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그리고 어떨 때는 빛나는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부분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고구려가 당나라를 격퇴한 안시성 싸움이나 조선이 7년동안 일본과 싸워이긴 임진왜란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외침을 격파했다는 정당성과 함께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우리가 보다 넓은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 안의 울타리에 들어온 세력을 격퇴하는 데 급급했다는 수세적 입장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것은 세계의 커다란 흐름속에서 좀더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IT선진국으로 자칭하던 한국은 어느새 점점 세계의 IT발전 역사에서 벗어나고 있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흐름에서도 뒤쳐졌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도 뒤따라가기 바쁜 편이다.

국내 전자책 시장의 뉴스 하나를 보자. 교보문고가 새로운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는다는 뉴스다. (출처)  

교보문고가 퀄컴과 손잡고 컬러 전자책 단말기를 곧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문고 관계자에 따르면 교보문고는 퀄컴의 ‘미라솔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컬러 전자책 단말기를 이르면 11월 혹은 연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판매는 교보문고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며, 가격은 30만원대에서 정해질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퀄컴이 출시할 전자책 단말기의 모델과 브랜드명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화면 크기는 5.7인치로, 7인치인 킨들 파이어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출시 준비도 꽤 진척됐다. 현재는 소프트웨어 최적화를 위해 오류를 테스트하는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은 교보문고보다 이 사업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퀄컴은 자사가 개발한 미라솔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첫 단말기를 세계 최초로 국내에 출시하기로 했다. 게다가 퀄컴은 전자책 단말기 시장에 처음으로 뛰어들었다. 


읽으면 그저 평이한 뉴스일 수 있다. 국내업체에서 전자책 단말기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포기가 잇다르고 있다. 이에 비해 교보문고란 컨텐츠 사업자는 어떻게든 전자책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으로 굳이 이윤을 많이 내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 전자책 분야를 통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전자책과 태블릿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퀼컴과의 전략이익이 맞아떨어진 건 당연하다.

보다 큰 관점에서 보자. 사실 국내 출판사나 대형서점은 근본적으로 전자책을 두려워한다.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종이책 수익을 갉아먹고, 불법복제 시대를 앞당기는 귀찮은 흐름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흐름은 다가오는 초시계 초침처럼 전자책 시대를 향해 달려간다. 아마존이 킨들을 태블릿으로까지 발전시키며 압박해온다. 그나마 한국시장이 작아서 그렇지 좀더 여건이 무르익는다면 한국시장에 대한 위협도 곧바로 다가올 것이다.



교보문고 전자책 단말기, 킨들의 대항마인가?

결국 교보문고의 이번 전자책 단말기 출시는 다가오는 킨들, 킨들 파이어 등이 한국시장에 무주공산으로 난입해서 시장을 다 먹어버리는 상황을 견제하기 위한 견제구라고 봐야 한다. 사활을 건 사업도 아니고, 굳이 이 사업에 대한 엄청난 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도 아니다. 킨들 파이어가 한글을 지원하며 국내 사업자로 커가기 전에 시장선점을 하겠다는 정도다.

가격정책만 봐도 알 수 있다. 본래 원가를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부품을 맞추는 식의 정책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컬러이고 킨들 파이어의 가격보다 약간 싼 정도다. 노리고 있는 시장이 거의 일치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내 전자책 소비자의 이익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가격도 싸고 서비스도 충실한 아마존이 국내에 견제없이 진출한다면? 킨들 파이어가 모든 컨텐츠 사업자와 계약을 맺어 풍부한 전자책을 공급하는 것이 행복한 상황이다. 아니면 차라리 교보문고의 이번 시도가 제대로 한국시장을 키워보겠다는 도전적인 의도라도 나름 행복할 것이다. 그만큼 많은 서비스와 혁신이 제공될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건 아닌듯 싶다. 매우 어정쩡한 상황에서 교보문고는 그저 바둑판에 돌 몇 개만 깔아두듯이 별로 주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킨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면 그제서야 사력을 다해 경쟁하려 할 것이다. 고구려의 안시성 싸움이나, 임진왜란이 그저 우리땅에서만 벌어진 방어전이란 걸 상기해보자.


진정한 킨들의 대항마라면 역으로 우리가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단지 좁은 한국과 한글 시장을 지키려고 견제구만 던지는 것보다, 보다 넓은 시장을 향해 강속구를 날려보는 게 어떨까. 사업모델과 여러 여건이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든다. 교보문고의 이번 전자책 단말기가 단지 ‘국내 시장만 지키려는’ 킨들의 대항마라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