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어한다. 학창시절에 지식을 익혔던 은사의 기억뿐만 아니다. 살면서 익혀야하는 처세술과 연애의 기법, 생활의 지식까지 늘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원한다. 누군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성공을 했을까 궁금해한다. 또한 그런 비결을 익히면 스스로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지 모른다.



IT업계에서 항상 화제가 되었던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고인이 되어 더이상 어떤 행보도 보일 수 없지만, 여전히 그는 화제의 중심에 있다. 아마도 그가 생존에 일구어낸 업적이 지금도 애플이란 회사와 아이폰이란 제품이 되어 전세계 사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가로서, 혹은 성공한 경영인으로서 스티브 잡스는 무척이나 독특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취하던 무난한 경영기법과 평범한 제품개발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잡스는 늘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방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기업을 이끌었다. 시중에는 이미 이런 잡스에 대한 많은 사실과 분석을 담은 책과 컬럼이 나와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잡스의 독특한 면을 전부 이해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쉽게 긍정할 수 없다. 잡스가 생전에 늘 갑갑하게 생각했듯이 IT업계를 둘러싼 분석은 늘 무엇인가 부족하다.   스티브 잡스가 취한 행동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분석과 인색하게 깎아내리는 단정은 많다. 정작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려는 중립적 자세는 부족하다. 이것은 잡스가 가진 독특한 인생경험과 스탠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피상적인 현상만을 파악하려는 점에서 나온다.



잡스처럼 최고의 소비자가 되어 본다면?

잡스는 한번도 정규 경영학 과정을 밟은 적도 없고, 이른바 MBA과정을 이수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어떤 글에서는 잡스의 경영방침을 정규 경영학 이론에 짜맞춰서 정말 모범적인 행동이었다고 추켜올린다. 그런데 비록 결과는 같은 지언정 잡스가 해설처럼 경영학 이론을 정말 의식하고 그런 경영을 했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것은 그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으로 독자를 착각하게 만드는 글에 불과하다. 직접 잡스의 인생을 함께 생각하면서 해석하지 않고 그저 자기가 보고 싶은 면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창조적 기술의 조합을 다루면서 가장 명심해야 할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잡스는 뛰어난 천재지만 그는 대학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이다. 무식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정규학력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수백, 수천번의 실험을 통해 위대한 발명을 했다. 에디슨이 가진 장점은 학력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와 끈기, 빛나는 직감에 있다. 실험결과를 세심하게 해석하고 거기서 이론을 도출해내며 데이터를 근거로 착실히 발명을 하는 그런 학자는 절대로 아니다.



이런 에디슨을 위대한 발명왕에서 벗어나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바보같은 짓이다. 마찬가지로 대학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스티브 잡스를 위대한 경영 이론가나 엄청난 엔지니어, 혹은 천재 디자이너로 묘사하려는 일체의 시도 역시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 사람마다 약간 다른 분석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제품 기획에 있어서 잡스를 최고의 소비자, 혹은 최상의 제품 평가자라고 본다. 혹자는 잡스를 기획의 신이라고 일컫거나 최고의 기획자라고 보기도 한다. 그것도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전문 기획자로 보기에 잡스가 가진 특성은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 하나씩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보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함께 만든 개인용 컴퓨터 애플2를 생각해보자. 애플2의 하드웨어는 거의 전부가 워즈니악의 작품이다. 동업자인 잡스가 이때 맡은 역할은 굳이 말하자면 엔지니어 워즈니악을 지원하는 매니저에 불과했다. 하지만 잡스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적극적으로 이 제품 제작에 개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잡스가 이때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므로 하드웨어를 설계할 수 없다. 디자이너가 아니므로 직접 제품의 도면을 그리거나 모양을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잡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바로 최종 소비자의 시각으로 이 제품을 보고는 개선점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시각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단점을 보지 못한다. 아니, 보지 못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쏟아야 하는 세부적인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머릿속에서 이미 포기해버린다.

애플2에서 엔지니어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컴퓨터에 전원을 공급해주는 파워서플라이에 대해서 별다른 구상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당시 개인용 컴퓨터의 전원장치들은 대부분 커다란 변환기에서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는 팬을 달고 있었다. 팬이 돌아가면 소음이 나와서 귀에 거슬리지만 모두가 이 점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개인용 컴퓨터란 것은 당시 전자기기를 잘 아는 애호가들이 쓰는 것이었다. 애호가들은 컴퓨터란 특별한 기계라고 생각했기에 소음은 당연히 나올 수도 있다고 간주했다. 아무도 불편을 호소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 역시 생각은 비슷했는데 소음을 없애기 위해 굳이 팬없는 전원장치를 컴퓨터에 넣을 필요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잡스는 달랐다. 그는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애플2를 가정마다 보급시켜야 할 가전제품으로 인식했다. 특별한 기계가 아니라 가전제품이란 시각에서 보자면 팬 소음은 없어야 할 요소였다. 텔레비전을 켰을 때 소음이 난다면 당연히 거슬릴 게 분명하다. 또한 당시 잡스가 열중하고 있는 선불교의 명상을 하는 데 그 옆에서 켜둔 컴퓨터의 팬소음이 난다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잡스는 전원장치를 새로 설계하기로 하고 상당한 돈을 들며 스위치 방식의 새로운 전원장치를 의뢰했다. 덕분에 애플2는 팬소음이 없는 조용한 컴퓨터로 태어났다. 그리고 이후로 가정용으로 설계된 모든 컴퓨터는 당연하게도 팬이 없는 전원장치를 탑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잡스의 평소 생활속에 있던 명상과 집중이란 인문학적 요소가 컴퓨터 설계에 적용된 좋은 예다. 이처럼 아주 작은 개선점이라도 소비자의 생활속에서 직접 포착해서 설계 일선까지 바로 적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결국 제품을 최종적으로 고르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잡스처럼 최고의 소비자가 되어 본다면 우리는 또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남들과 다른 성공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


 
* 이 글은 필자가 전자책 서점 북릿에 기고한 원고를 가공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