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지휘관은 거대한 전황을 보고 진격과 후퇴를 지시한다. 그 과정에서 병사 개인의 생사나 부대 몇 개의 유불리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지휘관에게 중요한 것은 아군의 피해를 적게하고 적의 피해를 크게 하며, 최종적으로 국가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거대 기업의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업계 전체의 흐름과 자기 회사의 사정을 깊이 파악하고 개별 산업의 진출과 철수를 결정한다. 가슴아픈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실업자나 개별 품목의 유불리는 고려할 수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업 전체의 이익을 최대화시키고 장기적인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다.

소니가 최근 엄청나게 중요한 경영판단을 연이어 내리는 것이 주목된다. 며칠전에는 소니에릭슨을 인수하고는 직접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삼성과 절반씩 합작한 거대 LCD공장을 포기하려는 결정을 한 모양이다. (출처)



일본의 소니가 삼성전자와 LCD 합작에서 철수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소니는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의 TV용 액정표시장치(LCD) 합작기업인 S-LCD의 지분을 삼성전자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합작을 해소하기로 하고 현재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소니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1조9천500억원을 투자해 생산 능력을 늘려왔으나 세계적 공급 과잉으로 LCD 패널의 가격이 급락하고 TV 판매 부진으로 적자가 누적되자 삼성과의 합작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소니는 S-LCD로부터 LCD 패널을 공급받아 TV를 생산하는 것보다 국내외 다른 기업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비용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소니는 TV사업에서 올해 3월말까지 7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냈으며, 누적 적자 규모는 4천500억엔(약 6조6천억원)에 달했다.


소니의 이번 결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위의 기사에서도 보듯이 7분기 연속 적자란 건 거의 2년에 맞먹는다. 그동안 적자를 보면서도 티비 사업을 한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소니 그룹 전체에서 잘되고 있는 분야가 거의 없다는 걸 보면 자금적 여력이 적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소니 입장에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볼 때 이번 철수 결정은 나중에 과연 아쉬움으로 남지 않을까. 그걸 확신할 수 없다.


소니는 본래 브라운관에서 트리니트론 방식이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엄청난 실적을 쌓았다. 그러다가 LCD를 경시하고는 바로 OLED 시장을 노리다가 엄청난 전략적 실책을 저질렀다. 자칫하면 티비 부분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승부수를 던진 것이 삼성과의 합작이었다.

당시 일본업체들이 한국업체를 귀찮은 추격자로만 아는 상황에서 소니는 배신자로까지 불리면서도 LCD 패널을 확보하기 위해 합작을 했다. 그리고 결국 브라비아 시리즈를 통해 어느정도 시장 점유율을 방어할 수 있었다. 물론 독자기술력이 부족했다는 점, 가격경쟁력 부족 등으로 인해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어쨌든 한동안 LCD패널은 호황이었고 큰 흑자를 안겨주었다. 삼성은 물론 소니도 그때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산과잉과 불황이 찾아오자 견디지 못하고 소니가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소니의 LCD 포기, 삼성에게 기회가 될까?

문제는 이런 것이 오히려 반복되는 소니의 전략적 실패로 누적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반도체 산업에서도 그렇듯 적자를 보며 치킨게임이 게속될 때 꿋꿋이 버텼다. 그리고는 다시 산업이 상승세를 탈 때 엄청난 이익을 거뒀다. 버티지 못한 기업들은 늘 상승세에 든 삼성만 보며 부러워했지, 정작 불황기를 침착하게 버틴 그 저력을 본받지 못했다.

소니 역시 마찬가지다. 소니는 LCD사업에 정작 뛰어들었어야 할 초창기에 전략적 판단을 잘못해 기회를 놓쳤다. 마찬가지로 지금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간후에 다시 활황기가 오거나 패널수급이 불안정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니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이런 상황을 견디고 다시 이익을 냈던 삼성에게 이런 소니의 빠른 포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지도 흥미롭다. 어차피 LCD패널 자체는 언제나 필요하다. 당분간은 대체할 다른 부품도 없고 도태될 산업도 아니다. 적자와 함께 전세계 산업구조가 다시 재편되었을 때 삼성이 단일 주주가 된 S-LCD에서 어떤 이익을 낼 수 있을 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