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관이란 참으로 무섭다. 예를 들어 평소에 착했던 사람이 절도죄를 저지르면 ‘그 사람이 왜? 무슨 사정이 있을거야.’ 라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평소 불량했던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면 ‘역시! 내 그럴 줄 알았어. 그 밖에 뭐 다른 죄도 있을거야.’ 라는 반응이 나온다.



기업에 있어서도 이런 선입관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가 무슨 일을 하면 독과점과 관련된 의혹이 생기고, 애플이 어떤 사업에만 뛰어들면 아이튠스의 7:3 모델을 떠올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도 선입관이란 기본적으로 이때까지 해왔던 행동에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완전히 부당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요즘 전자책 쪽에서는 그다지 화제를 만들어내지 못하던 애플이 드디어 뉴스 하나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는 아니고 미국에서 벌어진 일인데 전자책 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담합했다는 뉴스다.(출처)



애플사와 5개 출판사가 전자책의 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담합했다는 이유로 피소됐다고 원고측 변호사가 8월 13일 밝혔다.

집단소송 형식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 제기된 이번 소송은 하퍼콜린스, 아셰트, 맥밀런, 펭귄, 사이먼 앤 슈스터 등 5개 출판사가 애플사와 담합해 아마존 닷컴의 할인 판매 전략을 무너뜨리려 했고, 애플사의 아이패드가 아마존 닷컴의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과 경쟁하도록 도왔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원고 측은 출판업자들이 킨들의 높은 인기와 아마존 닷컴의 할인 판매 전략으로 전자책 판매가 늘었다고 여겼으며, 아마존의 이런 전략 때문에 소비자들은 다른 전자책 단말기에도 낮은 가격을 기대하는 상황을 우려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집단소송의 변호사인 스티브 버먼은 "출판업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킨들의 높은 인기와 아마존의 저가 전략을 제압할 수 있는 가공할 공모자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애플"이라고 말했다.


이 뉴스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5개 출판사에 대해 아마존이 강도높게 할인판매를 강요했다.
2. 이에 반발한 출판사는 담합하면서 아이북스의 애플을 끌어들였다.
3. 킨들과 아마존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5개 출판사의 점유율은 85퍼센트에 달한다.



어떻게 보면 이건 독과점과 독과점의 싸움인 것처럼 보인다. 우선 세계 전자책 시장의 대부분은 점유한 아마존부터가 독과점에 가까운 업체다. 그런데 여기에 역시 특정 시장의 85퍼센트를 차지한 공급자인 출판업체들이 연합해서 대항한다. 그렇지만 공급이 유통을 이기려면 다른 유통채널이 있어야 한다. 그과정에서 대안으로 애플을 넣었고, 결과적으로 애플은 공모자가 된 셈이다.

본래 이런 형태로 아마존에 대항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다. 그 목적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출판사들의 목적은 ‘가격인하’ 가 아니라 ‘가격인상’이었다. 때문에 문제가 되서 법정에 나온 것이다. 소비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던 애플은 여기서는 ‘가격인상’을 위한 아군 역할을 한 셈이다.

애플은 과연 전자책 가격을 담합했을까?



문제는 애플의 성향이다. 애플은 본래 전자책 가격을 인상하는데 적극 동참할 이유가 없다. 아이튠스와 아이북스의 수익모델은 7:3으로 애플은 30퍼센트를 가져갈 뿐이다. 애플의 주 수익원은 하드웨어인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팔아서 얻는 높은 이익이다. 앱이나 전자책은 단지 하드웨어를 많이 팔기위한 수단에 가깝다.

아이튠스로 대표되는 음악과 애플티비속 영상에 대해서도 애플은 끊임없이 가격을 낮추도록 압박하고, 심지어는 무료로 만들도록 유도한다. 앱개발자들은 애플이 좋은 생태계를 만들었지만, 하드웨어 판매가 주 수입원이다보니 앱가격을 너무 싸게 매기도록 경쟁시킨다고 불만이다.

그런데 전자책에 관해서 위의 뉴스는 이런 애플의 기존 행동과는 정반대다. 선입관이라고 해도 좋지만 뭔가 모순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애플이 과연 전자책 업계와 가격인상의 담합을 했을까? 결과는 나와봐야 알겠지만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본래는 아마존이 책값을 싸게 하도록 압박한다면, 애플 역시 더 싸게 하도록 압박을 가해야만 한다. 그게 기존 애플의 방식이고, 소비자의 이익이다. 단지 눈앞의 경쟁자 아마존 때문에 애플이 별 이익도 되지 않는 가격인상 담합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

하지만 만일 그렇게 했다면 그건 온전히 애플의 잘못이다. 소비자는 애플이 이익을 줄 거란 생각 때문에 열광하고 지지하는 것이지, 아무 행동이나 지지하는 게 아니다. 요즘 애플이 혁신이라는 소비자의 기대보다는 법정 싸움 같은 것에만 주력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디 이번 전자책 담합의혹이 사실이 아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