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일본은 전세계에서 당할 나라가 없을 만큼 전자기술이 발달했다.
워크맨을 비롯해 모든 신기한 기술을 적용한 첨단 가전제품이 일본에서 나왔다. 미국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하면 막상 그 제품은 일본에서 나왔다.


80년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일제 카세트는 모든 학생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첨단 음악기기였다. 마치 지금의 애플 아이폰 정도의 인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좋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하나 가지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되었다.


단지 카세트만이 아니다. 텔레비전과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일본 가전제품은 명품으로 대접받았다. 소니는 정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때만 해도 각종 언론매체에서 일본의 기술중심의 투자와 큰 시장, 국산품 애용정신, 기업문화 등을 들며 <우리는 일본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라는 글을 내보내기도 했다. 전세계 전자업체에 적이 없다보니 나중에는 일본 업체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했다. 소니와 파나소닉은 비슷한 가전제품을 놓고 대결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을 보자. 일본 가전제품이 더이상 그렇게 못견디게 가지고 싶은가? 일본 가전제품이 명품 취급을 받으며 아무리 비싸도 사고 싶던가? 소니와 파나소닉이 그 브랜드 만으로도 선망이 대상이 되는가?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소니는 아직도 이름값을 인정받긴 한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이름값일 뿐, 직접 그 제품을 사려는 매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일본 업체는 이미 세계시장에서 판매부진에 시달리고 있으며 순이익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초인가에 일본 전자 업체 전부의 이익을 합친 것이 한국의 삼성의 순이익만도 못하다는 말에 일본 언론이 뒤집히고 일본 네티즌들이 통탄하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옛말에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게 났다고 했다. 추상적인 설명보다는 직접 실감나는 예를 하나 들어주는 게 빠를 것 같다. 최근 일본 샤프사에서 발표한 태블릿을 예로 들어보자.
(출처:인가젯)

샤프는 5.5 인치 및 10.8 인치 이-리더 태블릿 'Galapagos'를 발표했다. 5.5 인치 모바일 버전은 1024 x 600 해상도 LCD 스크린을, 10.8 인치 홈 버전은 1366 x 800 해상도 LCD 스크린을 각각 제공한다. 802.11b/g WiFi를, 그리고 5.5 인치 버전은 트랙볼을 제공한다.

샤프는 12월 출시 때까지 30,000 종의 신문들, 잡지들, 책들을 포함하는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e리더 태블릿들은 일본시장에 특화된 모델이다.

이것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시장에 특화된 모델>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추가로 내놓은 일본어 사이트 발표를 보자. (출처)



主に対応するフォーマットは同社が「次世代XMDF」として開発した新しいXMDFフォーマットで、タッチパネルでの操作や、新聞・雑誌のレイアウトやル ビに柔軟に対応できるのが特徴。画像などはそのままに文字サイズのみを大きくしたり、マーカーを引くように印を付けられたり、動画コンテンツを再生できた りといったさまざまな拡張が図られている。

주로 대응되는 포맷은 동사가 차세대XMDF 로서 개발한 새로운 XMDF포맷으로 터치패널로 조작과 신문 잡지의 레이이웃 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특징. 그림등은 그대로 문자크기만 키운다든가 마커펜으로 줄을 긋듯이 표시를 할 수 있는다든가, 동영상 콘텐츠를 재생 할 수 있다는지 하는 여러가지 확장이 계획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운영체제로 안드로이드를 채택했으면서도 이 기기는 독자적인 전자출판 포맷을 적용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외에 따로 특별히 그런 걸 만들어서 써야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공용포맷인 e-pub 등도 지원한다. 그러니 당초 <일본적인> 포맷 같은게 특별히 필요하지도 않는데 굳이 새 포맷을 개발해서는 이것을 주력으로 밀어주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일본은 자국 시장의 규모와 기술을 믿고 있는 나머지 세계의 표준기술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인색하다. 약간이라도 변형시키거나 첨가해서 어떻게든 일본식 기술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은 폐쇄적으로 자사 혹은 자국에서만 공유한다. 일종의 제품 기술 장벽을 만드는 방법이다.


일본 전자가 망해가는 이유는 갈라파고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본 가전제품은 세계 표준기술에서 밀려나서는 경쟁력을 점차 잃어갔다.
자유로운 경쟁이 없이 고립된 곳에서 자기들끼리 살다보면 진화가 더뎌지거나 멈추기 때문이다.

일본 가전제품이 패러다임을 쥐고 흔들 때는 이것이 장점이 되었지만,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가전제품으로 변하는 시기에 그 권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다시 따라가야 하는데 이런 지나친 자국 기술로의 변형이 장애가 되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바로 이 제품의 명칭이다. 갈라파고스란 이름을 지은 이 태블릿의 작명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GALAPAGOS]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세계표준의 기술에 일본적인 섬세함, 기술력을 융합하여, 전세계에 통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전개하고자 하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 서비스에 있어서도, 국내뿐만이 아닌, 북미에서의 서비스도 준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GALAPAGOS」라고하는 단어를, 진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서비스와 일체화한 진화, 타업종과의 연합에 의한 비지니스모델의 진화, 세계각지에 전개하여 문화와 생활습관에 적응해나가는 진화、3가지의 진화를 테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감 때문에 이 이름에 어떤 컴플랙스나 거리낌도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실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란 단 한 단어야 말로 일본 전자업체의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출처) 

일본이 모바일TV 기술 표준을 놓고 시끄럽다.
이미 휴대폰, 내비게이션, 미니디스크 등에서 최첨단 기술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표준만 고집하다 세계시장에서 고립된 일본 IT의 현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다시 한번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

일본 통신성은 이번달내에 휴대폰 등에서 TV쇼나 다른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채택할 계획이다.
일본 2위 통신사인 KDDI는 미국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퀄컴의 모바일 방송 기술인 ‘미디어플로(Media FLO)’가 채택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도코모는 일본의 디지털TV 기준에 기초한 ISDB-Tmm 기술 채택을 요청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보통신(IT) 분야에서 갈라파고스 현상은 두드러졌다. 특히 휴대폰 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일본이 내수시장만을 노린 디지털 머니 등을 상용화할 때 다른 국가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에 집중했다. 이러는 사이 일본의 휴대폰 제조업체는 앞선 기술력에도 불구,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뭐든지 자기기술의 덫에 갇혀 외부기술에 취약해진 것은 꼭 남아메리카 서해안에 고립된 섬 갈라파고스에서 독특하게 진화한 동물처럼 보인다. 이런 진화는 재미있긴 해도 경쟁력이 점점 취약해져서 외부 종의 공격에 극도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한다.


샤프에서도 과연 이런 비난을 알고 한 것  같다. <갈라파고스는 갈라파고스가 아닙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 제품 <갈라파고스>는  오늘날 일본 전자업계가 망해가는 이유를 너무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자기들 만의 표준을 따로 만들어 그 안에서 세계적 경쟁을 거부하고 안주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업체에는 현재의 성공은 있을 지 몰라도 미래가 없다.

이건 일본 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 역시 CDMA와 위피 등 한국만 쓰는 표준에 의해 갈라파고스 신드롬을 겪은 바 있다. 이제 다시 안드로이드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의 개발이 활발히 시작되려는 한국업체는 부디 일본의 저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에게 지금 반면교사로서 교훈을 준다. 한국이 <제 2 의 갈라파고스>가 되어서는 안된다. 제 2의 일본이 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