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닐 때 우리가 배운 것을 상기해보자. 어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은 단 한가지인 경우가 거의 없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여러가지 물질이 섞여서 형성된 혼합물에 가깝다. 인간은 어떨까? 한 인간의 인생과 삶의 궤적을 형성하는 것은 단 하나의 요소가 아니다. 주위여건과 타고난 성격과 노력과 운 등이 결합된 복잡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곧잘 그런 요소를 단순화시켜서 생각한다. 때문에 사람을 보다 넓고 깊게 보지 못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사람은 만화속 캐릭터나 옛날 이야기속 인물이 아니다. 민감하고 복잡하며 보다 신중하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출판을 앞두고 그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안타까운 사건으로서 다음과 같은 뉴스가 소개됐다. (출처)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60 Minutes와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던 췌장암 수술을 9개월이나 미뤘던 이유에 대해 말했다.
잡스는 췌장암에 걸렸으나, 그 암 종류는 수술로 치유될 수 있는 희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수술을 거부했다. 잡스가 수술을 거부한 이유는 그의 신체를 여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런 방식으로 영적인 것을 위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아이작슨은 말했다.

60 Minutes는 그렇게 스마트 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해 아이작슨에게 물었다. 그는 잡스와 이 문제를 놓고 수 차례의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 대신 영적 치료와 대체 의학 같은 것들을 의존했다고 아이작슨은 말했다.

잡스는 결국 9개월 후에 가족과 친구들의 권유로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미 암 세포가 그의 몸에 퍼진 후였다. 잡스는 심지어 비밀로 암 치료를 받을 때까지도 그의 질병의 심각성을 경시했고, 결국 수술을 늦춘 그의 결정에 대해 후회했다고 아이작슨은 말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안타까웠다. 나는 잡스가 희귀병인 췌장염에 걸렸지만 결국 적절한 때에 수술을 받아 완치에 가깝게 나았는줄 알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수술시기를 놓쳤는데, 그것도 대체의학이나 영적치료 때문이라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종종 불치병을 고친답시고 기도원에서 안수기도나 금식기도를 하다가 도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가 뉴스가 나온다. 신앙의 힘으로 앉은뱅이를 서게 하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한다는 사이비 종교가 보고 되기도 한다. 미국보다 아마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대체로 잡스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동시에 대체의학이  당당히 난치병 치료법으로 행세하는 현 상황을 없애야 한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질병 예방이나 나중의 회복에는 좋을 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암에 걸린 사람에게 영적치료나 대체의학은 오히려 수술시기를 놓치게 해서 병을 악화시키거나 죽음에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대체의학이나 영적치료를 믿지도 않거니와 굳이 변호해주거나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애당초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재능을 발견하고 카리스마를 길러가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인도여행과 선불교였다. 채식을 주로하면서 히피생활을 했고, 해커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친했다. 심지어 자서전에서도 밝혔다시피 각성제를 이용하기도 했다. 좋든 나쁘든 그런 행동이 스티브 잡스의 성격과 재능을 키웠고 인생을 만들었다. 잡스는 빌게이츠를 가리켜 각성제를 한번이라도 피워봤으면 좀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을 거라 말하기도 했다.

암판정을 받은 후의 잡스라고 이런 경향이 달라질까? 대체의학이나 영적치료는 그의 이런 인생에 있어서 한번쯤 의지해볼만한 수단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미신에 치명적인 판단미스였겠지만 말이다.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IT업계의 유명인사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의외이고 아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잡스는 이성이 지배하는 그런 IT업계에서 가장 감성적이면서 합리 이상의 어떤 것을 추구했기에 성공했다.


스티브 잡스를 죽인 대체의학, 생각해 볼 점은?
 
잡스의 훌륭한 제품과 혁신 역시 거의 모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의 직관과 판단을 믿은 결과다. 그런데 굳이 의학에 있서 잡스가 공손하고 겸손하게 아무런 주장도 내세우지 않고 직관적 판단을 할 리가 없다. 특히 인도는 요가와 수련으로 유명하다. 영적치료라면 충분히 발달했다. 잡스가 그걸 믿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우리가 보는 건 단지 결과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암은 악화되었으며 대체의학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잡스가 과연 그 판단을 후회했을까? 자기가 그런 미신을 믿었다는 게 부끄럽다며 이제까지의 삶 자체를 후회할까? 자기의 혁신적인 제품과 성공의 원천이 히피생활 경험과 인도여행, 심지어는 각성제 복용경험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마도 아닐 것이다. 비록 우리와 생각이 다르지만 잡스는 나름대로 그가 믿는 방향으로 자기 몸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가 실패로 끝났다지만 애당초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영웅 잡스 역시 없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입양아 출신 세일즈맨 정도로 백살까지 사는 합리적인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생기는 대신,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전세계 사람의 추모를 받으며 60살도 안되어 죽은 스티브 잡스라는 CEO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원하는가? 아마 잡스 스스로도 원치 않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는 아쉽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사건들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은 법이 아니다!’ 라며 감옥을 탈출했다면 더 훌륭한 철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계백 장군이 백제가 망하는 건 운명이고 내 재능은 아까우니 신라편에 서겠다고 했다면 그가 과연 역사에 영웅으로 남았을까? 

나는 스티브 잡스가 대체의학을 선택한 건, 그의 장점이었던 점이 반대로 수명을 단축시킬 운명으로 뒤집힌 것이라 생각한다. 그를  IT업계의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던 그 ‘비합리성’이 반대로 몸을 회복할 기회를 빼앗아갔다.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니며, 대체의학이 나쁜 것도 아니다. 성공의 요소가 때로는 실패의 요소도 된다는 진리가 확인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싫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