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민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된 슈퍼스타K의 첫방송을 기억하는가? 그 방송 앞부분에 나온 멘트들은 매우 의미심장하고도 비장했다. ‘한국 가요는 죽었다.’ 부터 시작하는 가운데 댄스와 립싱크, 비주얼에만 의지한 나머지 기본인 가창력이 실종된 현 가요계의 현실을 먼저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해 도전하겠다는 의미로서 대안을 제시한 것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이고 가창력과 실력 위주의 가수 선발과 육성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빌리자면 지금 오히려 더 비장하게 경고음을 울려야 할 것은 한국의 개그계이다.
지금 '한국 개그는 죽어가고 있다.' 지상파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차차 없어지거나 시청율이 나오기 힘든 시간대로 옮겨지고 있다. 나올 곳을 잃어버린 개그맨들이 생활고를 호소하는 가운데, 그 빈자리는 아이돌, 스포츠 스타였던 사람들이 가쉽거리를 말하며 웃기는 예능 프로그램이 차지해버였다.

물론 지상파 방송사들은 여전히 공채를 통해 개그맨을 뽑고 있다. 이주일에서 심형래를 거쳐 이어지는 역사와 전통은 여전히 이어진다. 하지만 막상 뽑힌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방송사들은 시청률 부진을 내세운다. 시청자들이 봐주지 않으니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개그맨들은 반대로 설 자리가 없어지니 실력을 보여줄 수 없다고 호소한다. 길어야 5분이면 한곡이 끝나는 노래와 달리 개그는 비교적 긴 시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개그를 여러번 써먹을 수 없다. 일세를 풍미한 유행어를 만들었다고 해도 막상 그 수명은 길지 않다. 또한 예전에 비해 그 주기는 더 짧아진다. ‘개그 콘서트’ 같은 스피디한 개그 프로그램이 나름 분전하지만 예전의 느린 템포로 스토리를 보여주면서 웃기는 편성은 사라졌다. 

하긴 이런 문제점이 하루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예전에도 비슷했다. 그럼에도 항상 개그는 위기를 돌파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성장해왔다. 아무리 끼 있는 가수와 특출난 스포츠 스타가 웃긴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웃음 하나만을 목표로 수련한 전문 개그맨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크린 쿼터 마냥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아예 개그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면 아무리 재능있는 사람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에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되는 ‘코미디 빅리그’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이 프로그램은 요즘 가장 유행하는 오디션 스타일- 즉 ‘나는 가수다.’와 비슷한 포맷이다. 11개 팀이 매주 새로운 무대로 경연을 벌이고 관객들이 평가한다. 그리고 최종 우승자가 상금을 받는다. 탈락자는 특별히 없지만 최하위는 분명 존재하게 된다.

지나친 압박감과 긴장을 부르는 ‘나가수 스타일’에는 부작용도 있지만 장점도 많다. 특히 한정된 기간과 여건에서 각자 가지고 있는 최고의 저력을 뽑아낼 동기를 부여하는 점이 뛰어나다. 유럽의 축구리그를 예로 들면 1등을 하기 위한 상위권 팀의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하위권에서는 리그강등으로 탈락하지 않기 위해 최하위권 팀들이 사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도 대단하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최선을 다하게 되는 가운데 관객들이 최고의 경기를 보게 된다.


코미디 빅리그, 개그는 부활할 수 있을까?

이번주 토요일부터 방영될 코미디 빅리그는 이런 방향에서 매우 기대된다. 지상파 3사의 개그맨들이 소속을 넘어 함께 팀을 결성한다. 또한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각자의 실력을 겨룬다는 점만 해도 신선하다. 게다가 일본에서 파견한 팀도 경연에 참가한다. 무대가 끝난 후 각자 라이벌을 꼽아서 무대 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려는 점도 좋은 시도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나름 이런 포맷에 익숙하지 않은 개그맨들의 적응력이 걱정되기도 하고, 슈퍼스타 K처럼 무대 뒤에서 충분한 연출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하지만 이건 단지 시작이기에 발생하는 문제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고정적으로 황금주말의 좋은 시간대에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는 개그맨들의 각오가 비장하다. 또한 하위팀은 재방송에서 무대시간이 편집되다는 점에서 나름 필사적인 노력을 할 듯 하다.

코미디 빅리그를 계기로 한국 개그가 다시 부활해서 황금기를 맞길 바란다.
새롭게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을 주목해서 시청해보자. 토요일 밤 9시에 케이블 방송 TVN 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