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무엇이 먼저인가?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작게는 오늘 점심을 짜장면으로 할 것 인가, 비빔밥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한달 뒤에 소개팅을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수많은 선택이 걸려있다.

이런 선택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스스로가 무엇에 우선 순위를 두고 그 순위에 따라 덜 필요한 것을 골라내느냐 하는 것이 선택을 가르는 명백한 결정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뭐가 더 중요한데?' 라고 묻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점심으로 보통 한끼를 먹기에 짜장면을 먹고 비빔밥을 동시에 먹을 수 없다.



근래에 애플이 친환경인증을 둘러싸고 벌인 일련의 사건들은 이런 중요한 점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출처) 

샌프랜시스코 시 관계자들은 애플이 친환경 인증에서 탈퇴해 더 이상 애플 컴퓨터들 사지 않을 것이라고 월 스트릿 저널에게 말했다. 시 관계자들은 시 산하 50개 기관들이 애플이 EPEAT로 불리는 친환경 전자제품들의 등록에서 자진 탈퇴했기 때문에 애플 랩탑들과 데스크탑들을 구입하는데 시 예산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의 2007년에 채택된 정책은 EPEAT에서 인증한 데스크탑들, 랩탑들, 모니터들만 구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소식에 이미 소개된 것처럼, 애플은 EPEAT에서 탈퇴했다. 그러나 월 스트릿 저널은 샌프랜시스코 시의 컴퓨터들 중 맥은 500대에서 700대 정도로 1%에서 2% 밖에 되지 않아 애플이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발단은 간단했다. 애플이 EPEAT라고 불린 친환경 인증 기관에서 자진탈퇴한 것이다. 갈수록 분해하기 어렵게 설계된 맥북 시리즈가 원인이었다. 접착제로 단단히 붙은 일체형 배터리와 알루미늄 유니바디는 처음에는 그럭저럭 독성 요소를 쓰지 않고 에너지 효율이 좋아서 친환경 기준에서 골드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레티나 맥북 프로에 와서는 한계에 도달했다. 더 얇고 가볍고 보기좋게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와 사용자가 쉽게 뜯을 수 없게 하려는 엔지니어 측에게 있어 친환경 기준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규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 친기업을 외치던 어떤 정부가 계속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 '규제' 말이다.

결국 애플은 친환경 기준을 탈퇴했다. 뭐, 가입과 탈퇴는 자유다. 기업경영에 있어 선택도 자유다. 적어도 애플은 현재 자기들의 명성과 위치로 봐서 이까짓 친환경 기준정도는 탈퇴해도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애플은 자기들의 맥북이 보다 에너지를 절약하므로 친환경이라 주장하며 에너지스타 기준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오만(?)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과는 교육시장에서의 거부반응이었다. 초기 맥이 힘들었던 시절에 힘이 되어 주었고, 잡스가 죽기 전까지 공들였던 교육시장에서 제일 먼저 애플 제품이 퇴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설마 이렇게 반응이 곧바로 격렬하게 올 줄 몰랐던 애플은 바로 자기들의 결정을 뒤집었다.(출처)



애플은 갑작스럽게 EPEAT 인증 프로그램을 탈퇴했다가 오늘 복귀했다. 특히 15 인치 레티나 맥북 프로 2 모델들이 최고 등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늘 복귀 후 EPEAT 웹사이트에 레티나 맥북 프로 모델들은 EPEAT의 골드 등급으로 인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티나 맥북 프로 모델들은 다른 애플 노트북 라인업처럼 똑같은 총점을 받았다. 레티나 맥북 프로 모델들의 총점은 비-레티나 맥북 프로 모델들과 동일했다. 이는 다른 노트북들보다 수리하기가 어렵고, 디스플레이가 캐스팅에 통합된 것과 배터리가 접착제로 붙여져 재활용이 어렵다고 비판한 사람들에게는 놀랄만한 일이다.
총득점에서 애플이 어떻게 향상시켜야 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단지 "재료들 선정"과 "에너지 보존" 부문에서 점수를 잃었다.


상황은 얼핏 봐서 그냥 헤프닝으로 그쳤다. 애플은 원래대로 며칠 만에 EPEAT로 복귀했다. 애플이 우려하던 레티나 맥북프로는 골드 등급을 받았다. 그러니까 애플이 별 이유도 없이 그저 골드등급을 받지 못할 거란 초조감에서 함부로 탈퇴했다가, 다시 복귀하고는 당당하게 골드등급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기말고사 성적표가 안좋아서 부모가 혼낼거라 생각한 소년이 가출했다가 돌아와보니 부모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따스하게 맞아주었다는 동화 정도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애플과 친환경 인증은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이런 간단한 해피엔딩 동화가 아니다. 친환경과 평화를 사랑하던 히피 출신이던 스티브 잡스가 만든 회사가 애플이다.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만 하며 명상을 즐기던 잡스가 만든 애플이 팀쿡이 리더가 되자 친환경 따위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며 탈퇴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일대 사건이다.

잡스는 팀쿡에게 말하기를 '잡스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경영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고 했다. 맞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팀쿡의 애플이 취한 이 결정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애플의 지금 제품 개발 노선이 과연 앞으로 친환경 기준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이다. 

애초에 애플이 저 기준을 탈퇴했을 때 판단의 '기준' 이 된 규제는 지금도 엄연히 존재한다. 앞으로 애플이 이 기준을 지키려면 일정부분 디자인의 아름다움과 경량화, 일체형 배터리의 편리함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애플이 장기적으로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걸 다 받아들이고도 혁신이란 스스로의 목표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친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애플같은 선두기업이 그 기준을 지키느냐 마느냐는 다른 기업에게도 지표가 된다. 나는 애플이 친환경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일 지킬 수 없더라도, 저런 방식으로 일방적인 탈퇴와 장난같은 복귀를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애플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세우고 그에 따라서 흔들림없는 판단을 해주는 것이 애플을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