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유행하는 오락 프로그램은 오디션을 주제로 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1등에게 상금과 명예를 걸고는 참가하는 사람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한순간마다 탈락의 공포와 싸우면서 고민하고, 처절하게 노력한다. 지켜보는 시청자는 그 순간을 보고 비난한다. 때로는 진솔한 모습에 감동을 받아 격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격려든 비난이든 본질은 같다. 오락거리의 일부로서 소비하는 것이다. 참가자의 입장이 객관적이지 못하듯이 시청자의 입장도 객관적일 수 없다. 참가자는 인생을 건 도박인데 시청자에게는 그저 한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구경거리니까 말이다. 하물며 심사위원조차도 프로그램 컨셉이나 지향점 때문에 완전히 객관적으로 심사하지 못한다. 

서두가 좀 길었다.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IT업계를 둘러싼 평론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오락프로그램과 특성이 비슷해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우선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세상은 스마트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개방으로 나아가는데 닌텐도는 전용 게임기라는 프레임을 고집했다. 스마트폰에서도 충분히 즐길만한 게임이 쏟아져 나오면서 소비자는 휴대형 게임기를 외면했다. 

어차피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데 닌텐도DS를 사기 위해 20만원이 넘는 돈을 선뜻 내기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폰에 게임이 설치되는데 닌텐도DS 게임을 사려고 매장에 발품을 팔기엔 너무 번거롭다.



닌텐도는 과거 폐쇄성으로 재미를 봤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양분하던 게임기 시장에서 슈퍼마리오를 앞세워 일약 삼국지 구도를 만들었다. 닌텐도는 특히 게임 개발사에 전폭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닌텐도 게임기용으로 팔려면 수만 장의 최소 발매 수량을 약속해야 했다. 그만큼 자사 게임기에 자긍심이 있었지만 개발사 입장에선 가혹한 조치였다. 





지난 2009년 2월, 게임 업계 살아있는 전설인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개발본부장을 인터뷰했다. “애플이 닌텐도의 경쟁자라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야모토 본부장은 “애플이 훌륭한 회사지만 슈퍼마리오는 없지 않느냐”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마켓이라는 자유 시장이 만들어졌다. 개발사는 굳이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 않아도 게임을 세계인에게 팔 수 있는 기회에 주목했다. 재미있는 게임이 무료로, 유료라 해도 단돈 몇 달러에 나오자 게임 팬들은 닌텐도DS를 놓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닌텐도는 여전히 게임 콘텐츠로 역전을 꿈꾼다. 니혼게이자이는 닌텐도 전략이 휴대형 게임기 신제품 가격을 내리고 ‘슈퍼마리오’ 등을 인기 게임 시리즈 계속 투입하는 방향이라고 내다봤다. 


스마트폰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품과 비즈니스가 소비자 선택을 기다린다. 잠깐 한눈을 팔거나 의사결정이 조금만 늦어도 혁신 대열에서 멀어진다. 닌텐도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스마트 혁명 시대 개방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음미할 부분이 꽤 많기에 좀 길게 인용했다. 위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닌텐도가 자사가 만든 게임기 플랫폼이란 형식에 얽매여 있다. 자기가 만든 홈그라운드에서 가격부터 컨텐츠까지 전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매력을 버리지 못해 스마트폰 혁명에서 낙오되었다. 보다 개방된 마인드로 컨텐츠를 다른 하드웨어에 적극 진출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인에 대해서는 거의가 맞는 말이다. 나도 예전부터 닌텐도에 대해서 같은 우려를 표시했다. 또한 이전 포스팅에서 애플의 라이벌로서 닌텐도가 어떤 방법으로 경쟁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흥미를 나타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저 기사의 마지막에 내린 결론이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개방의 열풍, 폐쇄된 닌텐도는 개방해야 성공한다.’ 이게 전부다. 마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투항 권고문 같다. 80년대 한국의 반공방송과도 비슷하다.

닌텐도의 몰락, 과연 폐쇄성 때문일까?

1 . 재미있는 건 위에서 성공사례로 든 애플 역시 닌텐도 몫지 않게 폐쇄적이란 것이다. 애플은 개방적인 PC와 정반대의 노선으로 매킨토시를 이어나갔다. 또한 지금도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팟은 충분히 폐쇄적이다. 

‘컴퓨터의 게임기화’나 다름없는 폐쇄적 노선을 취한 애플이 스마트폰 혁명을 가져왔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애플을 보여주면서 분야만 다를뿐 거의 똑같은 노선을 걷는 닌텐도에게 ‘너희는 폐쇄적이어서 몰락한거야. 개방해야 돼.’ 라고 말하다니! 이게 무슨 웃기는 충고인지 모르겠다.



위에서 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비유하자. 노래보다는 외모와 스타성으로 승부하던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이 붙고 한 명이 떨어졌다. 그러자 느닷없이 자막 멘트로 떨어진 사람에게 대고 ‘역시 떨어지는 가창력이 문제였다. 역시 가수라면 가창력이 있어야지.’ 라고 말하면서 스타성 위주의 다른 한 명을 본받으라면 말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2 . 닌텐도가 지금 상황에서 자기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그건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일지는 몰라도 이제까지 지켜왔던 비즈니스 모델을 송두리채 바꿔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탁상 앞에서 말하기는 쉬워도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노력을 요구한다.

평론가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결국 편안하게 앉아서 말하는 심사위원에 지나지 않는다.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최대한 많이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물론 방향 자체는 분명히 지시해야 하지만 대안을 내놓을 때는 최대한 당사자의 상황에 맞게 내놓아야한다. 

닌텐도의 경우, 무조건 개방해라. 이럴 게 아니라 어느 수준까지 개방하는 게 좋으며, 그럴 경우 기존의 사업 영역은 어떻게 정리하고 전환할 지에 대해서까지 생각해줘야 바른 평론이다. 무조건 혀를 차며 ‘그러게 내가 뭐랬어.’ 라는 식은 그저 오락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의 단순한 감상일 뿐이다.



정리해보자. 애플의 성공원인은 그 폐쇄성 때문이 아니다. 때마침 원했던 스마트폰의 기능과 감성을 애플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앱스토어에서 제한적인 ‘개방’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애플이 ‘개방적이어서’ 성공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애플은 동종업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다.

마찬가지로 닌텐도의 몰락원인 역시 폐쇄성 때문이 아니다. 게임기란 특성과 함께 닌텐도의 역사는 전부 그러한 폐쇄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했다. 닌텐도의 몰락은 스마트폰으로 높아져있는 소비자의 시선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게임기만이 줄  수 있는 어떤 신선함과 재미를 충분히 주지 못한다면 그것이 개방이든 폐쇄든 실패한다.



평론가로서 종종 나도 너무 단순하고 피상적으로 대상을 보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봐야겠다. 나는 비록 일개 블로거이지만 평론하는 기업들을 일개 오락거리로 소모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그들 모두의 입장에서 항상 생각하며 대안을 제시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애플에서, 가장 불우한 노키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