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으로 흥한 사람은 ~으로 망한다 라는 것이 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라고 멋있게 이야기하면, 그 뒤로는 남을 칼로 베던 사람이 자기도 칼에 찔려 죽는다는 그런 뜻이다. 


사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동차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  총쏘기를 즐기는 사람은 당연히 총을 쏘는 자리에 있다보니 반대로 총을 맞을 확률이 높다. 불교의 인과율 같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어떤 일을 많이 하다보면 그 일과 관련되어 자기도 해를 입을 확률이 놓아지는 것이다.

애플은 IT회사이자 디자인 회사이다. 디자인과 첨단기술이 결합된 제품을 기가 막힌 연출을 통해서 내놓는다. 따라서 애플에게 있어 디자인은 다른 IT회사와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애플에게 디자인은 거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디자인과 사용자인터페이스와 관련된 특허가 많고 그쪽으로 다른 업체들을 견제한다. 얼마전 있었던 삼성과 애플의 미국 재판도 결국 이런 디자인 특허에서 승패가 갈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애플은 과연 다른 업체의 디자인을 참고하거나 모방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최근 벌어진 일이 애플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켰다. (출처)



스위스 사진작가 Sabine Liewald는 새 맥북 프로에 무단 사용된 판촉 눈동자 이미지로 애플을 제소했다. 금주 초 미 연방법원 뉴욕남부지원에 접수된 소장에 의하면, Liewald는 손해를 결정하기 위해 배심재판을 요청했다. 그는 이 이미지가 저작권에 등록되어 있어 미국 이외의 작품으로서 바이른 컨벤션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이 소송에 대한 언급 요청에 대해 즉답을 피했고, 애플이 사진작가들에 의해 소송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첫 번은 아니다. 2007년과 2009년에 사진작가 Louis Psihoyos는 애플이 자신의 "1000 TVs" 이미지를 애플 TV 판촉 이미지로 무단 사용했다고 제소한 바 있다.
 
삼성과의 재판에서 이겼을 때, 당당하게 '정의가 승리했다.'라고 말하던 모습을 생각한다면 애플이 남의 디자인을 훔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애플도 이렇듯 디자인 도용으로 고소당하기도 하고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나는 디자인으로 흥한 애플, 디자인으로 망한다. 라고 비웃을 생각이 없다.


애플은 스위스국영철도(SBB)와 몬데인사의 시계 디자인을 허락없이 새로운 ios6 에 넣어서 논란을 일으켰다. 9월 말 애플이 iOS 6의 아이패드 시계 앱에서 사용한 시계가 몬데인 시계 디자인인 것에 대해 스위스국영철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합의 및 보상을 위해 애플과 접촉할 것이라 밝혔다. 

이후 애플과 몬데인 시계 디자인에 대한 라이센스가 체결됐다. 비용을 포함한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당한 액수로 추정된다. 너무도 피의사실이 뚜렷해서 애플로서는 떠들썩하게 재판정에 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애플을 무작정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돈과 인재가 많은 애플이 굳이 라이센스비 약간을 아끼겠다고 금방 들통날 디자인 도용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개발과 마케팅 과정에서 있었던 사소한 착오일 것이다.


애플의 디자인 도용, 이후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다만 내가 애플에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때로는 입장을 뒤집어보라는 것이다.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있어 누군가 나보다 훨씬 우월하고 뛰어난 것이 있으면 가져다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어떨 때는 라이센스를 추진해서 쓰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절차의 복잡함이나 실수로 인해 그런 요소를 무단으로 가져다쓰게 될 수도 있다. 이건 분명히 좋은 행동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벌어진 다음의 후속행동이다. 이런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정당한 교섭을 통해 라이센스비나 크로스라이센스 등 제반 이익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다짜고짜 '넌 도둑놈이야!' 라고 모욕부터 주고는 굴욕적인 보상액부터 내세우든가 재판정에 세우는 것이 좋은 길이 아니란 뜻이다.


만일 스위스국영철도와 몬데인 사가 애플을 다짜고짜 비난부터 하면서 협상을 했다면?  저 스위스 사진작가가 무조건 애플을 도둑으로 몰아붙이고 나서 협상하자고 말한다면 자존심 강한 애플이 과연 순순히 전부 받아들일까? 마찬가지로 지금 전세계에서 애플이 무차별적으로 벌이는 고소를 생각해보자. 좀더 조용하고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며 실리를 취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애플이 이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방향전환을 해주길 바란다. 팀쿡에게는 잡스가 즐겨했다는 선불교의 참선이라도 권하고 싶다. 물론 나는 애플 경영진이 쉽게 변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잡스는 이제 없고 애플은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 디자인 도용이 애플의 이후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