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흘러  어느새 가을이다. 무더웠다기 보다는 비가 줄곧 내려서 습했던 여름 이후 다가온 가을이 되자 어쩐지 기력이 좀 빠지는 기분이다. 늘 환절기에는 감기가 잘 걸리고 몸이 허해지는 게 내 일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선수를 쳐서 뭔가 맛있고도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로 보양식이라는 게 취향을 많이 탄다. 일단 나는 이른바 혐오음식에 속하는 것을 먹으면서까지 몸을 위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삼계탕은 잘 못먹는 편이고, 산낙지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선택의 여지는 적어진다. 그런데 이때 눈에 번뜩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장어- 그것도 자연산 장어인 '하모'다.


본래 비싸고 양도 적게 나오는 것이 생선회인데다가 장어는 그 가운데서도 보양에 좋다고해서 돈 없이는 많이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장어를 여러가지 요리로 만들어 부담이 적은 가격에 내놓는다니!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이야기다. 나는 곧 시간을 내서 주작군과 함께 집에 찾아갔다. 전문 일식요리사 출신의 요리사가 내놓는 각종 장어요리를 무한리필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여름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선회 먹기를 꺼린다. 날씨 탓에 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어는 약간 다르다. 더운 여름과 가을 정도에 오히려 보양식으로서 잘 먹는 물고기다. 참장어를 뜻하는 '하모'를 코스로 해서 무한히 먹을 수 있는 하모 풀코스를 시켰다.

 
우선 식전주가 나온다. 입맛을 가볍게 돋우기 위해 약한 술을 섞어만든 이 식전주는 이 가게 '해도'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술인데 술맛이라기 보다는 '쿨피스맛'에 가까워 재미있다.


샐러드와 죽으로 위장에 준비운동을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맛있는 참장어를 실컷 먹는다는 건 그만큼 평소에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집의 쌈장을 비롯한 각종 요리 재료들은 거의 모두가 전남 고흥에서 직접 재배해서 올려보낸 것을 쓰고 있다. 얼핏보면 사소해보이는 것에도 신경을 쓴 만큼 맛이 각각 정갈하고 신선했다.


새콤한 맛의 하모무침회가 등장했다. 각종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어보니 시원하고도 담백한 맛이 입속에 가득 번진다. 씹을 수록 계속되는 쫄깃한 맛도 일품이다. 금방 한접시를 다 먹어버렸다.


 
코스가 잘 배치되어서일까? 딱 이쯤해서 내가 하모를 잔뜩 먹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올랐을때, 드디어 메인 요리인 하모회가 나왔다. 전남 고흥의 바다 밑바닥에서 직접 낚시낚아 올린 참장어가 신선함을 간직한 채로 상에 올라온 것이다.


생선회의 공통적인 담백함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생선보다 쫄깃하고 풍부한 맛을 가진 것이 일품이다. 특히 하모를 잔뜩 올려 싸먹는 맛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집이 이렇게 무한리필을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하모가 원래 한번에 듬뿍 올려놓고 먹어야만 가장 맛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참치회 같이 조그만 조각 하나에 벌벌 떨며 먹지 않아도 되니 진정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매생이국으로 간간이 위속을 부드럽게 만든 다음 회를 먹고 있자 이번에는 하모로 만든 강정이 나왔다. 닭강정보다 더 아삭거리고 부드러운 육질이 혀와 입을 진동시킨다. 씹는 뒤에는 달콤한 맛이 남아서 더 맛있다.


마치 소의 모든 부위를 활용하듯 참장어- 하모의 모든 부위를 활용한 요리가 이어진다. 하모뼈튀김은 고소하고도 풍부한 맛을 주었고, 하모초밥은 진한 맛이 밥과 어우러져 술술 목구멍을 넘어갔다. 잠시 참장어와 듀엣을 이뤄주실 게스트로 초대된 참조기 구이도 먹음직스럽게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꽤 많이 먹었지만 아직 코스 가운데 핵심이 남았다. 바로 하모 샤브샤브다. 처음에는 그냥 먹어도 너무 신선하고 맛있는 하모를 왜 일부러 신선한 상태에서 익혀먹는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크기가 작은 하모 부위는 뼈도 적고 해서 회로 먹기 적합한데, 반면 좀 큰 부위는 뼈도 많으니 오히려 살짝 익히면 더 맛있고도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다. 10초 남짓 살짝 익힌 하모는 모습이 꽃잎처럼 살짝 벌어지면서 맛과 향이 오히려 더 훌륭해졌다. 이 정도면 그 맛있다는 복어의 맛보다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중에 리필을 시켜가면서 잔뜻 하모 샤브샤브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하모에서 나온 국물로 칼국수까지 만들어 먹고나니 배가 불렀다. 모든 코스를 잘 맛보면서도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즐긴 결과다. 한 가지 요리만 많이 먹은 것이 아니라 모든 참장어의 부위와 요리를 섭렵했다는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단 한가지인 하모란 재료로 이렇듯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이 가게는 정말로 좋은 곳이었다. 비교적 주머니가 가벼운 나지만 때로 생선회를 맘껏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한번씩 가보면 좋다. 무한리필되는 코스 하나로 이정도까지 제공되는 것치고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다. 아마도 중심가의 요리점 같으면 두배 가격은 되지 않을까. 


혹시 이 글을 보고는 이 집에 가서 하모를 양껏 맛보고 싶은 분은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날씨가 추워지면 하모가 동면하는 관계로 하모회를 이 집에서 맛볼 수 있는 기간은 여름에서 이번 10월말까지다.

직접 전남 고흥에서 잡아오는 참장어의 맛을 본 나는 매우 귀중한 경험을 한 기분이다. 가끔 담백하고도 산뜻한 장어맛을 즐기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가서 내 몸 속에 신선한 에너지를 가득 채워야겠다.
 
위치: 도봉역 3번출구로 나와서 서울북부지검 앞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전화번호 02-349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