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나는 애플과 인텔의 연합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건 단지 애플이나 인텔 두 회사의 흥망이나 성패 여부가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세계 프로세서 시장과 플랫폼이 어떻게 변화할 지 그 미래가 달려있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그런 분석에 이어서 좀더 깊은 전망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지난 글을 읽어보고 싶으면 아래를 클릭해보자.


애플과 인텔의 연합, 미래를 바꿀 것인가?




인텔이 애플에게 먼저 이렇듯 연합을 제안한 것은 장기적으로 PC시장의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애플이다. 아이폰에 이어서 나온 아이패드와 태블릿이 가벼운 인터넷 검색을 위한 PC의 수요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처음에 아이패드가 나왔을 당시에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앞으로도 PC수요는 증가할 거라던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의견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출처)


시장조사기관 IDC와 가트너는 3분기 PC 출하량이 전년 대비 8%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2001년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IHS i서플라이가 내놓은 보고서는 PC 출하량이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IDC 애널리스트 데이빗 다우드는 “컴퓨터업계가 교차로에 서 있다”며 “양단간에 결판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IHS i서플라이 애널리스트 크레그 스타이스는 “과거에 비해 PC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며 “다음에 나올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관심이 있지 PC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스타이스는 지난 10년을 통틀어서 보다 올해 PC 디자인이 더 크게 혁신됐다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텔이 지원하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인 ‘울트라북’이 올해 PC 판매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IDC와 가트너 보고서가 시사하듯 디자인 혁신은 아직 매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가까운 시일내에 매출 확대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지 모른다.


PC 시장은 2001년 이래 반등했다. 컴퓨터가 온가족이 함께 쓰는 기기에서 개인용 기기로 진화함에 따라 노트북이 데스크톱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블릿과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기기들이 성장세를 주도할 것이라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도 이렇듯 PC시장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태블릿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답답한 쪽은 어디일까?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나마 태블릿에 쓸 수 있는 ARM용 윈도우8을 내놓았다. 어느 하드웨어가 이기든 일단 발은 걸쳐놓을 수 있다. 그러나 X86칩으로 유명한 하드웨어 업체인 인텔은 갈 곳이 없다.


X86칩은 현재 인텔과 AMD 두 회사가 거의 대부분을 만든다. 그리고 인텔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i7, i5, 아톰 등으로 대표되는 이 칩의 특징은 뚜렷하다.



1. 첫째로 고성능이다. 현재 스마트폰에서 제일 성능이 좋다는 삼성의 엑시노스 칩이 인텔 칩 가운데 가장 성능이 좋지 않다는 아톰의 성능에도 간신히 도달할 정도이다. 


2. 둘째로 높은 전력소비이다. 인텔칩은 그동안 주로 데스크탑에서 발전했기에 전력절약보다는 무제한의 전력공급을 상정한 높은 성능 내기에만 주력해서 설계해왔다.


3. 세째로 인텔이 모든 것을 주도한다. 인텔칩은 주문생산이 없다. 인텔이 알아서 내부의 통합 그래픽칩과 콘트롤러, 메모리를 배치하고는 제품을 찍어낸다. 구입하는 쪽에서 고를 수 있는 건 성능단계별 제품분류와 클럭숫자 뿐이다. 심지어 가격 역시 인텔은 상당히 높은 고가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애플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인텔이다. 따라서 만일 아이패드에 인텔의 X86칩이 들어가길 원한다면 위의 특징 가운데 상당부분을 포기하고 양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텔이 주도하는 설계와 가격정책은 애플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PC의 추락, 애플의 선택이 인텔을 바꾼다?


만일 아이패드를 비롯한 태블릿에 인텔칩이 쓰이게 된다면 애플은 어떤 선택을 통해 변화를 요구할 것인가?


1. 인텔칩 가운데 최소한 애플이 쓸 칩은 저전력 기반으로 특수하게 설계해야 한다. 애플이 요구하는 전력관리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실행속도를 높이기 위해 비효율적으로 명령어 갯수를 늘리거나 메모리를 늘리고 관리 칩을 통합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2. 애플은 ARM에서 해왔던 대로, 코어 갯수와 그 안에 들어갈 그래픽 코어를 별도로 삽입하기를 원할 것이다. 따라서 그다지 성능이 뛰어나지 못한 인텔 통합 그래픽 코어는 뺄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AMD나 엔비디아의 그래픽 가속기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3. 단가에서 인텔은 애플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 인텔의 가격정책은 울트라북이 맥북에어 수준의 가격으로 싸게 되지 못하게 하는 등,  많은 부정적 역할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인텔은 개별 PC가 팔리든 안팔리든 충분한 이익을 볼 수 있는 가격을 가져간다. 하지만 애플은 정반대로 매우 적은 마진을 선지급하며 애플 전용칩의 대량생산을 요구한다. 인텔이 대폭 양보하지 않는다면 애플은 인텔칩을 아이패드에 채용하지 않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것은 인텔의 칩 제작철학 자체를 통째로 바꾸는 일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칩에 한해서는 그렇게 해야한다. 아마도 아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면  미래의 아톰은 ARM 칩과 비슷한 설계철학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텔의 제안을 통해서 애플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애플이 인텔과 손을 잡게 된다면 이제까지 고성능, 고전력 소모에 기성품 생산 위주였던 인텔의 방향이 바뀐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서 이 칩을 채택한 노트북PC의 탄생을 가져오게 된다. 아이패드를 넘어서 맥북에어라든가 울트라북이 해당칩을 채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이 애플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된다면 변하는 것은 단지 하드웨어 뿐만이 아니다. PC의 소프트웨어쪽도 극심한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