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플의 행보에 대해 관심이 뜨겁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애플의 움직임 하나에도 언론은 즉각 주목해서 예상과 전망을 쏟아낸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대해서는 사전 특허나 케이스 금형 하나까지도 세밀한 분석 대상이 된다.

이런 가운데 우스갯소리로 애플은 제품광고를 돈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나돈다. 그럴듯한 것이 제품이 발표되기도 전에 언론이 앞다투어 예상기사를 써주고, 블로거와 전문가들이 새로운 기능과 시장을 홍보해준다. 발표회 전후해서는 유력한 경제전문지까지 나서서 대서특필해주니 돈주고 광고를 싣는다는 자체가 쓸데없는 일로 보이기 쉽다. (사진출처: 인가젯)



그런 맥락일까. 올해 아이폰4와 아이패드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유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던 말이 있다. 이건 애플이 펼치는 고도의 신비주의 광고전략이라고 말이다. 제품발표 전에는 어떤 발표도 하지 않다가 언론의 궁금증이 절정에 달하면 이른바 떡밥이라고 하는 루머 몇 개만 던져주고 확인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더욱 몸이 달아서 언론이 홍보를 해준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고 논리다. 실제 상황도 이런 사전 정보유출이 오히려 뜨거운 관심으로 변해 성공을 도와줬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때 삼성의 갤럭시탭의 정보가 사전 유출되었을 때는 <쯧쯧, 신비주의 유출 전략도 아무나 따라해서 되는 게 아닌데.> 라고 비웃는 목소리도 있었다. 애플이니까 가능한 전략이라고 하며 아예 이런 정보유출을 의도된 기획으로 확정짓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다음과 같은 뉴스가 나왔기 때문이다. (출처)



미 증권거래 위원회와 미 정부 수사기관은 오늘 애플, AMD, 다른 회사들의 기밀들을 유출한 '내부 거래' 혐의로 4명을 구속했다.
구속된 4명은 Walter Shimoon (Flextronics의 사업개발 부사장), Mark Longoria (AMD 공급 체인 매니저), Manosha Karunatilaka (타이완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James Fleishman (“expert networking”의 세일즈 매니저) 등이다.
Shimoon, Longoria, Karunatilaka 세 사람들은 Fleishman의 expert networking에 컨설턴트로 채용되어 애플, AMD, 다른 회사들의 기업 기밀들을 익명의 2 헷지 펀드 회사들에 돈을 받고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Shimoon은 애플이 iPhone 4와 iPad을 공식 발표하기 전 이 제품들에 대한 구체적 사항들을 유출해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FBI와 SEC는 계속 이같은 부당 내부거래 행위들에 대해 수사할 것이고, 이같은 범죄를 척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애플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천하의 애플이 하는 일이니 사소한 건 몰라도 커다란 맥락에서 실수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심각한 내부단속 실패의 결과물인 신제품 정보 유출조차도 고도의 홍보전략이라 간주한 것이다. 그렇지만 위의 뉴스에서 보듯이 그건 홍보전략이라기 보다 내부거래란 치명적인 범죄와 관련이 있었다. 애플같은 보안에 철저한 회사조차도 이런 경우를 당한 것이다.



요즘은 정보시대다. 어떤 제품 자체보다 그 제품에 관련된 정보가 더 소중한 경우가 많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역시 뜯어보면 뭐 그리 엄청난 첨단기술이 쓰인 것은 아니다. 애플은 기껏해야 디자인과 설계만 하고, 나머지 부품생산과 조달, 조립은 각각 다른 나라에서 한다. 따라서 그 제품의 디자인과 각 부품구성, 조립공정 같은 것이 가장 핵심인 기업비밀을 이룬다. 경쟁업체에서 이런 것들을 제품 발표전에 미리 알게 되면 대응하기도 쉽고 유사품을 만들수도 있다.

애플의 제품정보 유출,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일은 애플뿐만이 아니다. 컴퓨터 CPU에서 나름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AMD를 비롯해 세계의 각 첨단기업이 관련되어 있다. 한국의 삼성 역시 툭하면 대만이나 중국에 기술을 빼돌리려는 사건에 휩싸인다. 갤럭시탭 정보 사전유출 사건은 삼성 역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좀더 자세하게 보자. 애플이나 각 회사의 정보를 유출한 부당 내부거래자들은 경쟁사가 아닌 헷지펀드에 그 정보를 넘겼다. 어째서일까. 오늘날 헷지펀드가 움직이는 엄청난 돈이 바로 그 원인이다.



이제 아이폰등 각종 첨단제품은 단지 제품이 아니다. 단순간에 엄청난 수요와 공급을 일으켜서 때로는 환율까지도 움직이는 커다란 경제 변수다. 애플 아이폰4의 발표와 판매량은 단기간에 유럽과 달러 사이의 환율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이런 변수를 미리 알고 통제하면 펀드는 당연히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그 방법은 원자재 투기가 될 수도 환투기가 될 수도 있다.

혹자는 이 기사를 향해 죄없는 엔지니어와 기술자를 산업스파이로 몰아 이직을 어렵게 하는 탄압의 상징이라 언급하기도 한다. 확실히 한국 혹은 몇몇 나라의 엔지니어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 정상적인 이직까지도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조차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 넥스트를 만들었을 때, 바로 이런 소송 때문에 가정용 컴퓨터를 만들어팔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며, 그래서 실패했다. 잡스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란 뜻이다.



결론을 내보자.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첨단제품을 둘러싼 내부거래는 어쨌든 막아야한다. 보안의식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한국기업은 더욱 명심해야한다. 그 방법은 우선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의 개선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와 함께 사회적으로 이것이 헤지펀드의 이익밖에 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겠다.

배추파동이든, 금값파동이든 본래라면 그다지 폭이 크지 않는 것이 돈을 벌려는 펀드를 만나면 비정상적으로 요동친다. 우리 생활을 위협하는 이런 돈의 횡포는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이 이번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