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내가 말한 것 가운데 '언어의 인플레이션' 이란 게 있다. 좋은 동기를 가지고 상대를 치켜올려주기 위해서 상위 명칭을 자꾸 써주다보면 어느새 그 단어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장님을 뜻하는 '봉사' 란 말은 본래 조선시대에 주어지던 관직명이었다. 장님에게 봉사벼슬이 주어지는 일은 있었지만 모든 장님이 봉사벼슬을 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높여주는 의미에서 봉사란 말을 썼는데 어느새 존경의 의미는 사라지고 장님이란 뜻만 남아버렸다.



나는 요새 스스로를 다른 곳에서 소개할 때 '소설가' 란 직업 외에 'IT 평론가'란 직함을 사용한다. 단순히 블로거라고 칭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의 특성을 잘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거라는 명칭이 워낙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파워블로거' 라는 명칭이 쓰였었다. 그런데 요즘은 '파워블로거' 조차도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언어의 인플레이션에 의해 아무에게나 붙이다보니 싱거워진 모양이다. 슬슬 '평론가' 라는 명칭을 붙이는 '블로거'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좀더 희귀한 명칭이라 독특해보일 수 있기 때문인 듯 싶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올바른 명칭일까? 자동차를 운전하면 모두가 '드라이버'다. 그런데  '카레이서' 가 더 멋지게 들린다고 임의로 '레이서' 라고 칭한다면 틀린 표기일 뿐 아니라 오히려 우습게 들린다. 나는 마찬가지로 '평론가' 란 호칭을 잘못쓰는 현상이 우려스럽다.



블로거는 매우 포괄적이고 명료한 호칭이다. 그 어떤 구별도 없이 그냥 블로그를 열어놓고 글을 올리고 있다면 블로거이다. 파워블로거 역시 비슷하다. 인기가 있거나 영향력이 좀 있다면 파워블로거로 불릴 수 있다. 객관적으로는 각 포털에서 선정하는 우수블로그에 들었다면 좀더 확실할 것이다.

그런데 평론가는 무엇인가? 아무런 생각없이 칭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인지는 알고 있는 걸까? 평론가라는 게 무조건 좋은 호칭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주로 쓰는 글의 성격에 따른 구분일 뿐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예로 들면 데스크에서 메인 뉴스를 읽어주는 사람은 아나운서이다. 현장에서 중계를 하며 멘트를 넣어주는 사람은 캐스터라고 한다. 아예 스스로 의견을 추가해서 프로그램 자체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앵커다. 이런 것은 직함의 구분일 뿐 특별히 상하관계가 있는 건 아니다.

블로거와 평론가는 어떻게 다를까?


일단 한국이라는 작은 범위에서 블로거와 평론가의 결정적 차이는 단 하나다. 거대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IT 블로거 가운데 정보를 주로 올리는 사람이 있다. 어느 날 어떤 제품이 발매될 예정이며 제품 성능이 어느정도일 거란 정보를 올려놓는다. 여기서 조금 나아가서 그 정보에 한두줄의 짤막한 느낌을 붙여놓을 수도 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해당제품을 가지고 와서 개봉기를 올리고 사용해 보며 느낌과 개선점늘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자세한 설치법과 사용법을 올리는 이 사람은 리뷰어다.

업계정보를 올리거나 현업 종사자가 자기 직업에 관련해서 전망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평론가에 가깝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자기 기술에 대해 해설해서 올리거나, 각 CEO가 직업상 당연히 분석하는 업계동향을 블로그에서 전망한다고 평론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는 관련 블로거로 보는 것이 맞다.



각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을 붙여서 내놓는다. 그 해석들을 묶어서 업계의 나아갈 방향과 전망을 따로 제시한다.  그리고 전망을 크게 묶어서 거대담론으로 바꿔서 화두로 던진다. 이것이 바로 평론가이다. 예를 들어 차세대 스마트폰이 나아갈 길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얼마전 방한한 제러미 리프킨 같은 미래학자 역시 크게는 평론가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블로거와 평론가의 차이는 이처럼 간단하지만 작은 차이가 아니다. 쓸만한 거대담론을 만들 기 위해서는 단숨히 제품 체험을 많이 해본다든가 현장경험이 많다든가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전반적인 지식에 대한 깊은 생각과 분석이 있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고 현재를 분석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블로거는 평론가와 완전히 격리된 그런 존재가 아니다. 평론가도 결국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상은 블로거에 포함된다. 블로거가 거대담론을 이끌도록 성장해서 결국 평론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블로거가 평론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리뷰어도 훌륭한 역할이며, 관련 블로거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평론가는 그저 거대담론 제시가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이 나갈 수 있는 길에 불과하다.

 
내 개인적 바램으로 한국에서도 부디 좋은 IT평론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함께 블로그에서 거대담론을 토론하고 좋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 Favicon of http://centurm.tistory.com BlogIcon 연리지 2012.05.20 06:50

    평론가가되기 위해선 많은 경험과 공부가 필요하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른사람의 의견을 무시한채 자기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경향이 블로그를 통해서 보여지는 경우
    안타깝다는생각도 해 봅니다.
    니자드님~
    행복한 휴일되세요~

  2. Favicon of https://reviewgirl.tistory.com BlogIcon 리뷰걸이 말한다 2012.05.20 21:42 신고

    맨 아래 사진이 주인장님이세요?

  3. 소소 2012.05.21 10:42

    예전에 논술 시험을 준비할 때 글을 쓰는 것이 무섭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저는 글을 잘 안 쓸려고 했나 봅니다 ^^;;; (핑계라고 해도 뭐 ㅎㅎ)

  4. Favicon of https://rgm-79.tistory.com BlogIcon RGM-79 2012.05.21 11:31 신고

    평론가든 블로거든 거짓말만 안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 공부의 깊이겠지요.
    책임지지않는 예언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서요.
    네이버검색 실시간으로 돌리며 전문가인척 하는 분들도 많고요.

  5. Favicon of https://otkhm.tistory.com BlogIcon 릿찡 2012.05.23 12:17 신고

    근데 또 상위 10%의 평론가를 제외하면 블로거보다 못한 경우도 있긴 하죠. 쩝

  6. Favicon of http://blog.daum.net/april_2222/ BlogIcon 방문객 2013.05.24 12:24

    '언어의 인플레이션' 이 말 낯설지 않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고, 이 말을 써온 지 몇 년 됐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어의 인플레이션'이란 표현을 씁니다. 쓰이는 의미도 같습니다. 이 사이트에 서너달에 한 번씩 와서 그 동안 올라온 글들을 쭈욱 읽고 가곤 했는데, 오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