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참으로 변화가 많은 나라다. 짧은 시간동안 근대화와 고속성장을 경험한 탓인지는 몰라도 너무도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한다. 그 가운데는 좋은 작용도 많지만 때로는 바람직한 것이 어느새 흐지부지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반대로 역효과를 줄 만한 정책이 검토기간도 부족한 채로 집행되어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어쨌든 한국, 그리고 서울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바람직하든 아니든 말이다.



100일전, 그러니까 작년 서울시에는 중대한 변화 하나가 있었다. 무상급식 정책을 둘러싸고 오세훈 시장이 물러나고, 시민연대의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시장 한 명이 바뀐 미세한 변화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정책방향이 반대쪽이었던 이런 변화는 이후 서울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한 마디로 '개발' 이란 주제가 '복지'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한 서울시민들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은 특유의 소탈함과 행동력으로 하나씩 정책과제를 수행했다. 겨우 당선 100일인 시장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부동산정책과 복지정책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3일, 박원순 시장은 티엔엠의 주최로 블로거 30명과의 대화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나는 정치인들이 블로거나 SNS를 대하는 자세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선거때가 가까워지면 표를 얻기 위해서나 간간이 이용하려 할 뿐이다. 또한 간혹 만난다고 해도 그저 자기 말만 하거나 사진찍기에나 열중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은 과연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보수냐 진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블로거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정서까지 맞물려진 요즘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참석해 보기로 하고 신청했다. IT평론가로서 그래도 뭔가 서울시의 IT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할 질문으로서 '서울시의 공용 무료 와이파이 정책' 을 선택했다. 이것은 바로 내가 작년에 포스팅을 통해 제기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 서울시의 무료 와이파이 설치, 효율적인가?




중요한 건 여기에서 언급된 서울시 무료 와이파이가 말만 그럴 듯할 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이통사가 자사 가입자만을 상대로 제공하는 상용 서비스만 잡혔고 그마저도 끊김이 있거나 노선마다 지원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공공장소에서도 보안을 위해 닫힌 개별 사무실의 와이파이 신호는 잡혀도 서울시가 설치했다는 공용 무료 와이파이는 잡힌 적이 없다. 결국 이 뉴스는 그저 발표에 급급한 전시행정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시장과의 대화는 방송을 통해 중계되었다. 또한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자리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박원순 시장은 2시간 가까운 시간을 오로지 질문과 대답을 위해 전부 쏟았다. 애써서 시정 홍보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자기 자랑을 하지도 않았다. 많이 듣고 비교적 시원하게 대답했다. 때문에 나도 비교적 편하게 질문을 할 수 있었다.

Q: IT 블로거로서 공공 인터넷망 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최소한의 인터넷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 무료 와이파이망 확충과 유지에 대한 시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전임 시장때 이미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지금 실제로 전혀 체감될 정도로 시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내 질문이었다. 사실 질문이라기 보다는 이런 것도 잊지 말고 추진해달라는 요청에 가까웠다. 무상급식과 여러 복지도 중요하지만 공공 와이파이망도 복지, 재난 인프라 정책의 일환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부연 설명하자면 지난 일본의 대지진 때 휴대전화망이 마비된 상태에서 와이파이망과 인터넷 망이 부분적으로 연결되면서 재해상황 전파와 구조요청에 유용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서울시가 저런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A: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제 공약사항입니다. 공공 와이파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답변이 돌아왔지만 불만은 없었다. 복지를 내세운 시장으로서 혹시나 와이파이망을 단지 개발 차원의 인프라로 생각하지는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미 공약사항이며 반드시 지켜나가겠다면 당분간 믿고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설명을 추가하고자 한다.



서울시 공용 와이파이 정책, 필요한 이유는?

현재 이동통신사와 각 회사, 개인이 설치해서 쓰는 와이파이망은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가입자나 회사원, 주인이 아니면 쓰는 자체가 불법이다. 그런데 와이파이망은 그 특성상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지나치게 많이 중복 설치된다. 반대로 사람이 한적한 곳에는 거의 설치 자체가 안된다. 그런데 와이파이 신호는 전파이기에 많은 신호가 집중적으로 몰리면 오히려 간섭현상으로 인해 접속이 불안정하고 전송속도가 느려진다. 



공용 와이파이 정책은 이런 망을 정리하고 평탄화시켜야 하는 '정책'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나치게 밀집된 지역에는 공용망을 하나 두고 나머지 중복설치를 최대한 억제하거나 이미 설치된 망의 개방화를 유도한다. 반대로 필요하지만 모두가 기피하는 곳에는 시에서 직접 공용망을 설치한다. 이렇게 해서 재난시나 긴급접속, 외국인 단기 관광객 등에게 적당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이 말로만 인터넷 선진국이라고 하는 건 쉽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작지만 내실 있는 정책을 통해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제 취임 100일째를 맞은 박원순 시장의 약속과 서울시의 다이내믹한 행동력을 믿고 기대해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