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서 한국이 확실히 얻은 교훈 하나가 있다.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외부 변화에 대해 문을 닫아걸어봐야 그것이 오히려 더 비참한 파국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 사회를 막론하고 논란중에 ‘쇄국정책을 하자는 것이냐?’고 말하면 상대방은 그건 아니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쇄국정책이란 한국에서 전혀 좋은 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이 쇄국정책이 역사적으로 봐서 틀린 방향이었을 망정, 그 당시를 살아가는 조선의 정치인과 백성들에게는 당위성도 있었고 환영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외국에 문을 연다는 게 반드시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당시 열강이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러시아와 일본까지 관통하는 목적은 오로지 식민지 획득을 통한 착취와 경제이익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엘지의 휴대폰에 얽힌 뉴스가 하나 나왔다. 사실 엘지의 요즘 행보로 봐서 좋은 뉴스를 가지고 희망찬 전망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도 약간 무거운 분석으로 갈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우선 뉴스를 보자. (출처)

엘지(LG)전자가 임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다른 업체에서 만든 휴대전화를 갖고는 건물을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보안지침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엘지전자는 최근 휴대전화를 만드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 소속의 모든 직원에게 다른 회사 휴대전화의 사업장 반입을 금지하는 알림을 보냈다. 엘지전자가 ‘정보보안제도 변경’이라는 취지로 소개한 이 내용은 내년 1월2일부터 다른 회사 휴대전화의 사업장 반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오는 31일까지 홍보기간 동안 해당 직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엘지전자 휴대전화로 모두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는 12월 12일부터 기존의 휴대전화 보안용 홀로그램 스티커를 새로 발급하는데, 이를 엘지전자 휴대전화에만 부착시켜준다. 내년부터 이 홀로그램이 붙어 있지 않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출입이 금지되는 강제적 방식이다.

엘지전자 쪽은 “휴대전화를 개발하는 사업장에서 구성원 스스로가 우리 제품을 애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주니어보드와 노동조합 등 각계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다른 회사 휴대전화의 사내 반입 제한 필요성이 확인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예외는 3개월 미만의 상주 협력업체 직원과 개발·테스트 용도의 휴대전화뿐이다.

그러나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무조건 엘지 휴대전화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것은 지나친 조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엘지전자의 한 협력업체 직원은 “지난달 값비싼 스마트폰을 구입했는데 회사 출입을 위해서 또다시 고가의 스마트폰을 구입해야 할 상황”이라며 “자사 제품을 애용하자는 캠페인이 자발성을 넘어 강제화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것은 말이 ‘보안지침’ 이지, 사실은 ‘우리 제품만 써.’ 라는 자사제품 강제규정에 불과하다. 엘지 제품이 특별히 보안에 강하거나 그런 솔루션을 탑재한 것도 아니고, 타사 제품이 보안에 약하거나 해킹앱이 많은 것도 아니다. 보안이라는 건 그냥 핑계다. 그냥 엘지란 대기업 직원들에게 ‘회사를 사랑한다면 엘지 휴대폰을 써라. 우리가 써야 사람들이 엘지 휴대폰을 쓰지 않겠냐?’ 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해보자. 이것은 비단 엘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같으면 자사 차가 아니면 주차장에 차를 세워주지 않는 예도 있고, 삼성같은 경우도 비슷한 예가 있다고 한다. 또한 외국 기업에서도 강제는 아니지만 은근히 권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뉴스를 가지고 엘지가 엄청나게 독단적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보안지침은 몇 가지 측면에서 진한 안타까움을 남긴다. 

LG 휴대폰 보안지침, 안타까운 이유는?


우선 엘지의 현재 입지로 봐서 이런 말을 하기가 애매한 것을 우선 들 수 있다. 엘지에서 내놓은 스마트폰이 비록 현재 LTE를 맞아 제법 좋아졌고, 운영체제 지원도 약간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엘지는 우선 스마트폰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을 위주로 크게 돋보이는 단말기가 없다. 얼마전 플래그쉽 전략을 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히 최고급 주력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단말기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보안지침을 기간유예없이 내리면 당장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아마도 엘지직원들에게 이것은 단말기를 두 개 가지고 다니라는 의미로 들릴 것이다. 회사에서 쓰는 공적 휴대폰과 자기가 쓰고 싶은 사적 휴대폰 말이다. 선택의 여지가 너무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양분화를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엘지 휴대폰 매출이 반짝 올라갈 지는 몰라도 소셜네트워크 도구로서의 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쓰라니까 쓰는 휴대폰으로 무슨 SNS나 적극적인 소셜 서비스를 가입해서 쓰겠는가?
 


두번째로 자신감의 문제다. 엘지 스마트폰 전략이 근래 간신히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1년 정도만 더 노력하면 예전의 입지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 그때쯤 되어서 이런 보안지침이 나왔다면 아마도 그렇게 큰 반발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단말기에 자신감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엘지 단말기는 자신있게 선택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편이다.

이번 조치가 어쩐지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연상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아직 능력이 부족하고 개방이 필요할 때 문을 닫아걸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쇄국이 된다. 반면 힘을 상당히 키운 다음에 문을 닫는 것은 예전 대영제국이 했던 ‘영광스러운 고립’이 될 수도 있다. 긍정적인 효과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엘지의 이번 보안지침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지난 아쉬움은 이것이다. 한 1년 정도만 더 착실히 힘을 키우고 좋은 스마트폰을 내놓은 후에 이런 조치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엘지가 자사 스마트폰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좋은 평가도 어느 정도 따르지 않았을까. 부디 이번 조치가 구한말의 쇄국정책처럼 엘지 휴대폰의 발전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