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매우 내성적이었다. 모범적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엄격한 교육 탓에 하고 싶은 말도 행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내면에 쌓인 슬픔과 분노를 배출할 곳이 너무도 간절히 필요했다. 이때 당연히 눈을 돌린 것은 매일 글을 써서 올릴 일기장이었다.


당연히 내 일기장에는 남에게 말못할 사적인 감정과 진심이 담겼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정말 싫었던 것이 학교의 일기장 검사였다. 아이의 인성을 돌보고 교육에 참고로 한다는 학교와 교사의 목적이야 어쨌든, 사적인 일기까지 검사당하는 나로서는 감시자가 내 마지막 영역까지 파고드는 불쾌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공부하기 싫다는 말이나 나를 때린 특정 교사가 싫다는 말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당연히 그 일기는 일기가 아니고 그냥 보이기 위한 보고서가 되어버렸다.


초등학교를 지나서는 이번엔 부모님이 내 일기를 보기 시작했다. 나름 나를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마찬가지로 그게 몹시 싫었다. 때문에 나는 일기를 나만 알 수 있는 암호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기가 더이상 일기가 아니라 숫자와 기호로 덮인 간첩들이나 쓸 난수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현대에 있어 SNS-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단지 자기를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한 작은 무대일 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관심가져줄 수록 좋은 그런 곳 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친한 사람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사적인 감정과 의견, 양심적 고백을 할 수 있는 개인적 친목 공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SNS공간은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특성상 이런 점을 개인보다 강자인 기업이 활용하려는 시도가 잇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취업을 앞둔 사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SNS를 들여다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출처)


기업이 구직자의 SNS 기록을 들여다보는 게 정당한지는 다른 나라에서도 논란 거리입니다. 독일 정부는 기업이 구직자의 사생활 조사목적으로 페이스북 친구로 등록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또 다릅니다. 본인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SNS 기록을 채용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업체까지 성업중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별다른 규정이 마련돼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SNS를 꼼꼼히 살펴보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SNS에 올린 글 때문에 한 가수는 그룹에서 탈퇴했고, 한 판사는 재임용에서 탈락했습니다 일상생활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윤진/대학생 : (사귀기 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읽어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나랑 비슷하구나 이런 것도 알게 됐었고요. ]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SNS를 통해 지원자의 관심사, 성격 등을 꼼꼼하게 따져봅니다. 한 취업 사이트 조사 결과 SNS를 통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으면, 인사 담당자의 53.3%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습니다.


[정재훈/인크루트 홍보팀장 : 자기의 평판이나 직무 전문성, 비즈니스 정체성을 SNS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노출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젊은 시절 SNS에 어리석은 글과 사진을 올리면 미래에 족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트위터는 사실 이젠 완벽한 개인적 공간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트위터를 통해 스타가 된 소설가 이외수를 비롯해 많은 연예인들이 트위터를 홍보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이 모두가 트위터를 공적인 홍보수단으로만 인식하는 건 아니다. 특히 페이스북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기업의 SNS 검열, 양심의 자유는 어디에?


기업은 물론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사원에 대해서 그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만 가지고 믿기에는 그가 회사기밀을 유출할 지, 혹시나 내부고발을 해서 발칵 뒤집어 놓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평소에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으며 이 회사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공적인 면접이 아닌, 사적인 SNS공간을 일기검열처럼 헤집어 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 개인에게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되어 있다. 우리는 설령 마음속으로는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기업에 때로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들어가 일해야 할 경우를 맞이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그 기업에 도움이 안되고 해를 끼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애사심이 넘치다못해 끓어오르는 사람이 기업에 반드시 도움만 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사람의 생각은 바뀌기 쉬우며 행동과 달리 개인의 양심은 자유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특정 기업이 싫더라도 그 기업의 판촉활동을 맡아서 할 수도 있다. 특정 정치가가 마음에 안들더라도 그 정치가가 속한 행정기관의 명령을 받아서 수행할 수도 있다.


기업의 SNS검열은 이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양심의 자유를 SNS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앞으로 SNS에는 마치 가장무도회처럼 기업에 대해서는 다들 좋게만 말하고 화기애애하게 웃는 글만 남을 것 같다. 어떤 방송국 사장이 물의를 일으키든, 기업CEO 탈세를 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다면 더이상 SNS에서 우리가 무슨 인간적 따스함이나 진솔함을 느낄 수 있을까. 문득 일기장을 검열받는 내 어린시절의 모습이 겹치며 씁쓸해진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것이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보장해주는 건 아닌가보다.





P.S : 요 며칠 동안 감기로 자리에 누웠네요. 독자 여러분들도 환절기 건강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