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즐겨보던 프로그램 가운데 '장학퀴즈'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출연해서는 퀴즈를 맞추는 아주 단순한 포맷이었다. 그러나 이 방송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때묻지 않은 학생들의 풋풋함과 함께 퀴즈를 맞추면서 그들의 꿈인 학업에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시청자에게 어필한 것이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방송은 시청자에게는 그다지 많은 것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출연하는 고등학생들은 방송출연으로 인해 유명해지기도 하고, 장학금이란 실리도 챙긴다. 시청자는 단지 응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퀴즈를 함께 맞추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더 나은 학업을 성취하고자 하는 그들의 꿈을 응원했다. 따지고 보면 이 방송의 성공은 볼 거리가 적었던 그 시절의 문화와 함께 우리 사회가 아직 희망이 많았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그 뒤에 어떤 꿈과 희망이 있을까?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대학교 입학 자체가 꿈인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막상 대학에 가서 배우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학토론배틀은 어쩌면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를 던지는 방송일 지도 모른다. tvN에서 현재 방영중인 이 프로그램은 각 학교를 대표하는 대학생 토론팀이 논리를 가지고 나와 치열한 토론을 통해 능력을 겨룬다. 어떻게 보면 유명한 시사 방송인 백분토론을 비롯해 많은 기존 토론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아쉬워했던 부분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아니, 사회 지도층쯤 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논리가 부족한가? 상대를 존중하고 설득하려는 정신이 없이 왜 이렇게 우기기만 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해보았을 것이다. 사시를 통과한 변호사든, 최고 지성인이라 인정받는 대학교수든 예외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아무리 논술고사를 봐도 해결되지 않는 입시위주의 교육과 취업스펙 위주의 대학교육이 만든 그림자가 숨어있다.


대학토론배틀이란 방송은 바로 이런 그림자에 대해 통렬한 문제를 제기한다. 방송내용 자체에서도 대학이단지 스펙을 쌓는 곳에 불과한지, 그것이 참된 대학생 양성에 도움이 되는 지를 묻는다. 양쪽으로 나눠진 토론이 불꽃튀며 충돌한다. 이상에 기반한 당위성과 현실에 입각한 논리성이 교차한다.


대학토론배틀의 처음 방송은 작은 토론 프로그램이란 형식이었다. 일체의 방송기교 없이 토론 프로그램 그 자체로 승부했다. 정직하게 시청자에게 어필한 셈이다. 그리고 대학토론배틀에서 인정받은 대학생들은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 질문자를 비롯한 패널로 나와서 저명인사를 향해 날카로운 질문과 논리를 들이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대학토론배틀은 논리와 지식을 동시에 갖춘 생각있는 대학생을 양성하는 대표적 방송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대학토론배틀이 이제 시즌3를 맞았다. 그러면서 대폭 포맷을 바꿨다. 이전의 방송 포맷은 작은 시사프로그램을 축소한 모습이었다면, 이번에는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해졌다. 출연팀수를 보다 늘리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보다 유도하겠다는 의도이다.


첫방송을 보고는 잠시 보지 않았다가 이번에 다시 시즌3를 본 나는 그동안에 바뀐 이런 방송형식이 매우 신선했다. 우선 화면이 매우 감각적이고 경쾌하다. 지루한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흥미있는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예능프로그램에 보다 가까워졌다. 따라서 토론프로그램이라서 그다지 재미없을 거란 편견을 보자마자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다루는 주제도 과감하다. 걸그룹의 노출논란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 신상공개 의무까지 포함해서 사회 전반적인 뜨거운 이슈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시간제한 룰을 도입해서 토론 자체가 빠르게 이뤄진다. 진중권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준석과 강용석 같은 유명인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공정하고도 날카로운 심사결과를 발표한다. 예능적인 진행을 하지만 결과에 대해선 누구도 승복할 수 있도록 만든다.


각 학교의 대결구도와 개인의 스토리를 펼쳐가는 능력도 뛰어나다. 국내외 200여 대학에서온 700여명의 대학생이 출연한다. 청각장애인 토론녀, 화성인 바이러스에도 출연한 IQ177의 퍼포먼스 보이, 90세의 최고령 출연자와 해외 대학생 토론팀이 얽혀서 저마다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논리력으로 도전한다. 방송마다 통과의 기쁨과 탈락의 아픔이 확실히 표현된다. 이것도 또 하나의 토론으로 인한 슈퍼스타K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청석에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지만 동시에 대학생 특유의 싱그러움과 패기도 보였다. 출연자들은 저마다 꿈을 안고 도전하고 있었다. 이 방송은 그 자체로도 의미있지만 여기서 최고의 토론 실력을 선보인 3명에게 CJ입사의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이 메리트가 된 듯 싶다. 


 


전체적으로 대학토론배틀 시즌3는 보다 재미있는 토론이 되기 위해 많은 애를 쓴 방송이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흥미성을 의식한 방송구성과 포맷변경으로 인해 예전의 정통적인 토론에서 오는 무게감이 많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때로는 정통적 포맷도 채용하는 방송도 하면서 보완했으면 한다.


이 방송을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대학생보다는 고등학생들이다. 참여하는 것은 대학생이지만 그런 참여자인 대학생이 되기 위해 현재 공부하고 있는 것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다. 논리력이라는 것은 갑자기 몇 달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시사문제를 접하고 생각을 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행해야만 얻을 수 있다. 논술고사를 위해 벼락과외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평소부터 이런 방송을 꾸준히 보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점점 스펙은 화려해지고 지식은 많지만 정작 지혜와 논리는 예전보다 더 얄팍해지고 있다는 말이 있다. 하긴 모든 것을 갖출 수는 없으니까 어느 방면을 열심히 하다보면 다른 쪽은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가 대학생에게 기대하는 것 가운데는 열정과 패기 뿐만이 아닌, 차분한 논리와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하는 토론능력도 있다.


 대학토론배틀 시즌3는 그런 면에서 참가자와 시청자 양쪽에 매우 유용하다. 매주 수요일 밤 12시 tvN에서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이제 4강전과 결승전을 남겨두었다. 우리 모두 이 방송을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