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뽑는다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보통은 양복을 입은 심사관이 긴 책상을 앞에 두고 들어온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광경이 생각날 것이다. 바로 대기업 면접이다. 딱딱한 분위기에 긴장감은 최고이며 재미는 전혀 없다. 그러다보니 ‘홍길동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라고 물으면 ‘네! 저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자상하신 부모님 아래서 성실하게 자랐으며…’ 라는 입사면접 매뉴얼에 적힌 답안을 늘어놓는 경우가 태반이다. 똑같은 질문에 똑 같은 대답이 반복되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이것과는 정반대 이미지를 지닌 단어가 있다. 바로 ‘오디션’이라는 것이다. 연극배우 오디션을 비롯해서 신인가수 오디션 같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사람을 뽑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톡톡 튀는 것이 중요하다. 끼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제일 먼저 떨어진다. 따라서 이 오디션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참가자들의 당락이 걸려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은 마치 하나의 쇼 무대처럼 빛을 발한다.
 
그래서일까. 지금 한국에서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평범한 국민 가운데 가창력과 춤 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정상급 가수로 키운다는 ‘슈퍼스타K는 벌써 4회째를 맞고 있다. 여기서 배출된 정상급 스타만 해도 허각, 강승윤, 울랄라세션과 버스커버스커가 있다. 또한 미스에이의 수지는 이 대회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후에 JYP에 들어가 스타가 되었다.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되는 슈퍼스타K의 시청률은 동시간대의 지상파 시청률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자 이에 자극 받은 지상파 방송에서도 경쟁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가수 이선희가 심사위원이 된 위대한 탄생, 스타 지망생을 한국의 3대 기획사에서 뽑겠다는 취지의 KPOP 스타가 나왔다. 약간의 프로그램 포맷 차이는 있지만 이들 모두 기본은 동일하다. 시청자에게 최대한 즐거움을 주고, 참가자의 끼를 최대한 발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왜 이토록 한국을 사로잡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참여’라는 요소가 주는 몰입감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해서 심사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이런 인기를 만든다.
 
보통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서 많은 가수를 본다. 소녀시대의 섹시한 안무와 2NE1의 파워풀한 동작에 감탄한다. 임재범의 가창력에 놀라고 김경호 같은 락음악을 즐긴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동경하는 꿈에 불과하다. 태어날 때부터 끼와 외모, 재능을 가지고 나와서 범접할 수 없이 성장한 가수들이라 간주한다. 박수치며 볼 수는 있어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한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르다. 예선부터 출전한 참가자들을 살펴보면 정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스타일이다. 비록 대회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아 나중에 연예인급 포스를 뽐내게 될 지라도 처음에는 그저 일반인일 뿐이다. 배관수리공 일을 하던 허각, 통기타 하나를 메고 온 음대생 장재인, 고등학교 밴드부를 연상시켰던 버스커버스커의 초기 모습은 촌스럽다는 느낌까지 준다. 그러니까 이들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어느 날 음악을 하겠다고 기타 하나를 들고 거리에서 공연을 하게 될 때 보일 모습이다.
 


그런 참가자들의 앞날이 순탄할 리 없다. 기막힌 솜씨로 심사위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연주를 틀리거나, 목소리가 잘 안 올라가서 당황한다.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심사위원의 독설이 쏟아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노래를 마쳐도 카리스마 같은 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붙여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시청자 스스로의 모습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요소로 사연이 등장한다. 단순히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다. 이런 정도의 사연이 아니다. 울랄라세션의 임윤택은 위암 4기란 엄청난 병을 안고도 동료들의 꿈을 위해 출전했습니다. 허각은 축가 가수와 배관공을 전전하는 인생을 탈출하고자 나왔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나온 사람도 있고, 거리음악의 즐거움을 알려주며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사람도 있다. 성공이 보장된 명문대 학업을 포기하고 꿈을 이뤄보기 위해 나오기도 한다. 그런 사연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바로 내가 저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런 시청자의 동질감을 잘 이용한다. 흔히 ‘악마의 편집’이라고도 부르는 케이블 방송국의 연출은 그만큼 재미있는 상황과 극적인 반전을 잘 만든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역할을 부여하면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의도된 악역이 생겨나기도 하고, 로맨스 라인이 만들어진다. 엉뚱한 말을 남발하는 캐릭터도 생기고, 대립하는 라이벌도 준비된다. 갈등이 격해지다가 화해와 조화를 통해 눈물겨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모든 과정의 축소판이 아닐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참가자들의 도전 과정과 결과를 매주 진행되는 방송을 통해 몇 시간으로 압축해서 볼 수 있다. 참가자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위대한 도전이고, 시청자들에게는 언젠가 자기도 이룰 수 있는 꿈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러니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하나의 파워컨텐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원리를 파워컨텐츠 제작에 적용해보면 강하고 간단한 원리가 나온다.

소비자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라.

옛날에는 모든 컨텐츠가 단순한 전달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디어라는 자체가 매스미디어로부터 생겼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 라디오와 텔리비전에 이르기까지 이런 매체의 특징은 일방전달형 매체라는 것이다. 생산자가 가능한 노력을 다해서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내면 그걸로 끝이었다.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전화, 그리고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또 하나의 컨텐츠가 발달했다. 그것은 통신을 통해서 직접 소비자가 참여해서 컨텐츠를 만들거나, 컨텐츠를 평가하면서 나름의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플랫폼이자 컨텐츠의 탄생이었다. 기술적인 방법이 충분히 성숙되면서 사람들은 참여할 수 있는 컨텐츠에 보다 열중하고 열광하게 되었다. 따라서 파워컨텐츠 역시 참여형에서 많이 나오게 되었다.



게임의 예를 들어보자. 90년대까지만 해도 게임은 패키지형 게임이 대세이자 거의 전부였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아름다운 스토리를 구상하고, 게임 디자이너가 멋지게 연출한다. 모든 사건과 진행은 철저히 미리 짜여진 게임스텝의 배치에 따른다. 게이머들은 그저 극장에 앉은 관객처럼 게임회사가 만든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게임이 재미있다없다를 말할 수는 있지만 막상 게임 자체에는 전혀 개입할 수 없다. 이때 게임 디자이너는 교향곡의 지휘자나 미술작가 같이 한 명의 예술가였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네트워크로 진행되는 MMORPG라는 장르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게임회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놀이터 같은 플랫폼만 개발해주고 막상 그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고 난이도를 형성하는 것은 같은 게이머가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그런 참여형 게임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패키지 게임과 온라인 게임은 서로의 특성을 가지고 힘겨루기를 했지만 결국 승리는 온라인 게임의 차지였다. 대전게임이든 역할분담게임이든 게이머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 건 같은 게이머였다.



MMORPG 게임은 아주 기본적인 스토리만 정해질 뿐 구체적인 전개나 결론은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 나머지는 참여하는 게이머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이 직접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게이머들의 각 세력의 승패를 만든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대전형 RTS게임은 바둑처럼 사람이 사람과 싸우는 것에 최고의 재미가 존재한다. 카운터스트라이크 등은 팀을 이뤄서 호흡을 맞춰 역시 인간인 상대팀과 싸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히트와 온라인 게임의 득세는 이처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요소에서 나온다. 또한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치 참여한 듯한 몰입감을 준다. 플랫폼으로 예를 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성공은 사용자의 참여라는 요소를 빼면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한 요즘 떠오르고 있는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 같은 플랫폼형 컨텐츠는 모두가 참여에 근간을 두고 있다. 결국 컨텐츠 소비자들을 수동적으로 놓아두지 말고 능동적으로 만들어야 좋은 컨텐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