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나는 자본주의 꽃이라는 주식투자를 배웠다. 도시의 보통 아줌마부터 시골에서 소 판 돈을 쥔 할아버지까지 전부 한다는 걸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주위에서 주식으로 인생 망쳤다는 말과 대박 횡재했다는 말을 동시에 들었다. 과연 이 주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그런 마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호기심이 강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온라인 주식투자 시스템을 이용했다. 네모진 박스 창이 여러개 나타나는 컴퓨터 속에서는 인터넷에 연결된 실시간 시스템으로 엄청난 규모의 돈이 이동했다. 하루에도 수백 개 종목이 붉고 푸른 색으로 점멸되며 가치를 높이고 낮췄다. 마치 그것은 거대한 해류같았다. 그 속에서 나는 한 마리의 작은 치어마냥 벌벌 떨면서도 조금씩 돈을 투자하면서 따고 잃었다. 도박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경제동향이나 기업가치를 보면서 한다는 점에서 조금 달랐다.

조금 익숙해질 무렵, 나는 주식투자를 '숫자만 가지고 하는 온라인 게임' 이라고 불렀다. 게이머들은 리니지 같은 게임을 통해 몬스터를 사냥하고 아덴을 벌어 무기와 아이템을 사고 팔아 수익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나는 주식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주가지수와 싸운다. 무기는 내가 가진 돈이다. 패하면 돈을 잃고 이기면 돈과 경험치를 얻는다. 결국 둘 사이 차이점은 재미있는 그래픽과 사운드가 지원되느냐 아니냐 밖에 더 있느냐? 하는 시니컬한 풍자였다. 

실질적으로 내 손에서 지폐나 동전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역시 벌 때도 화면 속 숫자의 돈이 들어온다. 실감이 나지 않으니 게임과도 다를 바 없다. 발달한 IT기술이 진지해야할 투자를 그저 컴퓨터 게임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1년정도 재미로 주식투자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소액이지만 잃은 돈보다는 번 돈이 약간 많았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주식쪽에서 재미있는 뉴스를 하나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예전의 추억과 함께 IT기술의 본질과 디지털 경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출처)  

공매도 세력과 한판 승부를 선언한 셀트리온이 이달 들어서만 2주간 50% 가까이 올랐다. 자사주 매입에 무상증자 발표까지 동원 가능한 주가부양책을 강력히 펼친 결과였다. 이 때문에 셀트리온에 대한 공매도로 그간 짭짤한 재미를 봤던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막대한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5월 14 일 오전 9시42분 현재 셀트리온은 전날보다 4400원(10.11%) 오른 4만7900원을 기록 중이다. 전날 상한가에 이은 이틀 연속 급등세다. 셀트리온은 최근 2거래일 뿐 아니라 5월들어 계속 급등세를 이어왔다. 지난 10일 2.95% 조정을 제외하곤 계속 상승세였다. 덕분에 지난달 30일 3만1850원이던 주가는 2주만에 50% 이상 올랐다.

이같은 급등세는 셀트리온이 외국인의 공매도에 맞서 강력한 주가 부양책을 발표한 게 모멘텀이 됐다. 셀트리온은 이달 초 바이오시밀러 제품에 대한 국내 식약청과 유럽의약청의 품목허가 기대감으로 상승 반전한 뒤 9일 50만주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와 10일 50% 무상증자를 발표했다. 

앞서 셀트리온은 지난달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며 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공매도 세력에 대한 공세 선언 이후 자사주 매입과 무증 발표라는 적극적 '행동'까지 뒤따르며 공매도 세력을 압박한 것. 

하지만 셀트리온 주가는 10일만 소폭 하락했을 뿐 계속 상승하면서 공매도가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졌을 확률이 높다. 장 초반 10% 이상 상승 중인 이날도 외국인은 여전히 셀트리온을 매도 중이다. 이 시각 현재 14만주 이상의 매도 물량이 HSBC 창구를 통해 체결됐다.



이 뉴스는 얼핏 경제뉴스에 가깝다. 아주 쉽게 풀어 보겠다. 흑자기업인 셀트리온  주식을 공격해서 돈을 벌 속셈으로 외국인이 허구의 공격을 가했다. 우선 셀트리온 주식의 가치가 내려간다는 데 목적을 둔다. 그리고는 실제 보유하고 있지도 않는 그 회사의 주식을 남에게 빌려서 엄청나게 팔아버린다. 그러면 당연히 시장원리에 의해 주가는 내려간다. 그러면 나중에는 약속한 기한이 되서 팔아버린 몫만큼의 주식을 사서 약간의 이자를 쳐서 원 주인에게 돌려준다. 그러면 원래의 팔았던 때의 가격과 다시 산 가격의 차이만큼의 돈에서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고스란히 벌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매도라고 하는 시스템이다.

IT기술이 만들어낸 허구의 경제를 보자. 

이에 맞선 셀트리온 역시 거의 자해공갈 수준의 조치로 방어했다. 자사주를 자기 돈으로 매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상증자를 통해서 자사주식을 더 찍어내버렸다. 그러면 주가에는 악영향을 미치지만 개별 주식의 양이 늘어나므로 공매도의 효과가 점점 상쇄된다. 팔아도 팔아도 끝이 없도록 만드는 셈이다. 이것 역시 마치 국가가 실질 가치도 없는 지폐를 마구 찍어내는 행동만큼 극단적인 조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허구의 공격에 대해 효과를 봐서 현재 공격한 쪽이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본래 IT기술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때는 이런 시스템이 거의 없었다. 일일히 사람이 해당주식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 주식을 빌려서 시장으로 가져와서 팔고 다시 일일히 사서 돌려준다는 자체가 너무도 힘이 들었기에 저런 일을 해도 수지맞는 장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IT기술인 인터넷과 스프레드 쉬트 계산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주식보유자를 찾을 수 있고 거래계약과 동시에 주식을 인수받을 수 있다. 파는 것도 자동이다. 그러니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팔아서 그 차액으로 돈을 번다. 저런 말도 안되는 허구의 경제거래가 성립될 수도 있다. 이것이야 말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다.

굳이 주식시장만 이런 것이 아니다. 요즘은 기업의 인수합병에서도 마찬가기 방식이 쓰인다. 어떤 기업이 굉장히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공격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 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돈은 어떻게 조달할까? 놀랍게도 공격대상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파악한 뒤에 그것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어차피 공격이 성공하면 그 돈은 내것이니까 현실로는 내 손에 있지도 않은 돈을 허구의 담보로 제공하면 돈을 빌려주는 펀드들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때까지 IT평론가로서 디지털 경제가 가진 장점을 주로 말해왔다. 하지만 빛 뒤에 가려진 그림자처럼 현대의 첨단 디지털 경제에는 이처럼 한꺼풀만 벗기면 하이에나보다 더 야만적이고 잔인한 시스템이 고안되어 있다.



약간 과장되게 비유하자면 강도가 어떤 부자를 털기 위해서 무기가 필요한데 살 돈이 없다. 그러면 그 부자가 보유한 재산을 담보로 무기상에게 강력한 무기를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시스템이다. 강도도 나쁘지만 무기상은 더욱 악질적이다. 그리고 이 무기상을 도와주는 가장 든든한 시스템이 바로 IT기술이다.

물론 IT기술 자체는 칼과 같아서 선악을 가릴 수 없다. 언제나 나쁜 것은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IT기술이 이렇게 브레이크 없이 막가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 역시 인간에게 있다. 자본의 자유이동을 그렇게도 부르짖던 선진국 사이에서 요즘 논의되는 자본세(토빈세)를 생각해보자. 적어도 있지도 않는 가치를 가지고 돈을 벌고 잃는 이런 상황을 디지털 IT 경제의 성과라고 자랑하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