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잘 아는 어떤 작가 한 분과 가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의견이 엇갈릴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나는 몇 가지 최근 소식을 말하며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있어요.’ 라든가 ‘ 사람들이 점점 돈 만을 중시하고 있어요.’ 라고 푸념한다. 하지만 그 분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원래부터 그랬어요. 최근이라고 더 나빠진 게 아닙니다.’ 라고.


그렇다면 내가 쓸데없이 얼마되지 않는 10년이나 20년 정도의 과거에 대해서 너무 환상을 가지고 있는 셈일까? 진실은 아마도 그 분의 말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가벼운 뉴스 하나에도 한숨이 나오는 걸 억누를 수 없다.

한국사람이라면 대충 잘 아는 이마트에서 가전제품을 빌려주는 렌탈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소식이 오늘 일제히 뉴스를 통해 전파되었다. (출처)


유통가의 가격 파괴 혁명을 주창해온 이마트가 업계에서 처음으로 TV, 냉장고 등 대형 생활가전제품 렌탈서비스를 시작한다.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초기 부담금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월 분납금이 많아 제품의 원래 판매가격보다 렌탈 뒤 구입가격이 30% 이상 비싼데다, 제조업체가 제공하는 사후 서비스 외에 별도의 관리 서비스가 없으며, 제품을 중간에 반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고금리 장기할부판매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3년 렌탈'은 연리 11.5%, '4년 렌탈'은 연리 12.4%로 제품을 구매하는 꼴이다.

이에 대해 이마트의 한 관계자는 "가전 렌탈은 고가의 대형 생활가전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춤으로써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라며 "렌탈사가 보험에 가입돼 있어서 도난이나 화재 등에 대한 보장이 되고 AS도 계약기간동안 무료로 제공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단지 서비스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나름 균형있는 비평을 전하려 했다. 즉 이 렌탈서비스가 금융비용에 비해서 지나치게 비싼 월 할부금 때문에 사실은 고금리 장기할부 구매라는 것이다.  이름만 좋게 포장했을 뿐이란 지적은 분명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기사와 해석이 가지는 짧은 시선에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이마트 가전제품 렌탈, 안타까운 점은?

기업에서 서비스나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 서비스가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 상당히 비싸다는 모를 거라고 생각할 리 없다. 이마트가 무슨 노인에게 공짜 효도관광을 시켜주고 물품을 파는 보따리 장사꾼은 아니다. 또한 이마트와 각종 할인마트를 유심히 보는 언론과 소비자가 다소 정밀한 계산능력이 모자란 노인과 똑같지 않다. 서비스를 내놓아도 반응이 적을 거라고 예상했다면 이마트측이 이런 서비스를 내놓을 리가 없다.

문제는 지금 할인마트의 가전제품을 살 수 있는 한국 중산층과 서민들의 구매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모두가 부동산에 물려있는 빚과 늘지 않는 수입, 언제 잘릴 지 모를 비정규직, 오르는 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가전제품을 원하지만 일시불로 살 능력조차 없어진 것이다. 정상적인 카드 할부구매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 서비스는 카드 무이자할부조차도 선뜻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마트측이 금융사 역할까지 해줘가며 제공하는 구입서비스다. 분명 이 서비스는 직접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3년 동안 그 제품이 구형이 되어 다시 낮아질 가격까지 생각하면 더욱 비싼 셈이다.

하지만 마치 고가 스마트폰을 할부로 사듯 당장의 목돈을 낼 능력이 없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지갑을 어떻게든 열어야 그나마 매출증가를 달성할 수 있기에 내놓은 서비스다. 경기가 좋거나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나올수 없는 서비스다. 



내가 아쉬워 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단지 빌려쓸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가 나왔다는 칭찬이나, 금리가 너무 높다는 비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서비스까지 등장해야 할 정도로 힘들어진 한국 서민층의 지금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 과연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