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짐캐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단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빌었던 아들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날부터 진실만을 말하게 된 짐캐리는 과연 더 착한 사람이 되었고, 아들은 소원을 이루어서 행복해졌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아니었다. 어른인 짐캐리는 때로 고객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질 소송을 이긴다고 말해야했고, 여자의 기분을 위해 못생긴 여자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야 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진실만을 말하게 된 짐캐리는 완전히 사고뭉치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현재 우리 모두가 직면한 삶의 문제일 수도 있다. 또한 누구라도 예외가 아닌 인간사회의 슬픈 한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악의가 없이도 거짓을 말해야하고, 진정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 그것을 한꺼풀 포장한 다른 진실을 내놓아야 한다.

애플의 최근 신제품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아쉬워한 점이 있다. 아이폰 4S를 비롯해 이번의 뉴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이 거의 바뀌지 않은 점이다. 분명 성능이 좋아지고, 운영체제가 바뀌었으며, 기능이 추가됐다. 그럼에도 디자인은 예전 제품 디자인에 불과했다. 애플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을 샀음에도 멀리서 봐서는 기존 제품과 똑같이 생겼으니 구별이 안간다고 가볍게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런 때문일까. 최근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가 인터뷰를 통해 흥미로운 말을 했다. 우선 그것을 보자. (클리앙 최완기님 번역 : 원문출처)

애플 조나단 아이브는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다른 업체들보다 나은 이유를 말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 인터뷰 중 가장 흥미있는 3가지 질문과 답변을 소개했다.
 
Q: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 세우는 목표들은?
A: 우리의 목표들은 아주 간단하다. 더 나은 제품들을 디자인 하고 만드는 것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만들 수 없다면, 우리는 만들지 않는다.
 
Q: 왜 애플의 경쟁업체들이 이를 행하는데 고전하는가?
A: 대부분의 경쟁업체들은 뭔가 다른 것을 만드는 것 혹은 새롭게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런 것들은 완전히 잘못된 목표들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은 진정으로 더 나아야만 한다. 이는 실질적인 훈련을 요구하고, 이것이 우리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은 어떤 것을 만드는 진정하고 순수한 욕구이다.
 
Q: 당신이 성공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A: 제품들에 나를 실제로 짜증나게 하는 것들 중 하나는 디자이너들이 내 안면에 그들의 꼬리들을 흔드는 것을 인식할 때이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물건들, 어떤 다른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물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일에 착수하고, 그 물건과 더 친밀해지며, 더 집중하라. 예를 들면, 새로운 iPad 용으로 우리가 만든 iPhoto 앱은 사용자들을 완전히 열중하게 하고, 그들이 iPad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잊게 만든다.
 


매우 중요하고도 핵심을 찌르는 질문과 대답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최근 조나단 아이브가 일하고 있는 애플제품의 디자인이 바뀌지 않은데 대한 대답도 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말한다. 새제품마다 일부러 새롭게 보이기 위해 디자인을 바꾸는 경쟁업체의 방식은 잘못되었다. 그는 디자이너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 과다한 겉보기 위주의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짜증이 난다고 밝혔다. 껍데기 뿐만 아니라 뉴아이패드 안의 아이포토 앱과 같은 것도 디자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추가했다.

좋은 말이다. 역시 애플의 수석디자이너답게 아이브는 디자인의 핵심을 제대로 말했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애플의 디자인이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이렇게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긴 여기까지만이라도 제대로 연관시켜 분석할 수 있다면 나름 좋은 평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날을 조금 더 세워보자.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때는 그 말과 함께 그를 둘러싼 전후사정과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서 유명한 위인이 한 말과 행동을 제대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뉴아이패드, 디자인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자, 여기서부터 반전이다. 그리고 IT평론가로서 내가 모두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화두이다. 과연 저 말을 한 조나단 아이브는 지금 애플에서 어떤 상황에 있는가? 자기를 저 위치까지 이끌어주었고 성공시켜주었던 스티브 잡스는 죽었다. 그리고 자기와 동급 내지는 아래에 가까웠던 물류관리자 팀쿡이 후계자가 되어 CEO가 되었다.

예전 내가 인용했던 뉴스에 의하면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의 CEO를 시켜주든지 아니면 회사를 나갈 뜻을 밝혔다. (애플, 잡스의 후계자로 워즈니악은 어떨까?)
그러나 지금 그는 CEO가 아니며 회사를 나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잡스 사후로 그가 디자인한 새로운 요소가 제품에 추가된 흔적도 없다. 하물며 이제는 발표회에 게스트로도 소개되지 않는다.

애플의 회사구조를 보자. 이전에 조나단 아이브는 오로지 CEO인 잡스 직계였다. 그것도 거의 동등한 위치로서 수시로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주고 받으며 자유롭게 일했다. 아무도 그에게 명령하지 못했다. 그와 잡스가 합의하면 곧 그것이 애플의 모두를 지휘하는 명령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가 팀쿡과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는 것 같은가? 그 전에 한번이라도 그가 팀쿡을 진정한 리더로서 인정한다는 말이라도 한 적이 있을까? 그의 존재감이 요즘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것에 동감하는가?

잡스가 죽은 후 아이폰은 4S로서 디자인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뉴아이패드도 심지어 새롭다는 '뉴'라는 단어까지 붙였음에도 모양과 색상까지 그대로였다. 다른 뉴스에서 한 애플관계자는 디자인이 바뀌지 않은 이유가 애플이 이제까지 출시한 악세사리를 구입한 사람에게 호환성을 주기 위한 배려라고 말했다. 이건 완벽한 헛소리다. 애플이 진정 혁신을 하려고 할 때 악세사리 호환성 따위를 한번이라도 고려해서 주춤거린 적이 있었던가?

잡스가 살아있을 때는 신제품을 어떻게든 새로운 디자인으로 선보이려 했다. 하다못해 화이트 버전이라도 새로 내놓았다. 그것은 항상 외관부터 새로움을 주며 소비자의 환호를 듣겠다는 잡스의 강한 의지였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색깔부터 디자인까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잡스가 살아서 지휘한다면 이러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IT평론가로서 과감한 예측을 해보겠다.

뉴아이패드의 디자인이 바뀌지 못한 이유는 팀쿡과 조나단 아이브가 아직 제대로된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데 있다. 팀쿡으로서는 잡스와 1대1 관계였던 아이브에게 갑자기 명령을 내리기가 거북할 것이다. 아이브 역시 얼마전까지 협의대상조차 아니었던 팀쿡에게 명령을 들을 기분이 아닐 것이다. 이 둘이 제대로 협력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는 회사를 나가야 할 것이다.



조나단 아이브의 저 인터뷰가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니다. 저것도 나름 진실이다. 하지만 저것은 좀더 구체적인 진실보다는 그저 원칙론이다. 인터뷰에 대놓고 회사의 불화를 노출시키지 못하겠으니 원칙론이란 포장된 진실로 깊은 진실을 덮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예측한다고 해서 내가 애플의 이런 불화가 깊어져 애플이 망하거나 잘 안되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애플이 이런 갈등을 극복하고 잘 되기를 바란다. 좋은 평론가의 비평이란 부모의 잔소리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애플의 지금 상황을 독자들이 제대로 직시하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은 천사만 사는 곳이 아니다. 팀쿡이든 조나단 아이브든 최고의 야심과 최고의 실력을 가졌지만 그저 사람이다. 감정적 충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고의 제품을 내놓겠다는 공통된 꿈이 있다. 이 둘이 결국 제대로 협력해서 더 좋은 디자인을 가진 제품을 소비자에게 내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