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월드컵을 잠시 떠올려보자.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공통분모인 축구, 게다가 개최국인 한국 국가대표팀의 분투, 최초의 4강 진출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극적인 사건에 한국은 나라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그런데 축제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기묘한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작은 목소리에 불과하던 그것은 곧 제법 커져서 인터넷상에서 논쟁거리가 되었다. '당신이 열광하는 월드컵 축구, 그 뒤에서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착취당하는 제3세계의 어린이들이 있다는 걸 아느냐?' 라고 제기하는 주장이었다. 

주장 자체는 분명 맞는 말이었다. 축구공 하나를 만들기 위해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어린이 노동은 분명 시정되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제기된 시점과 함께 사람들이 보내는 냉소였다. 당장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꼭 이 시점에서 그렇게 찬물을 끼얹어야 하겠냐는 것이다. 반대로 오히려 이럴 때에 제기해야 사람들이 주목할 것 아니냐는 반론까지 섞였다.

며칠 전, 애플의 제품, 그 가운데 아이폰에 얽힌 비화 하나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다시 나에게 월드컵때의 논란을 상기시켰다. 우선 뉴스를 보자. (출처)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2007년 아이폰 출시를 한달 가량 앞두고 시제품을 써보던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을 불러 불호령을 내렸다. 잡스가 청바지 주머니에서 열쇠와 함께 꺼낸 아이폰의 플라스틱 화면엔 열쇠에 긁힌 흠집이 선명했다. 잡스는 “난 흠집나는 제품은 안판다”며 “유리 화면으로 설계를 바꿀 것, 6주 안에 완벽하게”라고 요구했다. 

애플 임원은 잡스의 지시 직후 중국 선전으로 날아갔다. 잡스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킬 곳은 그곳뿐이었다. 애플은 코닝을 유리부품 공급사로 이미 선택해놓은 상태였지만, 양산에 필요한 공간과 테스트, 중간 숙련도의 기술진 등의 조건을 코닝이 만족시킬 수 없었다. 애플 임원이 만난 중국 업체는 이미 새 건물을 짓고 있었고, 테스트에 필요한 샘플과 기술진을 거의 공짜로 쓰게 해줬다. 이 업체는 공장 기숙사가 있어 24시간 아무때나 작업을 시킬 수도 있었다. 애플은 이 회사와 계약했다.

애플 기술진이 한달여 실험 끝에 아이폰용 강화유리 절단기술을 개발해낸 2007년 중반, 강화유리 부품이 트럭에 실려 8시간 거리에 있는 폭스콘 공장에 도착했다. 자정 무렵이었지만 관리자들은 기숙사 직원 8000여명을 깨워 과자 한조각과 음료만을 제공하고 30분의 준비시간 뒤에 곧바로 작업에 투입했다. 96시간 만에 공장은 하루 1만대의 아이폰을 생산하게 됐고, 애플은 석달 동안 100만대의 아이폰을 판매할 수 있었다.

이 일화를 밝힌 애플 전 임원은 “빠르기와 유연성이 놀라울 정도였다”며 “미국엔 이에 맞설 수 있는 공장이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실리콘밸리에서 정보기술업계의 주요 인사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잡스에게 “왜 아이폰이 미국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지”를 물었다. 당시 잡스는 “그런 일자리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저함 없이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단지 낮은 인건비 때문이 아니라, 공장의 빠른 속도와 유연성, 노동자들의 숙련도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서기 때문이라는 게 애플 경영진의 견해다.

 지난해 애플의 매출은 1080억달러로, 미시건, 뉴저지, 매사추세츠 3개주의 예산 총액을 넘어설 정도였지만, 제조의 국외 의존으로 인해 국내 고용 유발효과가 매우 낮다. 이런 추세로 미국에선 갈수록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자동차 제조에서 1000개의 일자리는 4712개의 연관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내지만, 1000개의 병원 일자리는 672개를 만들 뿐이다. 물류, 창고, 부품 제조 등 연관 일자리가 줄어들고, 결국은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게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음미할 만한 기사라서 조금 길게 소개했다. 이 기사는 미국 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한국에도 많은 의미를 전해준다.



결국 애플이 왜 아이폰 생산에 미국의 노동인력을 쓰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강도높고 순발력있는 노동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런 노동을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국가 노동자들은 기꺼이 감내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애플 임원이 말한 일화를 보자. 아무리 저런 경우가 제품출시를 얼마 안남긴 비상시라고 해도 선진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노조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노동조건에 대한 국가의 규제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시키면 즉시 실행하는 애플의 IT인력은 마찬가지로 시키면 즉시 수천의 노동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언제라도 움직여주길 원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애플의 제품과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렇게 했다가는 비인간적인 대우라고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엄청난 특별수당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둘다 애플이 감내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항이다.

 
아이폰이 나타낸 선진국의 고민은?

그렇다고 미국같은 선진국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애플이 원하는 노동조건을 만들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국민소득이 수만달러에 달하는 모든 나라의 국민이 마찬가지다. 그런 나라 국민들은 이미 삶의 질을 따지는 수준이다. 기숙사에 몇천명이 모여서 살고, 자다가도 새벽에 일어나서 간식만 먹고는 바로 작업에 들어다가니. 수용소 강제노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저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작업 조건이 가능한 나라를 이미 알고 있다.

중국이나 태국, 혹은 인도 같은 저개발국에서 저런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그런 나라들이 인권탄압에 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사회여건과 소득수준이 기꺼이 저런 노동이라도 하면서 월급을 받는 것이 삶의 질을 올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혹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저런 노동조건은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방향이 된다. 그러니까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순이 드러난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국민들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 글로벌 기업이 원하는 공장의 노동조건은 점점 선진국에는 맞지 않게 삶의 질을 하락하는 방향으로 효율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후진국에서는 반대로 그런 노동조건이라도 일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월급으로 인해 삶의 질이 향상된다. 따라서 양쪽의 이익이 맞기에 어쩔 수 없이 선진국은 후진국 공장에 생산을 위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위의 아이폰 일화가 나타내는 선진국의 고민이다. 의욕이 넘치는 오바마 대통령도, 무엇이든 극복해내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단순한 남의 일이 아니다. 선진국에 들어온 한국도 어쩌면 곧 겪어야 할 일인지 모른다. 얼마전 있었던 삼성의 중국공장 설립과 관련해서 한번 잘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