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규제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히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가리켜서 ‘법 없이도 살 사람’ 이라고 말한다. 정말로 사람이 기본적 상식을 지키고 착한 심성으로 살면 인위적 규제인 법은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기본적으로 법은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규제 역시 누군가를 믿지 못하기에 생겨난다.


여성가족부는 지금 ‘범죄와의 전쟁’ 이 아닌, ‘게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데 반응이 다르다. 범죄는 누구나 싫어하는 죄악이며 아무도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은 엄연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오락요소이며, 국가적 수출산업이자, 당당한 취미활동이다.

이런 게임에 대해서 ‘셧다운제’ 라는 방법으로 청소년에게 규제를 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자. 문제는 여성부가 게임 자체를 보는 인식이 너무도 그릇되었다는 것이다. 여성부는 게임을 ‘마약’ 처럼 취급하고 있다.


게임이 과연 마약인가? 이 문제는 문화콘텐츠가 과연 마약인가? 라는 점으로 확대된다. 영화에 미쳐서 하루종일 공부는 안하고 영화만 보다가 나중에 유명한 감독이 되었다는 ‘헐리우드 키드’ 같은 스토리는 성공 스토리로서는 감동적이다. 그러나 여성부의 눈에는 아마도 ‘영화라는 마약’ 에 중독된 청소년이 죄악의 길로 빠져든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학생 때부터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해서 ‘나만큼 미쳐봐!’ 라고 외치며 프로게이머로 성공한 임요환 선수의 이야기도 여성부에게는 마약중독자의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여성부의 지금 입장은 전적으로 일부 학부모의 시선 밖에는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게임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해악이 하나 없었으니 행복했을까? 그 시절에는 만화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모든 죄악의 십자가를 짊어져야할 콘텐츠가 하나는 있어야 했기 때문일까. 만화는 공부를 방해하고 청소년을 탈선으로 이끄는 모든 지름길이었다. 영화는 차라리 19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이라도 붙어서 나머지 영화에 대해서는 건전하다는 보증이라고 있었다. 그러나 만화는 일부 학습만화를 제외하면 모든 콘텐츠가 청소년 유해요소였다.


나는 어릴 적에 모범생이었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공부 외에 다른 것을 거의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그런 룰을 어긴 것이 있다면 오락실 출입이었다. 세상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피해보기 위해 일부러 게임센터나 오락실이 아닌 ‘지능개발센터’ 라고 붙여놓은 그곳 말이다. 나는 오락실에서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고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 지를 꿈꾸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오락실에 가는 것을 탈선행위라고 하니 죄악감을 가졌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것이 죄악이 되는 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들도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사실은 아마 선생님들도 이해하고 단속하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게임이 청소년 탈선에 미치는 인과관계’ 같은 논문이나 조사연구 결과를 읽는 선생님을 나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저 위에서 시키니까 단속했을 뿐이고 나도 단속하니까 걸리지 않기 위해 애썼을 뿐이다.

이것은 비극이다. 잘못이라고 하면서 왜 잘못인지 설명하지도 못하고, 당하는 쪽에서도 그런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하고 받아들인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합의라는 것을 배워야 할 청소년에게 이런 방식이 무슨 모범이 되겠는가?

여성부의 게임규제 정책, 반감을 부르는 이유는?


여성부의 게임정책이 반감을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이 정말로 그 자체로 마약처럼 청소년에게 해를 끼치는 요소인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검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례만으로 게임을 이미 나쁜 것으로 규정짓고 나서 규제방법만을 고민하는데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자유민주주의에서 기본은 규제가 아니라 자유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해악성이 없다는 것을 단속당하는 쪽에서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구체적인 해악성이 있다는 것을 규제하는 쪽에서 입증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무죄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당연한 진리다.


현재 여성부는 청소년 보호란 명분과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동성폭행에 대한 분노를 에너지로 온라인 게임에 이어 모든 게임으로 규제를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학부모들의 우려를 이용해서 여론을 형성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게임이 과연 인간에게, 청소년에게 해로운 것인지에 대한 입증 책임은 규제하려는 여성부에게 있다. 또한 규제의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게임이 해로운 것인지, 아니면 무엇이 되었든 잠을 자지 않고 몰두하는 것이 해로운지 말이다.



만일 잠을 자지 않고 하는 모든 것이 해로운 것이라면 지나친 공부를 시키는 학부모와 교육기관에도 셧다운제를 강제해야 한다. 게임만이 해로운 것이라면 해악성을 입증해야 한다. 여성부의 규제에는 이런 아주 중요한 절차가 빠져있기에 반감을 부르는 것이다. 여성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최근 앞날이 촉망되는 16세의 프로게이머가 스타크래프트2 국제경기 중에 셧다운제로 인해 무리한 게임진행을 하다 패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와의 경기였는데 현지시간 때문에 어쩔수 없이 경기를 밤에 해야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을 보며 새삼 무리한 규제가 부르는 효과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자.

(원문참조:  한겨레 오피니언 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