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과장해서 말해보자. 스마트폰 혁명은 엄밀히 따지자면 애플에서 시작되어 다시 애플에서 끝난다. 남다르게 선명한 사과마크를 자랑하는 이 회사는 단순한 IT업체나 컴퓨터 업체가 아니다. 무엇을 만들든 항상 남들과 다르게 만들며 문화현상을 이끌어나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기가 단순히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정도를 넘어서 어떤 정신적 만족감이나 차별의 수단으로도 자리잡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본래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긍정적 의미의 자부심이나 부정적 의미의 우월감은 결국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예전 스포츠 브랜드 광고 가운데 자사 브랜드를 쓰면 진정한 스포츠맨이 된다는 의미의 선전문구가 있었다.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란 의미겠지만 결국 나머지 브랜드를 쓰는 사람은 진정한 스포츠맨이 아니라는 부정적 의미도 내포하게 된다.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인 매킨토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은 분명 값지고 유익한 제품이며 좋은 변화를 주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더 나아가 애플을 좋아하며 문화현상을 만들고,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간 우월감이 문제다. 애플 제품을 쓰는 일단의 소비자들의 자부심이 지나치게 되어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우월감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애플 제품을 쓰면 그 사람은 스마트하고 예술적인 사람일까. 반면 다른 회사 제품을 쓰면 감성이 부족한 딱딱한 사람이거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루한 사람이 될까. 애플을 좋아하고 제품의 활용성을 칭찬하면 시대를 잘 아는 멋쟁이일까? 반대로 애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그것만으로 무엇인가 다른 회사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이거나 무식한 사람이 되는가? 이것은 문화현상을 넘어선 문화적 우월감이다.

얼마전 이미 나는 이런 현상을 우려하면서 컬럼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때 독자들은 지나친 과장이나 우려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현상이 버젓이 현실로 나타나려 하고 있다. (출처)

인스타그램이 안드로이드 시장에 진출한 이후, 애플의 필 쉴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했다. 필 쉴러는 인스타그램이 iOS 독점이던 때에 @schiller 계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인스타그램이 안드로이드용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한 이후 이 계정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인스타그램이 안드로이드로 간 것은 인기를 위해 질을 떨어뜨린 행동(jumped the shark)”이라고 비판했다.



(후속 출처)

필 쉴러가 인스타그램이 안드로이드용으로 출시된 이후 자신의 계정을 삭제하고 이를 두고 ‘jumped the shark’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은 훌륭한 앱이자 커뮤니티다.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인스타그램에 대해 맘에 들었던 것은 이것이 사진을 공유하는 얼리어답터들의 작은 커뮤니티였던 점이다” 라며 “이제 이것은 너무 커져버렸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내가 즐겼던 그 원래 모습이 아닐 뿐이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은 아이폰에서 실행되는 앱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SNS와 인터넷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그동안은 아이폰에서만 쓸 수 있었지만 사업확장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안드로이드용으로 출시되었다. 그런데 필쉴러 같이 애플의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이 단지 안드로이드용으로 나왔다는 것만으로 그 앱을 쓰레기 취급해버린 것이다.

물론 필쉴러는 애플의 경영진이니까 애플 제품을 사랑하고 두둔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쟁 플랫폼을 저렇게 일방적으로 깎아내려도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그저 친구들과의 사담으로나 해야 할 말을 버젓이 공개적으로 한다는 건 자부심을 넘어선 우월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폰에서만 실행될 때는 최고였던 앱이, 안드로이드로 가자마자 쓰레기가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서두에 썼던 바와 같이 애플과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미 애플의 경쟁 제품에 대해 과다하게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게 일반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이 굳이 필쉴러 혼자만의 생각일까?

IT의 긴 역사에서 애플제품은 이제까지 주류제품이었던 적이 거의 없다. 애플2가 잠시 30퍼센트 넘는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곧 IBM PC에 밀렸고 이후 매킨토시를 거치면서 전세계 컴퓨터 점유율은 9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따라서 애플 소비자들은 소수의 마니아 집단으로서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의도적인 컬트 의식과 선민(?)사상을 가져야했다. 이것은 애플 점유율이 약할 때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므로 용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이팟은 이미 미국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90퍼센트를 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아이패드는 태블릿 시장에서 거의 독주하고 있으며 아이폰은 가장 수익이 좋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확실하게 차지하고 있다. 애플은 이제 주류를 넘어 시장의 리더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메이저 브랜드가 예전의 작고 힘없던 시절의 공격성과 문화적 우월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건 매우 위험하다.


스마트폰 가운데 애플의 아이폰이 특별한 위치에 있다는 건 애써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아이폰은 보다 직관적이고 쓰기 쉬우며, 사용자가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보안과 기능향상을 친절하게 책임져준다. 그 안에서 돌아가는 앱도 인터페이스가 일관된 통일성을 가지고 세심한 부분까지 사용자를 배려해주고 있다. 따라서 써 본 소비자가 만족감을 느끼고 그 제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수한 제품을 쓴다고 그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벤츠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두 벤츠로 상징되는 독일사람의 성실함과 근면함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니듯이 말이다. 그건 단지 그 제품을 파는 회사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다. 현실에서의 소비자는 단지 돈을 주고 그 기능을 사서 쓰는 고객에 불과하다. 제품은 제품이고,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까 애플이든 다른 어떤 회사든 브랜드가 그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마치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인종차별처럼 일부 사람들은 공격적인 우월성과 노골적인 차별의식을 퍼뜨리려고 한다. 그 매개체로서 애플이냐 아니냐 이런 기준까지 등장하고 있다. 기껏해야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제품에 우월감을 불어넣는 기업도 위험하지만, 이런 우월감에 넘어가서 실제로 공격성을 보이며 남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더욱 위험하다. 마크 하나가 붙었냐 붙지 않았냐로 우월성이 정해지는 것이라면 대체 애플의 사과마크와 나치의 갈고리십자 마크는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많은 좋은 현상들이 생기고 있다. 소셜 서비스의 발달과 생활의 편의성도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싹트는 그릇된 문화적 우월감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사과마크가 있든 없든 우리 모두는 세상을 개성 있게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