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전제품과 IT제품의 구별이 점점 옅어져간다. 그저 흔한 전자제품에 가까웠던 휴대폰에 컴퓨터가 들어가면서 스마트폰이란 첨단 IT제품이 되었다. 흔한 텔레비전이었던 것에 인터넷과 컴퓨터 기능이 들어가면 스마트TV란 새로운 IT제품이 생긴다. 가전제품들이 모두 지능형 가전제품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내가 IT평론가인데도 굳이 가전제품 분야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서 가전제품의 미래는 결국 IT분야와의 결합에 달려있다. 이것을 어떻게 잘 하느냐에 따라 굵직한 글로벌 기업의 흥망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며칠 전에 나온 한가지 뉴스가 내 눈에 들어왔다. (출처)

유통업체 이마트가 대만 가전업체 TPV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 49만9000원짜리 LED TV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중저가 TV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마트가 판매 사흘 만에 초기 물량 5000대를 모두 팔아치우면서 수요가 확인되자 삼성과 LG도 중저가 모델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고품질을 내세워 고가 정책을 고수하던 삼성과 LG가 이번 소비자의 반응에 화들짝 놀란 모습이다.


11월 10 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저가형 모델인 20~30인치대 TV 모델을 올해보다 20% 이상 늘릴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22인치 LED TV를 선보인 데 이어 내년에도 20~30인치대 중소형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에 기능을 단순화하고 절전 기능을 강화한 실속형 TV를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주력 모델의 크기는 26인치다. 기존 제품보다 두께가 얇아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침실, 공부방, 원룸 등 좁은 공간에 적절한 모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년 중저가 TV 신상품은 소비전력과 화질 등에서 기술적으로 대폭 개선해 대만ㆍ중국과는 차별화한 제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LG 전자도 '세컨드 TV' 수요와 싱글족 등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이마트 TV와 같은 크기인 LG전자의 보급형 32인치 LED TV 가격은 75만~80만원대. LG전자는 이보다 최대 20만원까지 가격을 내린 중저가 제품을 출시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저가 TV를 준비하고 있지만 이마트처럼 50만원 밑으로는 품질문제상 불가능하다"며 "품질을 희생하면 오히려 소비자에게도 손해"라고 강조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패널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하지만 티비에 필수적이고 가장 비싼 부품인 패널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막상 완제품 티비 가격은 별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삼성과 엘지 같은 대기업 제품들은 패널 가격하락에 비하면 제품가격이 매우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티비는 싸다. 하지만 이들의 품질과 애프터서비스를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기에 커다란 의미는 가지지 못했다. 이 와중에 한국의 거대 유통업체인 이마트가 대만업체와 협력해 싼 티비를 생산해냈다. 처음에는 무시했던 삼성과 엘지 등은 이 저가티비가 순식간에 매진된 뜨거운 반응에 놀라 전략적인 수정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 뉴스가 의미하는 건 단지 그것뿐일까? 소비자들이 값싸고 믿을 수 있는 티비가 필요한데 삼성과 엘지가 내놓지 않고, 마침 이마트가 내놓았으니 그걸 샀다. 그러니 좀더 싸게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뭐 적당히 이런 메시지만 얻고 넘겨버리면 그걸로 끝일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좀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적어도 내 블로그를 방문하고 눈여겨보는 독자라면 내가 틀리든 맞든 일차원적인 생각보다는 보다 깊은 고찰을 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마트TV, 판매돌풍이 던지는 의미는?

지금 전통적인 TV산업은 매우 심각한 기로에 서 있다. LCD가 만들어내고 LED가 잠시 그 생명을 연장해주었던 평면형 텔레비전이란 중요한 부가가치가 효력을 다하고 있다. 즉 소비자들이 더이상 기존 방식의 티비를 비싼 돈을 들이고 살만한 제품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브라운관에서 그나마 LCD 로 넘어오면서 큰 화면과 평면이란 요소가 그나마 돈을 들여야겠다는 가치를 유지시켰을 뿐이다.

그럼 앞으로는 무엇이 남았는가? 이대로 그저 만들어 파는 것만 하다가는 저부가가치의 일상용품으로 격하될 뿐이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싼 것만 찾을 뿐 비싸지만 기꺼이 돈을 털어서라도 살만한 어떤 것이 되지 못한다. 이마트TV의 판매돌풍은 따라서 기존의 티비업계에 경고를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는 티비산업 자체가 낮은 부가가치의 단순공업제품 분야가 될 거라고 말이다.

지금 1회용제품과 10달러 남짓의 제품까지도 나와있는 휴대폰을 보자. 한쪽에서는 그런 초저가품이 잘 팔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폰과 갤럭시를 비롯해 비싸지만 편리한 스마트폰이 날개돋힌듯 팔린다. 스마트폰도 본질은 전화지만 훨씬 많은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TV도 결국은 스마트TV로 진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방향은 아직 누구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가전업체들은 단지 인터넷에 연결하고는 동영상을 선택해서 보게 하면 그걸로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애플조차도 이때까지는 단지 컨텐츠만 풍부하게 해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조차도 인터페이스를 개량한 티비가 ‘궁극의 TV’라고 생각한 듯 하다.

진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진화하는 티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래의 티비는 반응성과 3D, 인터페이스와 컨텐츠 등 모든 방면에서 한차원 넘는 어떤 패러다임을 하나 더 제시해야 할 것이다. 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고안하고 구현해내는 업체는 엄청난 이익으로서 보답받을 것이다.


이마트TV가 잘 팔리는 현실이 있다면 그 대응책으로 중저가티비를 출시하는 건 단지 단기대책일 뿐이다. 정말로 기술력과 자금력이 있는 미래를 볼 여유가 있는 기업이라면 티비 자체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죽는다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야들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애플처럼 티비 시장에서도 혁신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