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온국민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슈퍼스타K다. 아마추어 가수를 뽑아 선발해서 허각과 버스커버스커, 울랄라세션 같은 대형 가수로 키워낸 이 프로그램은 요새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이 전부 지원한다. 그야말로 조선시대로 말하면 과거시험이나 마찬가지다.


1등이 되어 온국민을 감동시킬 히트가수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도전하는 지원자는 수십만에 이른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1등이 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하다못해 예선을 통과하는 사람조차도 많지 않다. 떨리는 몸으로 7시간 버스를 타고와서는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 한소절도 제대로 불러보지 못하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 지원자들의 애틋한(?) 사연은 그냥 무대 뒤에서만 울린다.


하지만 이런 지원자들을 그냥 냉정하게 돌려보내기만 할 것인가? 예선에서 탈락했다고 루저가 아니다. 미스에이의 수지는 바로 이 슈퍼스타K의 탈락자였다. 이런 인재(?)를 놓쳤던 과거를 반성한 것일까? 예선에서 탈락한 참가자들을 위한 색다른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이 바로 락방이다.


락방? 낙방? 그리고 보니 과거에 떨어진 것을 낙방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설마 거기서 유래된 것은 아니겠지. 이름이야 어쨌든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단 하나다. 예선에서 떨어진 참가자를 불러모아 원없이 한번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실력에 따라 아주 공정한(?) 심사를 거쳐 집에 돌아갈 차비를 계산해준다. 예비군 소집훈련에서나 볼 수 있던 아주훈훈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모인 구성원의 면면도 재미있다. 대놓고 저예산으로 만들겠다는 스텝은 한국 최고의 퍼커션이지만 아무도 못알아보는 뮤지션 자이온 루즈, 1집 싸이코를 내놓고 활동했지만 역시 가수라고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곽현화를 섭외했다. 거기다 노래의 흥을 돋우는 노래방 도우미 역할의 박자매는 곽현화보다 나이많은 연상녀다. 이 정도 되면 이 방송의 장르가 슬슬 감잡힐 것이다. 바로 B급 시트콤이다.


심사위원은 계순이 이모라는 정체불명의 아줌마. 이 아줌마는 매의 눈으로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는 아주 객관적으로 평가해 자기 맘대로 차비 액수를 정해 나눠준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째지는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돈은 5천원에서 7천원까지. 구미에서 올라온 도전자는 차비의 반도 못건지고 돌아갔다. '노래 한 곡하고 차비 받아 가세요.' 란 문구가 걸린 텐트를 치고 벌이는 애처로운 이 방송의 묘미는 이런 B급 개그에 있다.


선글라스 쓴 이승철의 독설은 없어도 계순이 이모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차가운 금액산정 기준은 경제불황에 찌든 참가자들에게 세상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쳐준다. 빳빳한 천원짜리로 즉시 지불되는 노래의 가치는 그대로 참가자들 실력의 가치일까?


계순이 이모의 눈에 들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보겠다는 훈남 미소년(?) 참가자들의 분투가 특히 눈부시다. 어린 나이로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열심히 춤추고 노래한 참가자의 손에 주어진 6천원. 아마도 강남에서 밥 한끼 먹기도 어려운 금액이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동의 댓가라고 봐 주면 안될까?



코미디스러운 참가자들만 연속된 가운데 드디어 진지한 가수형 참가자도 나왔다. 거미의 어른아이를 열창하는 이국적 외모의 미녀가 등장했다. 노래도 수준급이고 비주얼도 좋은 이 참가자가 1만원의 차비를 갱신하려는 순간... 갑자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결국 참가자는 그냥 돌아가고 허술한 텐트인 락방 세트도 철수했다. 과연 이대로 락방은 주저앉을 것인가?


하지만 B급 작품의 묘미가 무엇이던가. 관객이야 어떻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어차피 제작비가 적게 드니 특별히 중단하고 말 것도 없다. 소나기가 그치고 다시 촬영이 재개된 가운데 바람잡이 역할의 킹오파가 갑자기 락방 참가자를 구름같이 모아온다. 술집 삐끼같은 복장과 정열의 호객행위가 빛을 발한 것이다.


기타소년의 열창 뒤에서 박자매가 탬버린을 치고 흥을 돋워준다. 다시금 락방은 이렇게 낙방자들의 한풀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해준다. 급기야 어린 커플 참가자는 노래 부르다 뽀뽀까지 하는 특급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에 심기불편해진 계순이 이모님의 표정은 이미 차비산정을 초월하셨다.


여기에 건강하고 씩씩한 청년이 끼를 주체하지 못하며 뒤를 잇는다. 좋은 가창력과 근육질 몸을 뽐내는 이 청년은 곽현화에게 어디 행사 뛰어도 되게다는 극찬을 받으며 3만 4천원이란 엄청난 차비를 획득한다. 이걸로 낙방의 한도 조금은 풀어졌을까? 


대구지역 예선장에 가서 얼짱미녀 참가자와 자유로운 영혼이란 기타리스트도 만난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임정희의 노래를 부르는 얼짱미녀에게 탈락자들이 오는 락방에 꼭 나와달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락방은 자칫 슈퍼스타K4에서 그림자에 놓이기 쉬운 탈락자들을 위한 방송이다. 승자는 모든 걸 얻지만 패자는 루저란 경멸만 받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과감한 기획... 일 리는 없고 그냥 재미있게 탈락자를 조명해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긴 슈퍼스타K의 탈락자 가운데 비록 노래는 좀 뒤져도 개그맨이나 퍼포먼서로서 소질이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락방이 제 2의 배수지를 발굴해낼 지 말이다. 금요일 밤 9시부터 무료로 티빙에서 방송되는 락방을 보면서 편안하게 웃어보자. 혹시 아는가? 그 탈락자 가운데 내가 아는 어떤 주위사람이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