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매우 불운한 계절이었다. 
블로그 활동 때문에 상당기간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답답해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마침 여름이 딱 좋았다. 뜨거운 태양과 푸른 숲이 너무도 그리웠다. 화창한 해변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비치체어에 앉아 차가운 마티니를 마시는 영화같은 모습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폭우의 계절이었다. 해가 좀 뜰만하면 비가 계속 내렸다. 그것도 보통 비가 아니고 태풍과 폭우, 홍수를 동반하는 재해였다. 전국 공통으로 내리는 비는 동해안이든 남해안이든 가리지 않았다. 외국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누구도 벗어나기 힘들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가깝다는데 새삼 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어디서나 환경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나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에서도 친환경과 자연친화를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환경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계획이 이상기후로 어그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공물인 건축자재로 지은 새집에서 새집증후군이 발생해서 알러지성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새 집의 역습’은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된바 있다.


엘지 하우시스에서 자연을 강조하며 도봉산 걷기 행사를 마련한 것도 이런 이유다. 사람들에게 환경에 관심을 두도록 강조하는 것이다. 마침 하우시스에서는 지인 이란 브랜드를 통해 프리미엄 인테리어 브랜드를 만들어 놓고 있다. 친환경 소재를 건축자재로 사용한다는 캠페인을 펼치는 것이기에 친환경이란 목적과도 잘 맞는다.



숲길을 천천히 걷는 건 건강에 매우 좋다. 삼림욕이라고 해서 일부러 숲에 들어가 우리 몸에 자연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친환경 행사를 하면서 직접 숲길을 걷는 것은 좋은 기획이다. 때문에 내가 이 행사에 초대를 받았을 때는 작은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승락했다.

하지만 역시나 이런 경우에도 날씨가 문제다. 이날은 하필 기온이 떨어지면서 큰 비와 낙뢰가 예고된 날이었다. 오랫만에 가을가뭄이 해소된다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지만 비오는 날 산길은 위험하고도 힘들다. 맑은 날 유쾌한 기분으로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걷는 자체가 하나의 수행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혼자 걷는 건 아니었다. 이 날 행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의외로 이런 궂은 날씨에도 즐겁게 행사에 참가했다. 우비를 입고, 아이를 데리고 걷는 가족들을 보면서 나도 천천히 따라갔다.

한국의 기후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온대기후에서 이제는 우기와 건기로 나눠지는 아열대성 기후가 되고 있다. 남쪽 바다에서는 그간 안 잡히던 참치가 잡히고, 찬 물에서 사는 명태는 자취를 감췄다. 지구온난화가 당장 나에게 무슨 영향이 있으랴 하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렇게 자잘한 생활속 기후에서 분명 영향을 받고 있다. 가을이라고 믿기 어려운 날씨와 비바람까지 겹친 이 날의 날씨속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참 아이들은 잘 걷는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기에 모든 게 신기해서 그럴까? 고인 빗물과 웅덩이에 짜증을 내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종종종 걸으면서 쉴새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친환경이란 말의 의미도 잘 모를 것이다. 생각해보면 친환경이란 뜻 자체를 몰라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이 행사에서 특히 재미있는 건 여권처럼 생긴 에코 패스포트였다. 대한민국 여권과 크기와 색깔이 똑같이 생긴 이것을 들고 가면 산길 코스마다 일정 지점에서 통과 도장을 찍어준다. 마치 입국장에서 찍는 도장처럼 생긴 이것을 받아가며 걷다보면 어느새 코스를 전부 마치고 돌아오게 된다.



빗속에서도 나름 재미있게 산길을 걷고 돌아오자 작은 음악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젖은 몸을 말리고 쉬자 약간의 뿌듯함도 느껴진다. 고층빌딩만 줄줄이 늘어서 있는 서울 시가지보다는 그래도 이런 숲길을 보는 게 오래간만이라서 그럴까. 나름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뜻있는 행사였다.



도봉산을 떠나 다시 내가 사는 목동으로 돌아오면서 올 겨울에는 여행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와 빌딩만 즐비하게 있는 시가지는 역시 좀 삭막하다.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숲, 이국적인 볼거리가 있는 어떤 곳이 몹시도 가고 싶다. 첨단 IT기기를 늘 보고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속 본능은 역시 자연을 원하고 있었다.
  


언젠가 맑은 날씨에 가을여행을 떠나야겠다. 단풍진 설악산, 따스한 제주도, 가을의 경주 등 많은 여행지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자연을 벗삼아 삶을 즐기던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나도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