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거리'란 한국말은 단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영어로 옮겨놓을 때는 깊은 뜻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코미디, 개그, 위트, 슬랩스틱, 조크 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방송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유쾌한 요소가 여기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한때 웃기는 직업군을 지칭할 때 어떤 방송사는 '코미디언'이라고 불렀고 어떤 방송사는 '개그맨' 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매우 본질적인 웃음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그리고 웃기면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없는 걸까? 하는 고민 말이지요.

천재라고 불린 명배우 찰리채플린의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초기작품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의 조그만 헤프닝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다리를 메고가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면서 사람을 치는 것 같은 바보 같은 행동 위주로 웃음을 주는 방식입니다. 흔히 슬랩스틱 개그라고도 하는 이것은 한국에선 심형래가 독보적인 위치에서 구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점차 채플린의 작품은 특정한 메시지를 가지게 됩니다. 배가 고파서 가죽구두를 삶아먹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점차 인간의 슬픈 본성과 아이러니함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모던 타임즈'를 통해서 기계화되는 문명에 대한 경고를 던집니다. 나중에는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 세계의 평화를 촉구하는 거대한 정치메시지까지도 시도합니다. 그는 단순한 코미디언에서 시작해서 위대한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사람을 웃기는 방법에 어떤 귀천이 있거나 계층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서 메시지가 제거된 웃음만이 주류가 되어왔다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적 메시지가 포함된 개그는 엄격하게 제한되어 버렸습니다. 티비에서 개그맨이 정치성 개그 한 마디를 잘못하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방송 출연 자체가 불투명해졌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SNL, 고급 위트가 들어있는 세련된 방송.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줄여서 SNL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미국 프로그램이 한국화되어 만들어진 다고 했을 때 상당히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SNL은 1975년에 NBC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방송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에미상 후보 지명 대상까지 되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면서 미국 정치 및 문화를 풍자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유쾌한 웃음을 만드는 방송이지만 메시지성이 아주 강합니다.


따라서 SNL 코리아는 과연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런 '메시지 강한 웃음'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지 궁금했습니다. 단순한 코미디나 슬랩스틱 개그를 넘어서 위트의 영역까지 자유롭게 진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SNL은 정치 사회를 풍자하면서도 충분한 웃음을 유발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SNL이 한국에 오면서 이룩해야할 목표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았을 때 그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봅니다. SNL은 상당한 수위로 정치인과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판하면서도 충분한 웃음을 주려고 합니다. 최근 방영된 신동엽 편에서는 대선을 앞둔 대선주자들을 텔레토비에 비유하는 과감함까지 보여주면서 웃음의 코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우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방송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고급스럽고 위트있는 웃음. SNL 코리아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정규방송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형태의 방송이 한국에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코미디 빅리그, 쉽고 재미있는 개그를 전달한다.

이번에는 정반대에 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볼까요? 바로 '코미디 빅리그' 입니다. 이 방송은 최초에는 입지가 줄어든 개그맨들이 모여서 커다란 경연을 해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금을 걸고 그것을 위해서 각자 경쟁하는 포맷이기에 '나는 가수다' 와도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최초에 코미디 빅리그 1기에서는 여러가지 포맷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모든 세부 장르가 전부 나왔습니다. 사회비판성이 강한 코너도 있었고, 머리를 써서 이성적인 생각을 하면 더 웃음이 나오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생각없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슬랩스틱 개그도 물론 있었습니다. 유행어와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승부를 보는 전통적인 방식도 시도되었습니다.

사실 앞서 예를 든 SNL은 전문 개그맨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오히려 베테랑 엔터테이너와 배우들이 중심을 차지해서 만들어진다고 봐야합니다. 개그가 가미된 시사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코미디 빅리그는 다릅니다. 철저하게 개그맨들이 중심에 서서 코너를 만들고 경쟁합니다. 따라서 웃음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간디, 간지 작살!' 이나 '할리라예!'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쉽고 재미있는 개그코드에 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굳이 제시할 필요가 없기에 보다 자유롭게 웃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팀의 경연이란 포맷으로 인해서 보다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시청자들은 매번 새로운 형태의 웃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불안한 편성으로 시작했던 코미디 빅리그가 정규방송이 된 것은 이런 개그맨들의 치열한 노력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고 좋은 방송으로 성장했습니다.


SNL과 코미디 빅리그, 아쉬운 점은?

아쉬운 점도 물론 있습니다. SNL은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다보니 높아진 개그수준에 시청자가 따라가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방송은 천천히 되새김질을 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대사와 상황을 빨리 처리해서 웃음을 유발했는데 실은 구석구석의 작은 대사와 상황에 모두 깨알같은 패러디와 비판정신이 녹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시청자는 그 가운데 절반 이상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어쩐지 덜 우습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SNL에게 주어진 과제는 웃음 자체를 보다 쉽게 풀어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미디 빅리그의 아쉬운 점은 SNL과 대조적입니다. 쉽고 재미있지만 메시지가 너무 약합니다. 그 자리에서 보고 즐기기에는 좋지만 끝나고 나면 남는 어떤 것이 부족합니다. 앞서서 예를 든 찰리 채플린의 작품은 쉴새없이 넘어지고 때리는 슬랩스틱 개그를 하더라도 그 안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장면이랄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코미디 빅리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개그를 지향해 달라는 점입니다. 개그맨이 단순히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움직임입니다.

이렇듯 정반대의 방향에서 접근하는 두 방송이지만, 메시지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전부 가지는 순간 진정으로 '명품 방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과거 지상파에서 숱한 화제를 만들면서 장수했던 선배 개그 프로그램의 전설을 잇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