad에 자사의 레티나 LCD를 채용할 것이라고 말해 확인되었다.

애플은 또한 iPad과 iPhone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게 될 샤프의 새로운 공장에 최대 1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루머도 있었다. 디지타임즈는 LG가 iPad 3 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공급업체가 되고, 그 다음이 삼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샤프는 곧 삼성을 제치고 두번째로 큰 iPad 3 디스플레이의 공급업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것을 다시 상기해보자. 경영차원에서 애플의 약점은 스티브 잡스란 천재에게 너무도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이다. 제품차원에서의 약점은 공장을 가지고 생산하기 어려운 미국의 공업생산력에 있다.

삼성을 보자. 삼성의 강점은 오히려 애플과 대조적이다. 삼성은 소유와 경영이 일치하는 재벌회사로 분명 CEO의 결정권이 크다. 하지만 삼성은 전략기획실이 상당히 발달해있다. 그룹의 모든 고급정보와 인재가 모여 정책과 세부전략을 조언해주는 전략기획실은 집단지도체제의 장점도 가지고 있다. 애플과 달리 당장 이건희 체제가 이재용 체제로 전환된다고 해도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공업생산력이란 면에서 삼성은 애플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위의 뉴스에서도 보듯 삼성은 경쟁회사이자 특허권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워낙 우수한 부품 생산력 때문에 애플 핵심제품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애플쪽에서도 정상적인 경영을 하려면 도저히 삼성을 배제하는 게 당분간 불가능할 정도다.

그렇다면 이제 핵심과제로 들어가보자. 이런 점들을 이용한 삼성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애플 추격전략은 무엇일까? 참고로 나는 삼성을 위한 조언만 하려는 게 아니다. 물론 지금 이 글이 한국어니까 그나마 삼성쪽이 읽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다음 포스팅에는 애플을 위한 필승전략도 제시할 예정이니 나보고 성급하게 삼성편이라는 편견은 가지지 말기 바란다.

삼성은 어떻게 애플을 추격할 수 있을까?

1) 당분간 애플은 혁신속도를 늦출 것이다.

애플에 있어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스티브 잡스의 사임은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그 뒤를 맡은 팀쿡은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까? 자세한 것은 미지수지만 대략의 큰 움직임은 나와있다. 일단 예정된 아이폰5와 아이패드3를 발표할 것이며 아이클라우드와 연계시킬 것이다. 또한 맥북 에어라인부터 시작해서 장기적으로 OS X와 iOS의 통합을 추진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사실 이건 잡스가 닦아놓은 길을 편안히 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팀쿡이 아무리 성실히 잘 수행한다고 해도 현상유지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기업들이 똑같이 편안히 쫓아온다면 몰라도 누군가는 다시 판을 뒤집어엎는 혁신을 들고 나올 것이다. 이럴 때 팀쿡이 과연 정면으로 맞부딪칠수 있을까? 때로는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취향이 하드웨어적으로 급변할 때 팀쿡의 애플이 바로 적응할 수 있을까?


역대로 팀쿡과 가장 성격이 비슷했던 뛰어난 경영자 존스컬리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 못했다. 존스컬리는 분명 성공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았고 순이익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잡스의 혁신을 우려먹는데만 그쳤다. 팀쿡이 이끄는 애플도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2) 삼성이 가진 생산력과 공장 현장에서의 피드백을 적극 이용하라.


사람들은 보통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기에 결합효과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 점이 다른 업체와 다른 최고의 사용자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이런 라인업에도 단 한가지가 빠져 있으니 최고 끝부분에 위치한 부품과 생산시설을 애플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이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여기에 있다. 팀쿡이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고, 애플이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상관없다. 미국에 있는 애플본사가 태평양 건너 머나먼 중국 폭스콘 공장을 내 공장처럼 조절하고 감독하기란 불가능하다. 라인업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는 애플의 전략은 이런 점에 기인한다. 함부로 늘리면 품질관리와 재고관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삼성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서 운영체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하드웨어를 부품레벨에서 자체생산하는 게 가능하다. 그 부품을 어떻게 조합하고, 변형시키면 좋은 제품이 나올 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특히 생산현장인 공장으로부터의 피드백이 매우 쉽다. 따라서 소비자의 취향이 미묘하게 하드웨어적으로 변할 때 그것을 즉각 대응할 수 있다.


이번에 새로나온 갤럭시노트가 그 좋은 예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완전히 수첩처럼 쓸 수 있는 이 제품은 전자기유도식 펜을 가진 와콤의 기술력과 결합해서 또다른 차원의 사용자경험을 선사한다. 애플도 이걸 알고 있지만 라인업을 늘리지 못하기에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3D스크린이라든가, 새로운 음향칩, 레티나를 능가하는 고해상도 등 삼성만이 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감성마저 제압하는 하드웨어 스펙'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취향은 일정하지 않다. 지금은 일단 애플 제품에 열광하고 있지만 언제 또 새로운 하드웨어 장치와 편의성을 원할 지 알 수 없다. 애플은 잡스의 뛰어난 판단력으로 그런 취향변화를 ‘리드’해서 성공했다. 하지만 삼성은 보다 안전하게 그 취향 변화를 잘듣고 즉시 ‘적용’하는 순발력이 있다. 그것은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삼성의 가장 큰 강점이다. 

삼성이 이런 생산순발력을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애플이 팀쿡 체제하에서 단지  이전의 라인업만을 계승하며 굳히기 작전으로 나갈 때, 삼성은 소비자의 취향변화를 읽고 우월한 하드웨어와 그에 맞는 부품조합을 즉시 가져가며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삼성이 진정 애플의 ‘추격자’가 될 수 있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