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나는 미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재판을 다루기 싫다. 왜냐하면 이 재판이 가진 여러가지 상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재판과정과 법정 외곽에서 나오는 소식들은 두 회사에 대한 환상을 깨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애플을 좋아하고 삼성을 인정한다. 애플의 도전정신과 창의성에 대해서는 언제나 감탄하고 있으며, 삼성의 엄청난 추격자 본능에 대해서도 박수를 치고 있다.



그러나 마치 눈에 번쩍 띌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이 화장 전부 지우고 나니 '누구세요?' 수준으로 변해버리는 것처럼 이 재판은 애플과 삼성에 대해서 그간 가졌던 많은 환상을 내 머릿속에서 날려버리고 있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되어서 기쁘기보다는 결국 세상에 순수하게 존경할 회사는 없다는 씁쓸함을 느끼고 있다. 우선 오늘은 애플에 대한 깨진 환상을 하나 다뤄보자.

나는 그동안 애플이 비록 어느 정도의 예외는 있을 지언정 항상 새로운 것을 앞장서서 시도하면서 그 과정에서 대중의 유행을 추종하지 않는 점을 높이 평가해왔다. 그것이야말로 애플이 혁신을 외치면서 다른 회사를 얕잡아봐도 용납이 될 만큼의 장점이었고 스티브 잡스의 진정한 힘이었다. 그런데 공개재판으로 진행된 애플의 재판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출처, 번역: 클리앙 최완기님.) 



애플-삼성 재판에서 삼성이 오늘 아침 증거물로 법원에 제출한 애플 내부 문서에 의하면, 애플이 2007년 3GSM 콩그레스 트레이드 쇼에 조용히 참관해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애플은 이 문건에서 애플이 그곳에 출품하지는 않았지만, 애플이 쇼가 진행되고 있는 타운에 화제였다고 약간의 허풍을 떨었다. 애플은 슬라이드에서 4일 동안의 쇼 기간 중 10 단어들 중 1 단어가 iPhone 혹은 애플 혹은 DRM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통신사들이 애플과 iPhone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언급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애플이 자사 기기들 디자인을 위해 타사 제품들을 살핀 것을 암시하는 증거의 일부로 이 문건을 오늘 법원에 제출했다. 애플은 삼성이 자사 iPhone과 iPad의 룩 앤 필을 카피했다고 제소했고, 이는 빠르면 다음 주 전반에 배심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애플은 2008년 말에 연례 맥월드 엑스포의 키노트 참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애플은 그 이유를 트레이드 쇼들은 애플이 고객들에게 접근하는 방식들 중 아주 미미한 부분이고, Apple.com 사이트와 리테일 스토어들이 더 주목을 끄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 뉴스 자체는 평이한 사실처럼 써내려갔기에 별 임팩트가 없다. 하지만 이 뉴스에 담겨진 중요한 의미만 간추려서 해석하면 대략 이런 뜻이 된다.



1. 애플은 아이폰을 개발하기 전인 2007년에 아이폰 디자인을 위해 다른 회사의 디자인을 철저히 비교분석했다.

2. 그 과정에서 현재 아이폰의 독특한 디자인과 상당히 비슷한 일련의 피처폰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휴대폰의 일반적인 유행-트랜드 라고 분석했다.

3. 이후 애플은 그런 트랜드 분석을 적용한 디자인으로 아이폰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디자인을 자사 고유의 독특함이라고 주장하며 삼성을 고소해서 현재에 이르렀다.

삼성과 애플의 현재 재판에서 양측의 공격점은 서로 다르다. 애플은 삼성이 아이폰이란 특정 제품을 드러나게 카피해서 이익을 챙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에 삼성은 아이폰을 카피하지 않았다는 부정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폰 역시 다른 선행 디자인의 영향을 받아 디자인되었으며 삼성 역시 그 흐름-트랜드를 카피했다는 주장이다. 즉 애플이든 누구든 멋진 스마트폰을 디자인하려면 비슷해질 수 밖에 없으니 애당초 아이폰만의 독특한 어떤 디자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애플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애플은 될 수 있도록 다른 회사 제품과 상관없이 독특하게 아이폰을 디자인 했다는 증명을 해야한다. 그러나 이 뉴스와 첨부된 자료에 의하면 애플은 타사의 디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것이 트랜드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 디자인 요소를 아이폰에 적용했다. 말하자면 애플도 디자인에 대해서 '카피캣'이었던 셈이다.

애플이 주장하는 카피캣과 트랜드의 차이는?

물론 애플의 이 문서 자체가 애플의 모든 주장을 일거에 거짓말로 만들고 재판을 패하게 만들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다. 애플은 분명 트랜드 디자인을 도입했지만 그 안에서 몇 퍼센트를 어떻게 아이폰에 도입했으며, 이에 비해 삼성의 갤럭시는 보다 노골적으로 몇 퍼센트를 도입했는지를 구분해서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그것으로 다소 쪼잔하게(?) 물고 늘어지면 재판에 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애플이 말하는 트랜드와 카피캣은 일반인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차이가 줄어든다. 자칫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주장이 되기 쉽다. 숫자로 구분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이 아이폰 디자인의 49퍼센트를 따라 했으므로 카피캣이 아니라거나, 51퍼센트를 따라했으므로 카피캣이라는 판결이 내진다고 치자. 49퍼센트와 51퍼센트의 차이- 단 2퍼센트는 대중이 눈으로 보아서 식별 가능한 수준일까? 



디자인이라는 건 소비자를 상대로 한 것이다. 엔지니어가 정밀계측기로 측정해서 판단하는 그런 요소가 아니란 뜻이다. 그럼에도 애플은 이제 이 재판을 디자이너가 일일히 아이폰과 갤럭시의 디자인을 원자단위로 분해해서 대체 몇퍼센트가 같은지 따져야 하는 그런 지경까지 밀어넣었다.

애플이 주장하는 나쁜 의미의 카피캣과 선량한 의미의 트랜드 반영이란 차이가 현미경으로나 봐야 구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법적으로는 말이 될 지 몰라도 일반적인 소비자의 상식으로는 그저 코미디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혁신적이고 당당한 애플을 상상했다. 심지어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법정다툼에서조차 디자인 요소의 몇 퍼센트 같은 기준을 들고 나온 적이 없다. 삼성과의 이 재판에서도 아직은 그렇게 들고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애플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혁신이란 화장 속에서 절세미인으로 보였던 애플이 화장을 지운 맨얼굴로 내 앞에서 쌀알을 세며 밥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