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평가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가장 객관적이고 냉철한 자세를 주문한다.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어느쪽에도 감정적이지 않는 자세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불편부당, 공평무사 같은 옛말들이 이런 자세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IT의 흐름을 분석하는 입장에서 보자.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들이 일정한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때로는 아주 바람직할 때도 있지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때도 있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 못할 때도 있다. 대체로 나는 흐름에 대한 분석에서는 개인적 의견을 자제하고 있다. 그래도 안타까울 때도 있다는 건 보다 거시적인 입장에서, 혹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못할 때이다.

한가지 사실을 제시해보자. 근래에 들어서 '태블릿'의 특성을 가진 제품 가운데 점점 고가 제품이 사라지고 있다. 이미 출시된 고가 제품들은 거의 팔리지 않고, 새로 출시 예정된 제품 가운데에도 고가 제품은 거의 없다.  우선 삼성이 의욕있게 추진한 슬레이트 PC에 대한 소식이다. (출처)

출시한 지 1년이 안된 삼성전자의 슬레이트PC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PC분야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극심한 판매 부진에 시달리면서 조용히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슬레이트PC 마케팅을 위해 별도로 마련한 홈페이지(www.samsungslatepc.co.kr)를 폐쇄시켰다. 이 홈페이지는 슬레이트PC 기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이 제품을 홍보했던 곳이다.

홈페이지 폐쇄와 함께 공격적으로 진행했던 ‘미드(미국 드라마)’ 형식의 슬레이트PC TV광고도 전면 중단시켰다. 삼성전자는 최근 새로운 슬레이트PC 모델을 선보였지만, 현재 삼성의 PC쪽 TV광고는 울트라북 위주로 전개되고 있다.



슬레이트 PC는 기본적으로 좋은 하드웨어였다. 노트북의 우월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태블릿까지도 결합시켜보겠다는 야망이 담겨 있는 플랫폼이었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분명 이 방향은 옳다. MS든, 인텔이든, 심지어 애플조차도 장기적인 방향에서는 고사양 태블릿과 초경량 노트북을 통합하려는 전략을 세워놓았다. 그러니까 슬레이트 PC는 그런 전략을 이전에 추진한 용감한(?) 제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슬레이트PC는 큰 문제가 있었다. 두 기능을 통합하면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반 노트북에 터치스크린과 터치펜을 장착하고는 태블릿 형태로 만든 설계에서 걱정되는 문제점은 단 하나다. 과연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매끄러운 반응과 쾌적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이다. 

슬레이트 PC는 키보드를 없앤 초경량 노트북이라고 보기에는 퍼포먼스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윈도우가 구동되는 중후한 고급 태블릿이라고 보기에는 반응속도가 떨어지면서 가격이 너무 비쌌다. 아이패드의 고급형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구입할 만한 매력이 별로 없었다. 더구나 곧바로 시장에는 인텔이 내놓은 울트라북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했다. 



큰 흐름에서 볼 때 슬레이트 PC의 방향은 분명 옳았다. 그것은 울트라북이 결국은 키보드를 달아놓은 슬레이트PC나 비슷한 하드웨어인 것에서 알 수 있다. 실제로 울트라북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애플의 또다른 제품인 맥북에어에 대한 견제이다.(출처)

시장조사기관 NPD는 울트라북이 고급 노트북 시장을 구했다고 말했다. NPD는 울트라북 판매가 미국 노트북 시장을 성장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첫 5개월 간 700 달러 이상의 윈도우 노트북 판매가 거의 11%를 차지했고, 700 달러 이상의 윈도우 노트북들 중 울트라북의 점유율은 2012년 1월 6%에서 5월 15% 이상으로 올라, 매월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레이트 PC와 울트라북은 가장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가격이 아직은 소비자가 생각하기에 비싸다는 점이다. 물론 업체 입장에서야 그 정도 스펙을 가지고 고급제품으로 출시했으니 애초부터 고급품이라 말할 수도 있다. 또한 이윤은 얼마 남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트북에서는 맥북에어란 기준제품이 있으며, 태블릿에서는 아이패드란 기준제품이 있다는 것이다. (출처)



시장조사기관 IDC 분석가 제이 추는 2012년 전반기에 맥북이 울트라북에게 승리했다고 말하고, 인텔의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울트라북의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전반기 중 세계시장에 약 50만 대의 울트라북이 출하되었고, 이는 인텔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추는 울트라북의 부족함에 대해, 더 많은 모델들이 $700 선에 출시되어야 하고, 더 가벼워야 하며, 윈도우 8 같은 OS에 더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슬레이트 PC의 실패는 고가 태블릿의 실패?

소비자들이 보기에 구입할 만한 매력이 주어지려면 기준제품보다 더 많은 만족감을 주던가, 아니면 값이 획기적으로 싸야한다. 슬레이트 PC는 태블릿으로 보기에는 아이패드보다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또한 노트북으로 보기에는 맥북에어보다 훨씬 비쌌다. 그러므로 실패했다. 최근 하이마트에서 슬레이트PC를 대폭 할인해서 팔았는데 이때 조기 매진사태가 벌어졌다. 가격만 낮추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울트라북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맥북에어에게 지고 있는 현실도 이를 증명한다. 비슷하거나 더 낮은 만족감을 주는 윈도우 플랫폼은 애플의 맥북보다 싸야만 산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미 시장은 그런 방향으로 정해지고 있다.

다소 착잡한 것은 슬레이트 PC의 실패가 결국은 고가 태블릿의 실패라는 커다란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이 이 플랫폼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슬레이트PC를 잇는 슬레이트7이 나와있다. 이 제품의 방향은 옳기에 가격과 성능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토롤라의 줌이 실패했고, 반대로 아마존의 킨들 파이어가 성공한 것은 단순한 컨텐츠의 유무가 아니다. 최근 넥서스7의 저가 출시소식과 맞물린 흐름을 볼 때 이미 태블릿은 일상재로 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많은 돈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 애플도 아이패드 미니를 내놓으면서 더 낮은 가격을 매길 거란 루머가 있다.

어떤 것이 일상재로 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제품이 더이상의 커다란 혁신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소비자들의 지갑을 확실히 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이 애플이든 삼성이든, 모토롤라든 결과는 같다. 슬레이트 PC의 실패를 접하면서 내가 느끼는 안타까움은 바로 여기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