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것은 마치 왕년의 멋진 남자가 슬슬 늙고 병든 노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단지 시간이 흐를 뿐인데 예전의 매력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란 매체가 본래 보수적이긴 하지만 근래 전자책에 나타나는 정체현상을 보면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그것은 전자책이 기본적으로는 책속의 글이라는 컨텐츠에 근거하지만, 또한 하드웨어로서의 단말기라는 포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잘 발달된 전자책은 거의 게임의 영역에 가까울 정도다.

스마트폰은 요즘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기존 통신망 3G보다 5배 이상 빠른 LTE망을 이용한 4G를 탑재하는 건 더 빠르고 쾌적한 데이터 통신을 위해서다. 근거리 결제시스템-NFC를 통해서 가지고 다니는 전자지갑이나 전자열쇠를 설계한다. 더 섬세한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나 AMOLED 역시 스마트폰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전자책은 어떨까? 한가하다못해 무사태평하다 싶을 정도로 이런 치열한 흐름에서 벗어나있다. 전자책의 주류인 전자잉크는 아직도 흑백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 방식인 LCD를 이용한 컬러가 간신히 싸게 도입될 뿐이다. 전자책을 위해서 특별히 좋은 AP를 탑재하지도 않고, 사운드를 강화하는 일도 없다. 과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왜 전자책은 최신기술을 품고 활발히 경쟁하며 발전하지 못하는 걸까?


전자책, 최신기술을 품지 못하는 이유는?

1 . 아쉬운 일이지만 업계의 혁신을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던 애플의 지원이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얼마전 사망한 스티브 잡스 이후로 IT업계는 추모 열기외에, 도전적인 시도가 뜸해졌다. 스티브 잡스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죽을 힘을 다해 혁신흉내라도 내야했던 업체들이 숨을 돌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있는 것이다.

아이패드와 아이북스를 보면 이런 부분은 더욱 명확하다. 아이패드가 처음 전자책을 주력으로 태블릿을 활용하자고 했을때 다들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아이북스로 전자책리더를 지원하며 새로운 시도를 잇달아 내놓았다. 그때는 모두가 열심히 전자책을 만들고 지원했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발전이 느려지자 지금은 어느 업체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2 . 아마존이 촉발시킨 새로운 단말기 흐름이 ‘저가경쟁’이기 때문이다. 아이패드와의 승부수로서 아마존만의 개성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우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레 아니었다. 아마존은 아이패드가 머무는 가격대를 피해서 199달러의 컬러 태블릿 ‘킨들 파이어’와 79달러까지 낮아지는 킨들터치를 내놓았다. 저가는 당연히 기능의 삭제와 치열한 원가절감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저가경쟁속에서 다시 최신기술의 적용이나 혁신이 생기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제는 아이패드가 비싼 가격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는 듯한 상황까지 생겼다. 아마존은 어쨌든 단말기를 보급시키고 책을 파는 것에 관심이 많다. 업계 전체를 조망하고 발전시키는 재능은 부족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야말로 국내 전자책 업체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뚜렷한 시장흐름이 없이 단지 저가경쟁으로 가는 상황에서 국내업체가 최신 기술이 접목된 전자책 단말기와 서비스를 호의적인 가격에 공급할 수만 있다면? 스마트폰의 발전에 비해 너무 뒤진 태블릿-전자책 단말기를 본 소비자 가운데 많은 수가 최신기술을 품은 전자책 단말기를 살 것이다.


애플의 혁신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아마존은 오로지 보급률에만 관심이 있다. 이때야말로 최신기술의 하드웨어로 승부를 낼 수 있는 때다. 뜻있는 한국 업체들의 개성적인 시도와 도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