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라고 하면 보통은 정확한 과학적 사실만 말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현상과 실험결과를 통해서 특정한 법칙과 원인이 유추되지만 그럼에도 증명을 위한 연결고리가 부족하고, 틀릴 가능성도 상당한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과학자들은 ‘가설’이란 것을 제기한다. 근거는 있지만 완벽히 정확하지는 않다. 한번 제시해 보니까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삼성과 애플의 다소 지루한 특허전쟁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한동안 애플의 운영체제와 UI관련 특허가 배타적 권리로서 가처분 소송에서 보다 존중되었다. 독일과 네덜란드, 호주 법원에서 갤럭시탭  판매금지 가처분 판결이 나왔다. 또한 삼성이 3G통신기술 특허를 가지고 제기한 애플제품의 판매금지 신청이 네덜란드 법원에서 기각된바 있다. 여기까지는 삼성의 패배였다.


그런데 갑자기 흐름이 좀 바뀌는 판결이 나왔다. 막상 애플의 본국인 미국 법정에서 삼성의 갤럭시탭, 갤럭시 스마트폰의 판매금지가 기각된 것이다. (출처)

12월 3일 삼성전자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지방법원은 애플이 신청한 '갤럭시탭' 및 '갤럭시S' 등 삼성전자 태블릿PC와 스마트폰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을 기각했다.



삼성전자는 애플 안방인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애플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디자인 특허에서 승리했다. 애플이 삼성전자가 자사의 디자인 특허 3가지와 사용자환경(UI) 특허 1가지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애플이 디자인 특허의 유효성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루시 고 판사는 지난 10월 심리에서 "애플의 특허가 유효하다고 주장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학술지에 기술된 논문에서도 "1994년 나이트 리더가 만든 태블릿 원형이 아이패드의 특허를 무효화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도 디자인 특허에서 법원이 삼성전자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카피캣'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특히 삼성전자는 내년에 있을 본안 소송에서의 승리를 자신했다. 삼성전자는 관계자는 "본안소송에서도 삼성모바일 제품의 독창성을 충분히 증명해보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것만으로 봐서는 그다지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이전에 내가 언급한 특허전문가 플로리언 뮬러도 예측한 바 있다. 독일법원은 일반적으로 특허 소지자에 호의적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을 거다. 또한 미국에서 디자인 관련 특허는 인정받기 힘들 거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애플의 디자인이 아닌 UI관련 특허마저 가처분 소송에서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일까? 나는 갑자기 몇 개월 사이에 분위기가 바뀐 듯한 이 부분을 분석해보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애플 패배! 삼성 승리!‘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뒷편에 숨겨진 흐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법원판결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판결이다. 법정은 결코 자판기가 아니다. 그냥 누르면 법전 펼쳐서 판결을 음료수처럼 기계적으로 내주는 곳이 아니다. 전후사정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판결도 변할 수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좀 지난 다른 뉴스 하나를 더 소개한다. (출처)


애플이 갤럭시탭 10.1뿐 아니라 모토로라 '줌(XOOM)' 태블릿도 제동을 걸었다. 
 
美씨넷은 애플이 모토로라 줌 태블릿 디자인이 자사 아이패드를 베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에 제소했다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애플이 고소를 제기한 곳 역시 갤럭시탭 판매를 금지한 독일 뒤셀도르프 지방 법원으로 동일하다. 플로리안 뮐러 포스 페이턴트 운영자는 "모토로라 경우 제소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며 "갤럭시탭 10.1을 제소한 시기와 같거나 혹은 이전일 것"이라고 전했다. 
 
모토로라는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태블릿 외에도 스마트폰으로 애플과 특허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외신은 모토로라와 애플이 태블릿을 두고 충돌하는 일은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먼저 일어난 것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애플이 디자인 특허 침해로 고소한 것은 삼성만이 아니다. 보통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하던 모토로라의 줌 태블릿도 고소했다.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한 전면적인 파상공격이다. 최근에 나온 스티브 잡스 전기에 따르면 잡스는 구글을 배신자로서 증오하면서 멸망시키기 위해 애플에 남아있는 마지막 현금 한 푼까지도 쓰겠으며 핵무기까지 쓰겠노라고 말했다. 즉, 애플에게 있어서는 새로 출시된 거의 모든 태블릿이 아이패드의 복제품인 것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 흐름이 변한 이유는?

여기서 가설을 하나 제기해보자. 유럽과 미국의 법원이 애플에 호의적이고, 삼성의 특허에 그다지 힘을 실어주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위의 미국법원 판사도 재판 초기에 멀리서 아이패드와 갤럭시 탭을 나란히 들고는 삼성 변호사에게 구별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어느 정도 호의적이었단 이야기다.


그런데 이후 애플은 선을 넘었다. 한국 회사인 삼성뿐만 아니라 유럽의 신생 태블릿 업체 제품을 포함해서 미국 업체인 모토로라의 줌까지 디자인으로 판매금지 소송을 건 것이다. 이렇게 되자 사안은 단순히 애플의 고소에 응해서 삼성이 만든 제품 몇 개를 판매금지하는 수준이 아니게 변했다. 이제 막 차고에서 창의력을 펼쳐 보려는 유럽의 신생 태블릿 개발업체, 그리고 미국의 모토로라 같은 기업까지 휘말려 들 판이다. 애플이 주장하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면 단지 먼 아시아의 삼성 하나만 죽는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신규 경쟁업체 자체가 봉쇄당할 판이다.

결국 법원의 흐름은 여기서 바뀐 게 아닐까. 미국은 기본적으로 애플에 호의적이지만, 같은 미국 회사인 모토로라의 줌이 판매금지되면? 공포를 느낀 미국의 모든 업체가 태블릿을 만들 때 애플의 고소 걱정부터 해야 한다. 독과점 방지법을 만들 정도인 미국에게 있어 아이패드의 독과점이라는 것도 결코 좋은 게 아니다. 더구나 엄연한 미국 경쟁업체의 시장진입까지도 막는 게 애플이 되는 것이다.

유럽은 신생 업체의 차단이라는 공포 외에도 현실적으로 유럽법원에 모토로라를 고소했다는 점이 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당장 아이패드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을 소비자들이 사서 쓸 수 없다. 본심 판결은 몇년 뒤에 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다. 결국 애플의 무차별적인 고소가 법원에까지 지나친 경쟁업체 압박이라는 분위기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운영체제와 개성있는 UI 특허는 최대한 인정해주려는 움직임을 재고하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일단 내 가설이다. 말했듯이 이것은 중간에 연결고리가 하나 빠진 추론이다. 하지만 한번 제기해본다. 평론가로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처분 판결은 본안 심리와는 별개다. 아직은 멀고 긴 과정이 있고 중간에서 화해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흐름을 파악하는 건 나름대로 중요한 일이다. 다른 의견이 있는 독자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바라겠다. 함께 한번 생각해보자.

P.S 독자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한 해동안 제 블로그와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면 투표해주십시오. 이번 한해의 결산을 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자발적인 독자 여러분의 힘을 받아서 서고 싶습니다. 유권자의 투표참여가 민주주의를 만들듯, 여러분의 한표가 대한민국에 IT평론가란 영역을 만들수 있습니다. 참여해서 '니자드'에게 한 표를 클릭해주십시오.  ( 2011 다음뷰 어워드 IT 부문 투표 참여하기 )


  1. 독자 2011.12.04 10:41

    전 삼성이고 모토롤라건 관심은 없는데. 구글 안드로이드 이 카피캣은 망했으면 좋겠네요. 애플도 그다지 마음에 들진않지만 구글의 배끼기는 도가 지나친듯. 상식선상에서 생각해봤을때 내가 어떤 창의적인 제품 만들었을 때 구글이 이런식으로 배껴버리면 어떠한 마음이 들지

    • rlrprhdgkr 2011.12.04 11:28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어떤것을 베꼈다는 것이죠?
      애플은 그렇게 핵무기를 쓸정도로
      떳떳해서 상단바내리기 이번 Ios5부터
      베꼇나요?

    • Favicon of https://marke7.tistory.com BlogIcon 마르크7 2011.12.04 13:43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기게공학님
      http://v.daum.net/link/19852429?&CT=ER_POP
      이거만 봐도 아이패드 이후에 출시된 태블릿은
      카피캣을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http://v.daum.net/link/22345111?&CT=ER_POP
      그리고 안드로이드 초창기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아이폰 출시전인 스마트폰의 중심이던 블랙베리 OS와
      거의 흡사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든 개발자가 애플의
      개발자로 있다가 나와서 만든건 유명한 사실이죠

    • Favicon of https://catchrod.tistory.com BlogIcon IT평론가 니자드 2011.12.04 19:16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그러니까 베낀다는 의미의 표절과 참조한다는 정도의 경계를 가지고 양쪽의 의견이 달라서 지금 법정에서 싸우는 것이죠. 문제는 지금 어느 한쪽이 완전 떳떳한 입장은 아니라는 겁니다. 더구나 결정적인 건 이러다 양쪽이 악수하고 합의할 확률이 크다는 거죠. 소비자는 뭐가 되는지...;;

    • 레츠 2011.12.05 18:29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이 포스팅에서는 언급되징 않았지만...
      이번에 애플이 지게된건
      애플의 주장하는 특허의 독창성이 없다는
      즉 애플의 최초이고 독착적인 디자인이 아닌
      이전에 유사한 제품이 있어서
      애플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삼성의 주장을 법정에서 인정한것입니다.
      그러니 안드로이드가 카피캣이라는것 또한 그들의 주장일뿐이죠.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클릭 2012.04.20 05:44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 구름 2011.12.04 12:18

    디자인은 오히려 애플이 삼성을 베낀 것이 아닌가?
    2006년 삼성 디자인이지만 이후에 나온 아이패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http://www.engadget.com/2006/03/09/samsung-digital-picture-frame-stores-pics-movies-music

  3. Favicon of https://highcode.tistory.com BlogIcon 프알못 2011.12.04 13:32 신고

    100번 째 추천 하고 갑니다

  4. Favicon of https://marke7.tistory.com BlogIcon 마르크7 2011.12.04 13:44 신고

    아무래도 애플의 제소가 너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다보니
    객관적으로 애플의 손을 들어주려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지 애플에게 역풍이 맞는 모습이네요

    과연 애플은 어떻게 대처할지,,
    이러다 역풍이 태풍이 되어서 한방에 쓱 밀리는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 Favicon of https://catchrod.tistory.com BlogIcon IT평론가 니자드 2011.12.04 19:18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그러게요. 자칫하면 미국입장에서는 이거 삼성 하나 견제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국의 모토로라, 구글, 아마존 등 모든 업체가 태블릿을 못만들거나 전혀 해괴한 모양으로 일부러 만들어야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걸 우려하는 듯 합니다. 애플이 좀 적당한 선을 지켰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5. 지나가다가 2011.12.04 20:28

    아무리 봐도, 애플이 정신줄 놓고 한 결정같아 보였습니다. 적당선을 지키거나, 아니면 정말 작정하고 싸우려고 했으면 자신의 우군을 만들어놓고 했어야 되는데, 독고다이로 싸우려다 보니
    이게 독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 하모니 2011.12.05 07:13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적당히 타협해가며 떼거지로 싸우는건 애플스타일이 아니죠. 독선적으로 독고다이로 싸우는게 애플스타일이고 잡스스타일 입니다.

  6. Favicon of http://engagestory.com BlogIcon 인게이지 2011.12.04 22:48

    애플이 무차별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의 초점이 특허에서 독과점쪽으로 변하는듯 합니다.

  7. Favicon of https://otkhm.tistory.com BlogIcon 릿찡 2011.12.05 10:54 신고

    원레 천조제국은 독점의 폐헤를 몸소 느꼈기 때문에 독점을 굉장히 싫어하죠. 사실상 지금 애플의 행태는 태블릿피씨 라는 시장 에서의 독점을 원하고 있는데... 애플의 오랜 경쟁자인 마소가 독점 때문에 피박을 얼마나 썻는지 본다면 뭐...

  8. azxs11 2011.12.05 20:40

    제가 갭을 한번 메워 볼까요?
    바로 스티브잡스가 더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은퇴한게 아니라 아예 골로 갔어요!
    스티브잡스는 애플의 실질적 경영자이기도 하지만 대외 홍보용 입이었고
    타업체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어막 이었습니다.
    수틀리면 한번씩 기계들고 나타나서 마음에 안드는 상태 신나게 까죠.
    그러면 그기 비록 it업계자가 아닐찌라도 항복깃발 내걸밖에 없었지요.

    더이상 애플은 신성불가침 성지가 아닙니다.
    이번 판결은 그것을 애플 본사에 시위한 것입니다!

  9. 독자 2011.12.07 14:39

    글쓴이의 통찰력이 대단한것 같습니다. 글쓴이의 글을 꾸준히 읽어보겠습니다.

  10. ABCD 2011.12.07 19:42

    아직 아이패드가 왜 좋은지 잘 모름. 이걸 왜 만들어냈는지 잘 모르겠슴.

  11. 파소도블레 2011.12.17 02:53

    미국은 국가에 실익이 있는지를 먼저 따지는 국가라서 그런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실제로 삼성이 애플보다 미국 본토에서 먹여살리는 인구가 더 많기 때문일수도 있을꺼란

    생각이 드네요...이미 몇개 공장이 있었고....이번에 오스틴 공장을 지어서 A5칩을 생산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