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이라는 게 있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다는 일종의 법칙이다. 세상의 대부분 사건들이 이 인과율에 의해서 벌어진다. 예를 들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중력이 있게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원인이 어디엔가 있다는 걸 알고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웹 기술 가운데 플래시라는 게 있다. 본래는 그냥 글자와 그림만 표시될 웹페이지에 플래시 기술을 쓰면 움직이는 그림, 동영상이 재생되고 소리도 나온다. 심지어 웹 위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플래시 기술이 문제가 되고 있다.

복잡하게 말할 수도 있고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다. 과연 어도비에서 내놓은 플래시가 왜 문제인가를 설명해보자.

1 ) 복잡하게 말하다면 플래시 기술이 어도비 한 회사의 유료 독점기술이며 공개표준이 아니란 점에 원인이 있다. 또한 플래시가 매우 쉽고 간편하게 웹을 꾸며주지만 최적화와 효율성이 적으며, 특히 모바일기기의 인터페이스와 잘 어울리지 못한 점도 있다. 미래의 웹 기술과 호환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내용은 주로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아주 간단하게 근본 원인을 말해보자.  

2 ) 어도비의 비즈니스 모델이 애플의 플랫폼 정책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애플은 철저히 자사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어도비의 정책은 어느 기기든 자사의 플래시를 침투시켜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플은 어도비의 플래시를 모바일기기에서 배제시켜 논란을 빚었다. 이 조치를 둘러싸고 여러 반응이 나오던 중 드디어 새로운 뉴스 하나가 나왔다.(출처)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동영상 기술 표준을 놓고 공개 설전을 벌였던 애플과 어도비 간의 논쟁이 애플의 승리로 끝났다. 어도비가 그간 공급해온 모바일 브라우저용 플래시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플래시 가동을 차단해 온 애플이 이긴 셈이다.

어도비는11월 9일(현지시각) 홈페이지를 통해 모바일용 플래시 플레이어를 더 이상 개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모바일 분야에서 HTML5가 대세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백기를 든 것이다.

마크 개럿 어도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우리가 애플에게 졌다고 말하진 않겠다”며 “우리는 고객들의 의견에 귀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대니 위노커 어도비 부사장은 “앞으로 웹 사이트를 구축하는 프로그래밍 표준의 최신 버전인 HTML5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어도비는 중도하차라는 결정을 내렸다. 시장이 빠르게 HTML5 표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던 것. 어도비는 앞으로 안드로이드와 블랙베리 플레이북을 위한 '플래시 플레이어 11.1'을 끝으로 업그레이드 제품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이미 공급한 제품에 대한 버그 수정과 보안 업데이트만 지속하기로 했다. 대신 웹 출판과 광고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기로 했다. 또 전체 인력의 7.5%인 750명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어도비가 애플에게 진 것일까? 좀 깊게 따져보자. 과연 애플이 주장하던 대로 어도비의 플래시 기술이 낙후되고 쓸모없는 기술이라서 패한 것일까?

어도비 모바일 플래시 중단, 애플의 승리일까?


여기서 바로 원인과 결과라는 고찰이 필요하다. 우선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보자. 위의 기사 속에 답이 있다. 마크 개럿 어도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가 애플에게 졌다고 말하진 않겠다.” 라고 했다. 즉 이 말은 애플에게 졌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건 어도비의 패배가 바로 애플의 주장이 맞다는 반증이냐는 것이다. 그게 아니다. 애플의 승리는 그 논리가 맞아서가 아니다. 애플이 지금 현실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힘에 의해 이긴 것이다.

아이폰은 비록 약간 점유율이 안드로이드에 비해 뒤지긴 해도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힘도 있고, 단일 단말기로는 최고로 인기있고 판매량이 많은 기기다. 또한 아이패드는 독보적일 정도로 강한 점유율을 태블릿 시장에서 가지고 있으며 포스트PC의 위치까지 노리고 있다. 이런 애플이 채택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시장에는 강력한 영향력이 퍼진다.



애플의 모바일 기기는 이제까지 많은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익스플로러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액티브 엑스를 고사시켰으며, 각종 인터넷 뱅킹과 홈쇼핑에서 웹브라우저의 다양성을 유도해내고 있다. 이런 영향력은 애플의 주장의 정당성보다는 현실적인 점유율과 힘이 그 원인이다. 점유율이 낮은 매킨토시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주시해보자.

결국 어도비가 모바일에서 플래시를 포기한 이유는 스마트폰의 절반 정도, 태블릿의 9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 애플이 받아들여주지 않는 기술에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때문으로 보인다. 마치 예전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제한 넷스케이프가 결국 몰락했듯이 플랫폼을 쥔 애플이 모바일플래시를 몰아낸 것이다.



물론 플래시는 여전히 PC에서는 잘 구동되고 지원될 것이다. 맥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모바일에서는 앱 형식으로 지원되면서 HTML5가 보다 발전하기를 기다릴 것이다. 어차피 사용자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참으면서 그동안은 노트북이나 PC를 쓸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인 어도비가 그동안 어떤 수익모델을 만들어 낼지 주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