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카세트테이프를 기억하는가? 두개의 릴 사이에 갈색의 자성테이프가 감겨서 돌아가는 그것 말이다. 아마도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그때는 마치 CD나 DVD몫지 않게 대중화되었던 물건이다.



아날로그 방식인데다가 음질도 지금 기준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카세트테이프는 그 시절 첨단 미디어였다. 이것을 통해 음악을 듣고 녹음할 수 있었으며 각종 방송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없었기에 카세트는 좋은 정보전달과 확산수단이기도 했다.

8비트 시대를 기억할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치는 바로 이 카세트테이프다. 왜냐하면 당시 초기 컴퓨터가 보조기억장치로 이 카세트테이프를 썼기 때문이다. MSX는 외부의 카세트레코더부터 선으로 컴퓨터에 연결했다. 삼성에서 내놓은 SPC 시리즈는 아예 전용 카세트가 옆에 장착되어 출시되었다.




당시 학교 컴퓨터 실습실에는 이런 보조기억장치마저 없는 컴퓨터가 많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잡지 등에 프린트된 베이직 명령어를 그때마다 긴시간을 들여 타이핑했다. 그렇게 한시간 남짓 열심히 입력하고 나면 잠시후 간단한 게임이나 그래픽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게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기억장치가 없었기에 안에 있는 디램은 전원이 꺼지고 나면 더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나면 다른 학생들은 똑같은 게임을 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키보드를 두들겨야 했다.
 
그나마 카세트가 준비된 컴퓨터는 매우 편리한 기기였다. 미리 입력된 카세트테이프 하나만 있으면 키보드를 치지 않아도 되고 보다 복잡하고 긴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입력할 수 있다. 그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카세트 역시 그렇게 뛰어난 장치는 아니었다. 아날로그 소리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라서 신뢰성에 문제가 있었다. 정확하게 녹음, 혹은 복사가 되지 않은 카세트는 종종 로딩에 실패했다. 정확히 녹음이 되어도 이것을 읽는 카세트에서 헤드를 맞춰주지 않으면 역시 에러를 발생했다. 나중에 플로피디스크라는 장치로 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카세트는 몇 가지 점에서 지금 생각해 보아도 흥미있다.

1) 카세트라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종래에 있던 가전기기를 컴퓨터와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컴퓨터라는 전혀 생소한 장치가 오히려 보다 큰 범위에서 종래의 가전제품을 포괄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당시에는 컴퓨터의 디스플레이장치로 가정용 텔레비전도 널리 쓰였다. 전용 모니터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되서 좋고, 모니터가 별도로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이때 티비는 이미 가정에 충분하게 1대씩 보급되었다.

2) 심지어 인터넷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국제간에 무선통신을 즐길 수 있는 햄(HAM)-아마추어 사설 무선 통신을 모뎀에 연결해서 나라안은 물론 나라를 넘어서 데이터를 주고 받자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이 싸고 저렴해진 지금은 그다지 관심이 덜하겠지만 발전적으로 생각해볼 만 하다.

결국 중요한 핵심은 하나다. 8비트의 초창기에는 컴퓨터의 가능성에 사람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생각했다. 거기에는 컴퓨터가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는 가전제품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해 연결하고 활용하려고 했다.



컴퓨터는 왜 가전제품과 연결할 수 없는가?

지금에 와서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이것이다. 오히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전성기를 맞이한 지금에 와서는 이런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시도가 별로 없는 것이다. 특히 가전제품과 컴퓨터,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등에 대해 예전만큼의 도전적인 시도가 없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우리 주위에 깔려있는 가전제품을 보자. 인터넷에 연결되는 콘솔 게임기, HDMI단자를 갖춘 텔레비전, 액정화면이 달렸다는 냉장고, 지능형이라고 광고하는 세탁기 등등 너무도 많다. 그런데 이런 모든 기기에 표준적인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칩 하나만 넣어주고 그걸 컴퓨터나 스마트폰, 태블릿과 연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아니다. 이건 단지 발상의 문제다. 운영체제도 기능이 충분하고, 가전제품도 무슨 전력이 모자라거나 기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단지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이 옛날 8비트 시절에 비해 빈곤해졌기 때문이다. 

애플이 그나마 애플티비 등으로 자사 기기에 대해 포괄적인 연결을 제공하려고 하고는 있다. 그러나 소니라든가 삼성, LG등이 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성공적으로 할 수있다. 이들은 컴퓨터와 가전제품 둘 다를 포괄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보다 강점을 가진다.


주위에 있는 가전제품을 컴퓨터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라. 이미 시대에 밀려 사라진 카세트가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보다 많은 상상력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형태로 남은 카세트는 곧이어 다른 장치에 밀려났지만 그런 정신만은 여전히 가치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옛날 잡지속 카세트를 보면서 나는 그 속에 우리가 나아갈 미래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