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아트사커로 유럽 축구를 지배하던 프랑스 대표팀을 기억하는가? 천재 게임메이커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 대표팀은 거의 무적이었다. 굳이 지단이 골을 넣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지단이 있는 것만으로 프랑스 대표팀은 전체가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잘 맞아들어갔다. 자존심 강하고 인종도 서로 달라 융합되기 어려운 스타 플레이어들이 지단이란 구심점 하나로 인해 환상적인 한 팀이 되었다. 이에 프랑스는 아예 지단을 중심으로 팀을 최적화시켜버렸다.

그런데 지단이 노쇄하고 은퇴하고나자 이 팀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 지단 만큼의 재능과 인품을 갖춘 선수가 없어지자 그대로 프랑스 대표팀 전체의 실력이 수직하강해버렸다. 선수구성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한때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우승팀이었던 프랑스팀이 그저그런 유럽팀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사진출처: 인가젯)

이게 굳이 축구만의 일일까.
전세계의 IT천재들이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몰린다는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애플의 구성원은 그 하나하나가 제어하기 힘들고, 남의 말 잘 안듣는데다가 자존심마저 강하다. 능력은 좋지만 그만큼 까탈스러운 것이다. 역대 애플 CEO로 다른 기업에서 눈부신 실적과 능력을 보인 사람이 많았지만 전부 실패했던 게 그 때문이다. 

결국 애플은 온전히 스티브 잡스 만이 제어할 수 있고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집단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그것이 가능하지만 불행히도 이 사람은 잡스만큼의 야심이 없다. 역시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없으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회사다. 바로 그 점이 어제 미국에서 증명되었다. 잡스 뒤를 이어 CEO가 된 팀쿡이 맡아서 새로운 아이폰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발표회 중계를 새벽까지 지켜보면서도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애플이 좀더 잘해줘야 한다. 점점 하드웨어가 발전하고, 경쟁 회사들이 치고 올라오는 시점이다. 애플은 1년 4개월 동안 새 아이폰을 준비했다. 마음에 들든 안들든, 애플은 분명 지금 시대를 리드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애플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열렬히 응원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막상 발표회장과 그것을 지켜보는 네티즌의 반응은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원래부터 스티브 잡스가 나오지 않으니 일단 강력한 카리스마와 초기 열광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확실히 매력적인 제품을 내놓아서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기대할 수 없었다.


늘 그렇듯 프리젠테이션 대부분은 애플의 실적과 매출에 대한 자랑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이라도 잡스가 하면 분명 그 뒤에 무엇인가 깜짝 놀랄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을 것이란 기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똑같은 말이라도 필쉴러가 하자 그저 공허한 자랑으로만 들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자랑말고는 어떤 서비스도 없었다.

1 . 아이팟나노를 이용해서 갖가지 스킨의 손목시계를 구현하는 아이디어는 좋았다. 그러나 그건 벌써 1년 먼저 나왔어야 했다. 열광을 부르기엔 너무 늦은 듯 하다. 그 뒤편에서 아이팟 클래식 등은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이제 곧 라인업에서 완전히 없어질 듯 하다.

2 . 화이트 아이팟터치와 게임기능의 강조도 나름 좋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약했다. 게임센터 기능을 점점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해서 아직도 그리 많은 사람들이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애플이 의욕적으로 내놓았다가 지지부진한 아이애드와 일간지 서비스, 애플 티비 등과 뭔가 보다 공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게임기에 준하는 파격적인 플랫폼 지원법은 없을까?



3 .  마지막에 나온 아이폰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새로운 아이폰5가 아니라 부분개량에 그친 아이폰4S였다.(출처)

애플이 10월 4일(현지시간) 기존 '아이폰4'의 후속모델인 '아이폰4S'를 공개했다. 기대를 모았던 차세대 아이폰인 '아이폰5'는 나오지 않았다. 애플은 이날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 내 강당에서 열린 아이폰 신제품 발표행사에서 아이폰4S를 공개했다.

아이폰4S의 외양은 기존 '아이폰4'와 크게 다르지 않다.  쉴러 부사장은 아이폰4S가 아이패드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듀얼프로세서를 장착하고, 화질은 800만 화소로 기존 500만화소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설명했다.

아이폰4S는 당초 예상됐던 대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과 유럽이동통신(GSM) 방식에 적용되는 칩을 모두 탑재해 전세계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아이폰4S는 또 작년 인수한 음성검색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시리(Siri)'의 기술을 접목해 사람의 목소리로 조작할 수 있는 '음성 제어(Voice Control)' 기능도 탑재했다. 

아이폰4S는 64GB는 399달러, 32GB와 16GB는 각각 299달러와 199달러로 가격이 매겨졌다. 오는 7일부터 예약주문을 받아 14일부터 배송하게 된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 등 7개국에서 1차 출시된다. 한국에서는 언제 구매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애플이 공개한 2차 출시국(10월28일) 명단에 한국은 없었다. 

뉴스를 보면 알겠지만 카메라 모듈과 듀얼코어 APU, 그리고 안테나를 수정한 것이 전부였다. 음성제어는 다소 매력적이지만 어차피 영미권에서나 매력있을 뿐 아시아를 비롯한 나머지 세계에는 그다지 어필할 요소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봐서 아이패드2의 발전에 맞춰 적당히 부분 업그레이드한 아이폰에 불과하다. 실망스러운 제품이지만 정작 정말 중요한 건 이번 실망 한번이 아니다.

애플, 스티브 잡스의 공백 속에 길을 잃었나?



잡스가 물러난 후 애플의 모습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었다. 극단적인 비관론에서 상당한 낙관론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나는 그래도 5년 정도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것은 잡스가 닦아놓은 길만 충실히 걸어도 될 만큼 애플이 단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아이폰4S는 만일 그게 전부라면, 그러니까 일부러 아이폰5를 만들어놓고도 안 내놓은 게 아니라면 애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애플의 개발진과 경영진 모두가 잡스가 건강이 악화된 시점을 전후한 1년 넘는 기간동안 그저 놀고 있었다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내가 입아프게 말할 것도 없이 아이폰은 현재 애플을 먹여살리는 핵심중에서도 핵심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다른 제품이 다 망해도 아이폰만 성공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아이폰의 신제품을 이렇게 밖에 만들지 못한단 말인가?



1 ) 듀얼코어는 이제와서 자랑하기에 너무 늦었다. 곧 있으면 시장에는 쿼드코어가 나온다. 내년초면 안드로이드폰은 모두가 주력으로 쿼드코어를 장착하게 될 것이다. 8백만화소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소니 엑스페리아 아크가 채택했었고 다른 폰들은 더 우수한 카메라 모듈도 채택했다.

2 ) LTE를 채택하지 못한 가운데 HSDPA를 빠르다고 내세운 것도 구차하다. 삼성을 비롯한 안드로이드폰은 이미 LTE에 접어들었다. 아이폰4S로 앞으로 1년 이상을 신제품이라 들고 다녀야 할 소비자는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3 ) 안테나를 듀얼로 구성했다. 따라서 이제는 데스그립과 데스핑거가 없어졌을 것이다. 결국 애플은 외장안테나 방식의 단점을 인정하고 수정했다. 늦었지만 좋은 조치다.

어쨌든 이것만으로는 안된다. 애플은 이번에 수많은 소비자들의 기대를 너무도 무참히 배신했다. 너무도 실망스러운 나머지 그래도 ‘또 하나(원모어띵)’ 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마저 없었다. 이래서는 발표회를 왜 했는지도 의문일 정도이다.



정리해보자. 애플은 지금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 건 아닐까? 단지 스티브 잡스 한 명이 없어진 것 뿐인데. 디자이너들은 어떤 모양을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아이폰4의 디자인을 그대로 썼다. 엔지니어들은 최신기술을 과감하게 적용하지 못하고 머뭇거렸고, 경영자들은 우수한 부품조달과 수급에 실패해 버렸다. 바로 이런 결과가 바로 이번 발표로 나타난 게 아닐까?

발표중간에 어떤 블로거가 말했다. ‘세계는 이번 발표회를 잡스가 없는 애플의 미래로 받아들일 것이다.’ 라고. 애플의 주가는 발표회 동안 한때 5퍼센트 급락했다. 제품 발표뒤의 기대와 열광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한숨을 쉬거나 위안거리를 찾을 뿐이었다.



이제와서 스티브 잡스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는 결국 남은 자들이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길을 잃고 있는 애플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연 사람들은 애플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애플은 잡스 없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부디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증명해주길 바란다.

P. S : 뉴스를 보니 스티브 잡스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군요. 시대를 앞서 이끌어나갔던 영웅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