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일이지만 애플이 내놓는다고 전부 대성공을 거두는 건 아니다. 사과마크 아래서 펼쳐지는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야 늘 환상적이긴 하다. ‘현실왜곡장’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말 속에는 늘 기발한 아이디어와 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만만한 그 어투는 늘 매력적이다. 하지만 단지 짧은 그 시간뿐이다. 마치 최면에서 벗어나듯 그 시간만 지나면 사람들은 냉정을 되찾고 보다 신중한 선택을 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야심만만하게 아이패드와 아이북스를 내놓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전자책 분야에 돌풍을 일으키며 엄청난 점유율을 차지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런 예상은 엄밀히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이패드란 기기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전자책을 다시 주목받게 했다. 하지만 막상 그안에서 돌아가는 아이북스란 서비스는 아마존에 치명타를 가하는 데 실패했다. 좋은 서비스로 자리잡긴 했지만 아이튠스처럼 대단한 지배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언급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애플의 야심찬 발표가 용두사미로 흘러가는 경우는 꽤 있다. 구글과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플랫폼 독점 논란까지 가져왔던 광고서비스 ‘아이애드’를 보자. 애플답게 감성적이고 지능적인 광고 시스템을 만들었고 성공을 확신했던 이 서비스는 현재 침체중이다. 광고효과가 예상처럼 나와주지 않자 광고주들이 광고 자체를 주지 않고 있다. 애플의 소셜서비스로 주목받던 ‘핑’ 역시 지금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새롭게 나온 애플티비는 아직 미국에서도 줄을 서서 구입하는 사람이 없으며, 아이클라우드는 아직 구현중이다.



전자책에 있어 아마존은 애플보다 훨씬 조용하지만 실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이패드  발표시에 열세 몰렸던 아마존은 오히려 여유스럽다. 저가 노선을 채택한 킨들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자잉크가 아닌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태블릿 출시를 예고하며 애플에 역공을 취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 애플이 뭔가 다시 획기적인 수단을 던지지 않으면 아마존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아이북스가 아마존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1 . 아이패드가 ‘예상 외로’ 성공했다.


모순적인 부분이지만 아이패드가 애플이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성공한 것에 원인이 있다. 당초 스티브 잡스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아이패드1 발표때 아이북스를 중점적으로 내놓은 것으로 보다 전자책 단말기로서의 용도를 가장 중시했다. 기존의 아이폰이나 매킨토시와 겹치지 않는 시장에서 조용하고 꾸준히 팔렸으면 하는 바램이 강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전자책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넷북 대용의 용도로 더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외부 키보드를 지원하고 아이워크를 탑재한 부분이 오히려 더 주목받은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의도하긴 했어도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아이패드는 노트북을 대체하는 ‘포스트PC’ 용도로 첫걸음을 떼어놓은 것이다. 애플의 예상반경에서 벗어난 성공인 셈이다.


2 . 아마존은 이미 갖춰놓은 전자책 컨텐츠가 풍부했다.


최근 애플의 성공을 분석하는 요인 가운데 꼭 들어가는 건 애플이 잘 짜여진 컨텐츠를 통해 하드웨어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과거 애플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하드웨어만 앞세워 내놓다가 뼈아픈 실패를 겪은바 있는데 최근에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있다.




다만 아이북스의 경우는 다소 예외였다. 아마존이 이미 확고하게 시장을 차지한 가운데 애플이 뒤늦게 들어온 신규사업자였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7:3의 수익모델은 좋았지만 아마존 역시 그것에 자극받아 배분율을 조정했기에 그렇게 많은 매력은 없었다. 결국 이미 보유한 컨텐츠의 대결로 가게 되자 아마존이 이길 수 있었다. 더구나 아마존은 아이패드와 맥용 킨들 앱까지 출시하는 등 더욱 도전적이었다. 전자책에 관한한 애플은 컨텐츠싸움에서 아마존에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3 . 컨텐츠 업체들은 애플을 두려워한다.


애플은 지금 점점 거대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아이튠스 초기에 애플이 주요 음반사를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시 애플의 적은 점유율 때문이었다. 잡스는 미국과 전세계에서 5프로 남짓한 점유율의 맥과 막 나오려는 아이팟 정도를 앞세웠다. 불법복사를 걱정하는 대표들에게 ‘애플의 PC시장 점유율은 매우 작다. 뭘 그렇게 피해를 걱정하나?’ 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애플은 다르다. 애플이 제대로 성공하면 그대로 독과점 업체에 가까운 지배력을 가진다. 그러기에 애플티비를 맞이하는 주요 방송사는 애플에 우호적이지 않다. 전자책에서도 비슷해서 주요 출판사 역시 애플이 이 바닥에서 거인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견제해줄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의 애플이 컨텐츠 가격을 매우 낮추도록 유도하면서 플랫폼 판매위주로만 전략을 짜게 되면 어떻게 될까? 컨텐츠 업체의 권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파이낼션 타임스의 앱이 애플에 의해 중단된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런 이유에서 아마존은 애플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었으면 그런 흐름이 이어져오고 있다. 향후 애플이 전자책 시장에 다시 눈을 돌리고 획기적인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당분간 이 추세는 바뀌지 않을 듯 싶다.


하긴 애플은 딱히 전자책이 아니어도 충분히 대성공을 하고 있으면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좋은 서비스가 나오려면 애플이 보다 적극적으로 아마존을 공략해줘야 한다. 그 점이 좀 아쉽다.