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등에서 묘사된 인간의 뿌리깊은 공포 가운데 하나는 ‘기계’다. 무엇이든지 자동으로 처리하는 로봇이나 기계가 조만간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거란 예상이 있다. 어떤 사람에 그것은 힘든 가사일이나 노동을 기계에게 시키고 사람은 편하게 놀거나 생산적인 일에 전념할 거란 축복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보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한다는 저주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예 인간이 조만간 기계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고 역사에서 사라질 거란 공포이다.



사실 이 모든 예측에는 과장이 숨어있다. 세탁기나 청소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완전히 편히 놀고 가사일을 전부 기계가 해주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설령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도 아이 돌보기를 온전히 로봇에게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사람이 사는 세상은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

요즘은 IT기기가 매우 발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같으면 개인이 꿈고 꾸지 못할 성능의 장비를 갖출 수 있다. 또한 개인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컨텐츠 유통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유튜브 영상 한번 올려서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과 트윗글 하나가 세계의 어떤 언론사보다 앞선 특종이 되기도 한다.

좋은 성능의 기기가 대중화된다. 그리고 컨텐츠의 유포가 매우 쉽고 빨라진다. 이것이 초래한 결과는 명백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유래없는 풍부한 컨텐츠에 둘러싸여 있다. 블로그와 유튜브, 앱스토어와 앱마켓을 통해 올라오는 컨텐츠는 평생 소비해도 부족할 정도이다. 오히려 시간이 없다보니 어느 것이 더 좋은 컨텐츠인가를 골라주는 서비스까지 나올 정도이다. 소비자는 선택을 고민하고, 생산자는 단기간에 컨텐츠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방법을 고민한다.



문제는 기기-기계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가장 극적이고도 쉬운 예로 사진을 들어보자. 사진은 카메라를 이용해서 사람이 찍는다. 빛을 이용한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사진은 사진예술이라는 말 그대로 예술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폰카를 이용한 셀카처럼 가장 쉬운 기록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기자들에게는 순간을 포착해서 빨리 선보이는 보도수단이다.

이렇게 특성이 다르지만 모두의 주요한 관심사는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좋은 사진이란 보는 사람의 관심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컨텐츠이다. 그런데 사진은 그 특성이 그림과는 약간 다르다. 카메라와 렌즈라는 기계가 빛을 이용해서 그려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하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눌러주는 수고밖에 없다. 이런 특성은 결국 좋은 사진이란 좋은(비싼) 장비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형성하기 쉽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비싼 카메라는 그만큼 크고 좋은 촬상센서를 쓴다. 초점을 보다 빨리 정확하게 잡으며, 이미지를 처리하는 칩도 전문가들이 수많은 연구한 결과물을 적용한다. 사람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요소가 점점 적어지고, 자동모드라는 것이 발달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도 그냥 셔터만 누르면 최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야만 카메라 회사들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인 카메라와 결합되는 아날로그 기술인 렌즈는 이보다 더하다. 칼짜이스나 라이카를 비롯해서 전통있는 독일 렌즈는 최고의 선예도와 왜곡없는 특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의 비싼 프리미엄급 렌즈도 밝은 조리개값과 손떨림 방지기능 등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마치 이런 비싼 렌즈만 사서 카메라에 달면 누구나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 예술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비싼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일까?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컨텐츠에 사람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어떻게 찍었느냐 보다는 무엇을 언제 찍었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결과물 자체가 돈만 들이면 평준화될 수 있다보니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차별성으로 부각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른바 한국의 국민DSLR이라 일컬어지는 캐논의 카메라 5D 마크2는 너무도 대중화되어 있다. 본래 사진작가나 기자들이 쓰라고 만든 기기인데 결과물이 너무 잘 나오다 보니 다소 비싼 가격임에도 단시간에 좋은 결과물을 내야하는 블로거들에게도 많이 쓰인다. 여기에 인물사진에 최고라는 줌렌즈 24-70 L렌즈를 장착한 조합은 일명 ‘국민 카메라’ 조합이다. 이렇게만 구성하면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그냥 자동모드로 놓고 셔텨만 눌러서도 그럴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생각해보자. 어떤 대상을 놓고 소비자가 컨텐츠 생산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개성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조합을 가지면 너무 좋은 카메라 성능에 의해 열이면 열 모두 똑같은 느낌의 사진이 나온다. 그건 평균적으로 보기좋을 지 몰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야 뭐하러 열 명의 컨텐츠를 일일히 보겠는가? 두 세개만 봐도 질릴 뿐인데 말이다.

좋은 컨텐츠는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진도 찍는 사람이 만든다. 좋은 카메라는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카메라가 중요한 이유는 자동으로 좋은 사진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사진술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의도한 바를 더 정확히 반영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찍는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일제히 크고 비싸고 무거운 장비를 힘겹게 짊어지고는 자동사진만 찍는 광경은 코미디에 가깝다. 그 자체는 개인의 자유지만 결과적으로 자원의 낭비와 몰개성적인 컨텐츠의 양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좋은 컨텐츠는 기계가 아닌 사람만이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진은 카메라나 렌즈가 아닌 찍는 사람의 정성과 마음이 만들 수 있다. 누구나 돈만 치르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차별성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IT기기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도리어 원점인 사람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사진을 통해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그 장비에 들인 돈이 아니라 찍는 사람이 주장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새로 발매된 캐논 제품과 니콘 제품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성능이 좋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과연 무엇을 어떻게 찍을까 하는 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